박근혜 정부 들어선 이후 뜸했던 KBS의 간판 예능프로 <개그콘서트>의 정치시사 풍자가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다. ‘민상토론’이 그 대표적인 코너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무상급식 폐지 잘했다고 보느냐”는 사회자(박영진)의 질문에 아니라고 부인하거나 안절부절 못한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성완종리스트, 조윤선 정무수석 등 여권 고위인사 뿐 아니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까지 ‘과감하게’ 도마에 올린다. 다만 이들 중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다. 시청자 스스로 판단하게 할 여지를 남기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제작진은 박영진의 질문이 이것(순응) 아니면 저것(좌빨)으로 규정짓는 권력자의 프레임을, 답변 못하는 유민상의 태도를 ‘해봐야 득될 것 없다’고 생각하는 침묵의 세태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22일부터 <개그콘서트> 연출을 맡은 조준희 KBS 예능국 PD를 26일 KBS에서 만나 민상토론을 둘러싼 견해를 들어봤다.

조 PD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민상토론’을 기획한 계기에 대해 “지난 3월에 처음 오자마자 PD의 색깔을 드러낼 새도 없이 시작했다”며 “처음 기획한 것이 민상토론을 포함해 개그코너 장르의 다양성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코미디도 여러 장르가 있는데, 와서 보니 토크 성격의 장르가 없었으며, (정치 시사 세태) 풍자적인 개그가 없었다”며 “프로그램 모니터도 해봤더니 도찐개찐에서 툭 던지는 개그를 했다가 말장난으로 흐르고 닭치고도 마찬가지로 ‘병맛 B급 몸개그’로 변했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런 점에서 ‘풍자를 해보자’, 다양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키워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했다고 조 PD는 설명했다.

   
지난 24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의 박영진씨. 방송화면 갈무리
 

또한 조 PD는 박영진이 끊임없이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질문을 하고 유민상과 김대성이 어쩔줄 몰라하는 식의 간접 화법을 사용한 것을 두고 “직접적인 화법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돌려서 말하고 싶었다”며 “개그하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기 보다는 풍자개그로 웃기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조 PD는 “그 주에 있었던 핫한 주제의 토픽 키워드를 언급한 뒤 처음엔 실명만 얘기하다 나중에는 약간의 색깔과 의견을 조금씩 얘기하지만 (뭘 말하는 건지) 정확히 캐치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정도 표현이면 괜찮겠다고 보고 방송을 시작했다는 것.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에 대해 조 PD는 “처음에 프로그램을 맡고 난 다음에 ‘시사가 아니더라도 말로 하는 세태 풍자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메인작가도 동의해주고, 유민상씨를 불러서 얘길해 보니 ‘어우 이런 말 해도 되나’라면서 물잔을 덜덜 떠는 리액션을 보여주더라”며 “거기서부터 말 잘하는 박영진씨와 억울한 표정 잘 짓는 김대성씨를 붙여서 3주 동안 구체화한 뒤 녹화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 조 PD와 개콘 식구들은 정치풍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가. 조 PD는 당연하다고 답했다.

“정치풍자는 코미디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다. 그 핵심은 가진 자들에 대한 비꼼 아니겠느냐. 덜 가진 자, 약자 비하가 아니라 권력이 됐건 돈이 됐건 가진 자들에 대한 풍자는 아주 오래된 개그의 한 축이다.”

이와 함께 그는 2000년 대 초 개콘 조연출을 할 때 견학을 온 해외 방송 관계자들이 개콘 제작과정 설명을 듣고 ‘코미디의 기능 중 빠진 것이 있다, 풍자가 왜 빠졌느냐’고 질문하는 바람에 당시 설명을 한 KBS 간부가 난감해했다고 한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26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2층 로비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조준희 KBS <개그콘서트> 메인 PD. 사진=조현호 기자
 

과거 권력풍자를 했을 때는 온갖 비난이 쏟아진 것과 달리 시청자 게시판에 아직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에 대해 조 PD는 “현재의 세태에 대한 공감을 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솔직히 일부러라도 최고 권력자의 이름을 말하고 싶었다. 잘했다 못했다 떠나서. 첫 주체가 무상급식이었는데, 코미디 프로여도 그런 말을 못할 건 아니지 않느냐. 문제는 그런 얘기를 함으로 인해 의견을 갈리게 만드는 현실이었다. 무상급식 찬성하면 빨갛게 만들거나 진보, 좌파, 종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배후세력 운운하는 분위기였다. 이것이 우리가 감지한 사회 분위기였다.”

