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 됐다. 박근혜 정부의 ‘3NO’(사드,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 정책이 무색하게 케리 미 국무장관이 사드 배치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이 배치 비용까지 한국이 부담하라는 식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1박 2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케리 미 국무장관이 사드 배치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케리 장관은 지난 18일 오후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서울 용산 미군기지를 찾아 장병들과 대화에서 “김정은이 매우 도발적인 행위를 일삼고 있다”며 “우리는 모든 결과에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드와 다른 것들에 대해 말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케리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어 사드의 한반도 영구 배치 이야기까지 나왔다. 프랭크 로즈 미 국무부 차관보가 19일 워싱턴 D.C의 레이번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 자리에서 “사드는 전적으로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에 대처할 방어용 무기체계”라며 “우리가 한반도에 사드 영구 배치를 고려하고 있지만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았고 공식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

   
▲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잇따른 미 국무부의 사드 언급은 지난 4월 10일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이 한민구 국방장관과의 회담 직후 밝힌 입장과 차이가 있다. 카터 장관은 당시 “현재 세계 누구와도 사드 배치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며 사드 배치 논의에 대해 선을 그었다.

사드에 대한 ‘3NO' 방침을 강조했던 한국 정부는 해명에 나섰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아직 미국이 공식입장을 통보한 바 없다. 미국 내부의 협의 절차가 진행 중이며 그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요청이 오면 군사적 효용, 군사안보상 이익을 고려해 주도적으로 판단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외교부는 케리 장관의 발언에 대해 “케리 장관의 ‘우리’라는 표현은 한미가 아니라 미군들을 지칭한다”고 해명했고, 국방부 역시 ‘3NO' 방침을 되풀이했다.

미국도 사드 언급은 했으나 애매한 태도는 유지하고 있다. 케리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주한 미대사관은 “케리 장관의 서울 방문 중 사드 이슈는 논의되지 않았다. 미국 내부 청중을 상대로 발언하던 중이었다”고 밝혔다. 프랭크 로즈 미 차관보도 사드에 대해 언급하면서 “공식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를 두고 미국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케리 장관의 말은) 한 마디로 사드를 사라는 것”이라며 “미국이 결정해서 배치하겠다고 하면 그만인데 한 포대에 2조원이나 하니까 한국 돈으로 사라, 북한이 계속 위협하는데 너네 필요하지 않냐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홍 연구위원은 “미국이 먼저 필요하다고 하면 비용을 미국이 내야 한다. 따라서 한국사회 내부에 북한의 위협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빨리 나서서 한국 돈으로 사라고 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사드 배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드가 북한이 아닌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해 공론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다. 결국 미국의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는 한국의 외교 방향을 결정할 바로미터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미국에 기울었다면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는 중국과도 친교관계를 유지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특히 한중 FTA도 맺으면서 경제적 관계도 깊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의식한 미국이 사드 배치를 계기로 '북-중-러 vs  한-미-일‘ 구도를 만드려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3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미국의 고(高) 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도입을 추진하는 새누리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현익 연구원은 “중국을 고려하면서 미국이 사드 배치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한국이 ‘배치는 해라, 근데 돈은 미국이 내라’고 말하는 것”이라며 “그 때 미국이 배치를 안 한다고 하면 문제는 끝나는 것이고, 미국이 돈을 내고 배치한다 해도 중국한테 할 말이 생긴다. 한미동맹이 깨질까봐 마지못해 갖다놓은 거지 중국이랑 척질 생각은 없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이 적극적으로 사드 필요성을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미국이 사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 정부는 계속 '3NO'를 말하는 상황이 한미동맹의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이 점이 6월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 연구원은 “사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비용문제와 한중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정부를 난처하게 만든다. 언론이든 한국 내에서 사드가 필요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정부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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