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세대, 오포세대에 이어 칠포세대까지. 연애, 결혼, 출산은 물론 인간관계와 집, 나아가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세대. 대한민국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호칭은 ‘포기’다. 최근 조선일보는 청년세대를 ‘달관세대’라 명명했지만, 사실 달관은 ‘포기’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왜 청년들은 꿈과 희망까지 내버렸을까. 누가 청년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미국의 교육학자 헨리 지루의 <일회용 청년>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쓰레기가 돼버린 미국 청년들의 실상을 탐구한다.

한 사회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재생산이 필요하고, 이 재생산을 담당하는 것이 청년들이다. 그러나 헨리 지루에 따르면 미국은 청년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복지국가의 쇠퇴와 함께 도래했다. 청년들을 위한 복지는 사라졌고, 경쟁에서 도태된 청년들은 낙오자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 일회용 청년 / 헨리 지루 지음 / 심성보‧윤석규 옮김 / 킹콩북 펴냄
 

우파 정치인들은 사회적 투자와 보호를 비난하고, 건강보험과 노령자 보험, 실업급여를 비롯한 사회 보장을 없애려고 한다. 낙오자를 돕기 위한 프로그램은 쓸모없는 것이 됐다. 미국에서 7명 중 한 명이 빈곤에 허덕이고, 5천만 명 이상이 건강보험에서 배제되고 있다. 가난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나지만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든다.

사회적 부조가 사라진 상황에서 청년들은 낙오되고,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기 십상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청년들을 문제아로 취급하기에 바쁘다. 미디어와 보수적인 정치, 자본, 그리고 교육체계는 청년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약물 중독자, 혹은 심리 상담과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병든 존재로 만든다.

학교에 넘쳐나는 감시 카메라, 마약 탐지견, 금속탐지기 등은 미국사회가 청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풍경이다. 욕설을 내뱉거나 수업 중에 떠들어도 빨간 줄이 넘고, 복장규정이나 교실규칙을 조금만 위반해도 수갑을 차거나 유치장 신세를 진다. 예전에 젊은이를 순수, 동정, 공감 같은 용어로 묘사했다면 오늘날 이들은 공포와 처벌 같은 담론으로 규정된다.

설사 몇몇 청년들이 범죄에 빠지지 않은 채 멀쩡하게 자라난다 해도 이들은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하는 하층 노동자나 소비자로, 중동이나 아시아 전쟁을 수행하는 총알받이로 전락한다. 헨리 지루는 미국이 “청년에 대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이야기지만 기시감이 들 정도로 한국상황과 비슷하다. 한국의 주류언론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교사들과 부모까지 공격하는 난폭한 10대들이거나 아니면 취업을 못 해 절망에 빠진 무능한 20대들이 대부분이다. 어른들은 “열심히 해라” “아프니까 청춘”외의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 경향 장도리.
 

진보진영이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헨리 지루가 묘사하는 미국의 진보진영은 젠더, 성 정체성, 계급, 인종, 장애 등의 문제를 다루긴 하지만 청년세대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니까 우리 당에 투표해라’는 윽박지르기 외에 청년세대를 대변할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흔해 빠진 청년담론 중에서 <일회용 청년>에 주목할 만한 이유는 두 가지 차이점 때문이다. 옮긴이 심성보가 지적했듯이, 이 책에 등장하는 청년은 위기에 빠진 중산층 청년세대만을 다루지 않는다.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한국의 청년 담론은 이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나온 중산층 세대마저 먹고 살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일회용 청년>은 극빈층을 구성하는 청년 세대의 현실에 주목한다.

두 번째, 기존의 청년 담론은 ‘경제 환원론’에 가깝다. ‘청년 세대가 왜 짱돌을 들지 못하나?’라는 질문에 ‘스펙 쌓고 아르바이트 하느라 못한다’고 대답하는 식이다. 하지만 <일회용 청년>은 청년들을 쓰레기로 만드는 정치 담론과 교육, 미디어로 분석의 대상을 확장한다.

분석대상이 넓어지면서 대안 마련도 더 명확해진다. 더 이상 청년들에게 ‘짱돌을 들어라’라거나 ‘투표해라’라고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재생산을 공격하고 복지를 해체하려는 정치세력에 맞서 싸우고, 교육과 미디어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집합적인 문제를 집합적으로 해결하는 것” 그 길 밖에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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