조 PD는 “큰 프레임을 짜는 사람들이 그런 편가르기를 즐겨하는 것 같다”며 “박영진이 ‘이것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하고 그럼 저거네라고 (단정적으로) 묻는 것은 ‘이것’이 아니면 좌빨이라고 몰아가는 세태를, 민상이와 대성이가 대답을 못하는 것은 다소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어떤 사안에 말을 하면 적어도 ‘대답해봐야 뭣해’라는 생각에 대중들이 입을 다무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PD는 “이것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관심은 있으나 말을 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조 PD는 설명했다.

또한 조 PD는 “박영진의 질문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 잘했다 뿐 아니라 잘못했다는 의견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도 있다”며 “무상급식, 성완종리스트, 공무원연금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한 환기를 시켜주는 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5일 방송 이후 두 달 가까이(8회째) 이어온 ‘민상토론’에 대해 조 PD는 “다듬을 것이 많지만, 대중들에 많이 회자되고 하니 성공적”이라며 “민감한 표현을 조절하는데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걸리지만 이 코너는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자평했다. 

조 PD는 향후 민상토론의 ‘변화’에 대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진보와 보수, 좌우, 여야든 치우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앞으로 민상토론에서는 우리 의견을 말할 단계”라며 “아무 답도 하지 못하는 식이 아닌 가치판단을 통한 최소한의 견해를 민상토론에 담을 것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의 경우 ‘애들 밥은 먹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수준의 가치판단을 뜻한다. 박영진이 유민상이나 김대성에게 윽박지르는 것을 통해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말라’는 의미를 전달해주는 것이 코너의 발전가능성의 하나라고 조 PD는 설명했다.

   
24일 저녁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의 유민상(오른쪽)씨와 김대성씨. 방송화면 갈무리.
 

현재까지 윗선이나 정부여당의 압력이나 반응은 없었다고 조 PD는 전했다. 그는 이런 소재를 개그로 하는 것의 부담과 관련해 “핫한 이슈를 선택하는 것이지 정치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부담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그래서 대중에 더 공감을 얻는 것 아니겠느냐. 부담은 되지만 (정치사회풍자 개그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소재”라고 답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동혁이형이야’, ‘사마귀유치원’, ‘용감한 녀석들’에서 권력풍자했다가 ‘개그맨이면 웃기기나 할 일이지, 왜 정치얘기를 하느냐’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해말 ‘도찐개찐’이란 코너에서 ‘녹조라떼’를 언급했다가 시청소감 게시판에 ‘악플’이 가득찼다. 

조 PD는 이를 두고 “개그맨이 살만 찌우고, 바보 흉내만 내야 하느냐는 과거 박영진의 개콘 대사가 있었다”며 “개그맨도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이고, 풍자는 코미디의 큰 장르의 하나로서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답했다. 특히 그는 “미국이나 서구 선진국 코미디의 두축은 몰카와 정치인 흉내”라며 “‘왜 딴따라가 나서느냐’는 식의 주장에 우리는 개그 프로그램으로 웃기기는 할 것이지만 정치풍자 개그로도 웃길 것이라고 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조 PD는 정치시사 권력풍자 개그를 늘려갈 것이며, 민상토론이 발전하든 다른 코너를 찾든 풍자는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준희 PD는…

1998년 KBS 예능 PD로 입사해 2000대 초반 3년 간 개그콘서트 조연출을 했다. 그는 이후 <웃음충전소>, <희희락락> 등 예능프로와 시트콤을 제작했다. 지난 3월 22일 개그콘서트 메인PD로 오기 전엔 <스케치북>을 연출했다. 조 PD는 오자마자 ‘부엉이’ 등 몇 개 코너를 없앴다. “웃기지가 않아서였다”고. 개콘의 장수 PD였던 서수민 PD는 현재 예능국에서 <1박2일> <개그콘서트> 등의 CP(책임프로듀서·팀장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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