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황교안을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미스터 보안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공안통에, 병역면제에, 월 1억 원의 전관예우까지, 박근혜 정권에서 지명됐던 어느 총리 후보자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전력(前歷)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번 황교안 총리 지명에 대해 ‘야당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규정했다.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황교안의 처세술과 국가관을 읽을 수 있는 사례들은 예사롭지 않다. 2005년 7월에 있었던 삼성엑스파일 사건에서 뇌물 준 이건희는 서면조사로 무혐의 처리한 반면, 이 사건을 폭로한 이상호 기자와 노회찬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검찰 또한 삼성엑스파일의 포괄적 대상이었으니 그로 인해 정의의 잣대가 왜곡되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해 10월에는 6.25는 통일전쟁이었다는 내용으로 글을 쓴 강정구 교수를 구속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주장해 당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마찰을 야기했다. 법으로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려 했던 ‘미스터 보안법’의 집착이 빚어낸 사건이다. 2012년에 펴낸 그의 책에서는 정부의 교회 과세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해타산에 밝지만 시대착오적이며 비정상적으로 편협한 사고의 소유자이다.

시대착오적이며 편협한 사고는 언론에 보도된 그의 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4.19를 혼란으로, 5.16을 혁명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통진당 해산과 관련해서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부터 위헌심판이 있을 것을 예측하고 준비해왔다며 스스로 공안통임을 뽐냈다.

그는 부분적 사실을 꿰어 맞춰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2011년 부산에서 있었던 교회 강연에서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과거 검찰 공안부에서 조사를 많이 받았다면서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검사들을 전부 좌천시켰다”며 두 전직 대통령이 공안검사들에 대한 보복성 인사를 한 것처럼 비난했다. 그러나 이는 앞뒤 인과 관계와 과정을 모두 생략한 진실 왜곡이다. 그것은 두 전직 대통령과 정부의 갈등이 아니라, 군사독재정권이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인사들을 일방적으로 탄압한 어두운 역사의 단면이다. 그 과정에서 검찰 공안부가 독재정권의 안위를 위해 민주인사를 탄압한 행동대장이었음은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황교안 역시 ‘미스터 보안법’이라는 공안통답게 독재권력의 종범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가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교회 강연에서 당시 상당수의 공안검사들이 독재정권의 입맛에 맞춰 수사를 꿰어 맞추었던 정치검사들이었음을 고백하고 뼈아픈 반성을 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공안검사에 대한 그의 우월적 사고 또한 웃지 못 할 일이다. 그는 교회 강연에서 “본래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굉장히 우수한 사람들이 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 인사에서 다 잘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라고 말했다. 오만한 자기중심적 편견이 아닐 수 없다. 부당한 독재정권의 생각을 재빨리 포착해 입맛에 맞는 수사결과를 만들어 내고 그에 따라 승승장구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는 것이 우수한 엘리트의 정의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찬 그의 신념체계는 종교관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많은 공안검사들이 옷을 벗게 되었지만 당시 한직인 사법연수원에 있었던 자신은 용케 그것을 피할 수 있었다면서 ‘환란’으로부터 도피하게 해준 하나님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서 고검장으로 승진할 당시 ‘전 정권의 미운털 복귀’라며 조선일보에 자신의 이야기가 실린 것을 자랑하듯 소개하면서 ‘기적 같은 일’이라고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사람이었다는 아전인수와 구복적 종교관을 엿보게 한다. 신성한 교회에서 권력 게임의 결과물인 검찰의 인사 문제,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태연하게 풀어놓는 그의 천박함도 볼썽사납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교회의 환경 또한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민중에 대한 애정의 흔적은 그 어디서도 찾기 어렵고, 이기주의, 출세지상주의, 구복신앙에 푹 젖어있는데다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황교안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총리가 되어 나라를 운영할 때 나라는 어떻게 될까.

이제 야당이 시험대에 올랐다. 야당이 투쟁의 깃발을 올렸지만 결과에 대해 장담하기 어렵다. 그 동안 선거에서 판판이 깨졌던 야당은 선거에서만 깨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당의 의지 없이는 아무것도 뜻대로 할 수 없었던 야당, 여권의 폭정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대응한 기억이 없는 야당이다. 이명박 정권 당시 미디어법 처리부터가 그랬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서는 국정원 관권부정선거가 그랬고, NLL 대화록 폭로 사건이 그랬고, 세월호 특별법이 그랬다. 박근혜 정부의 몇몇 총리 지명자가 청문회도 못하고 자진 사퇴했을 때도 빗발치는 여론 때문이었지 야당의 힘이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이완구 총리의 사퇴도 결국 여론을 빨리 알아챈 새누리당의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이지 야당의 투쟁력 때문은 아니다.

모래알처럼 ‘일인 성주’의 역할에 만족할 뿐, 당도, 집권에도 관심이 없는 오늘의 새정치민주연합 상황은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더욱 확산시킨다. 당에 환멸을 느낀 인사들이 당을 뛰쳐나오고 선거는 전패한 심각한 상황에서, 당의 최고위원회들이 계파싸움을 일삼고 회의 중에 노래를 흥얼대는 모습은 희미하게나마 야당에 희망을 걸었던 국민들마저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봄날은 간다’는 노래 제목처럼 그들도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민은 야당의 이번 싸움을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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