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古典)이란 게 뭘까? 사전을 보니 “과거에 쓰인 작품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이라 했다. “어떤 분야의 초창기에 나름 완성도를 이룩해 후대에 전범(典範)으로 평가 받는 창작물”이라고도 했다. <단테 신곡 강의>를 쓴 이마미치 도모노부는 고전을 “인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영혼의 근력을 키워주는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문사철’(文史哲) 뿐 아니라 음악에도 고전이 있다. <스파르타쿠스>는 발레의 고전이고 <환희의 송가>는 교향곡의 고전이다. 수많은 오페라 중 <돈조반니>가 먼저 떠오른다. 모차르트가 프랑스 혁명 2년 전인 1787년 작곡한 이 오페라는 음악의 대향연일 뿐 아니라 다양한 인물군상이 펼치는 인간성의 대파노라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정독하려면 하루가 걸린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를 읽으려면 일주일, <일리아드>나 <신곡>을 읽으려면 한 달을 잡아야 한다. 이에 비해 오페라 <돈조반니>를 감상하는 건 불과 3시간이면 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요즘, 웃음과 슬픔과 분노와 성찰이 있는 이 오페라를 감상해 보면 어떨까.

거장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동영상이다. 청중없이 녹화했기 때문에 라이브 무대의 호흡과 생동감을 느낄 수 없지만, 체자레 시에피, 안톤 데르모타, 리자 델라 카사, 발터 베리 등 20세기 최고의 성악가들이 총출동한 불후의 명연주다.

   
 
 

 

<돈조반니> 전곡 (영어 자막)                                        
https://youtu.be/XPYjqz7nToY

 

 

 

 

이 오페라는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음악에 대한 분석은 차치하고, 대사 있는 연극으로 텍스트를 살펴보자.

<돈조반니>에는 세 개의 코드(code)가 있다. 첫째 코드는 선과 악의 대립이다. 희대의 바람동이 돈조반니는 악당이다. 그는 돈나 안나의 침실에 잠입하고, 소동에 뛰어나온 그녀의 아버지 기사장을 결투 끝에 살해한다. 자기를 쫓아온 돈나 엘비라를 속여서 위기를 모면한 그는 시골 결혼식장의 새신부 체를리나를 유혹한다. 피해자들은 보통사람들이다. 돈나 안나와 약혼자 돈오타비오, 체를리나와 신랑 마제토는 돈나 엘비라와 함께 돈조반니를 추적한다. 악당이 결국 심판받고 선남선녀들이 일상과 평화를 되찾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다. 이 시각에서 보면 이 오페라는 희극(opera buffa)이다.

돈 조반니가 유혹한 여성은 하인 레포렐로가 ‘카탈로그의 노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탈리아에 640명, 독일에 231명, 프랑스에 100명, 터키에 91명, 그리고 스페인에 무려 1,003명”이다. 그는 “농촌 처녀, 도시 처녀, 하녀, 백작부인, 남작부인, 후작부인, 공주님 등 모든 계층, 모든 용모, 모든 연령의 여성들”을 유혹한다. 이 황당한 유혹의 기록이 웃음의 원천이 된다. 오페라 내내 돈조반니는 새로운 유혹에 실패하며 좌충우돌하는데, 이 과정을 고소해 하며 맘껏 웃어도 좋을 것이다.

두 번째 코드는 돈조반니를 일종의 영웅으로 보는 시각이다. 돈 조반니는 부도덕하다. 윤리적 규범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유혹자가 도덕적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자유와 생명력을 예찬하는 디오니소스적 인간이다. 그의 행동은 빠르고 정확하며, 그의 에너지는 고갈될 줄 모르며, 그의 의지력은 평범한 인간의 한계 저편에 있다. 1787년 프라하 초연 당시 젊은 처녀 체를리나가 등장하면 남성들이 휘파람으로 환호했고 돈조반니가 등장하면 여성들이 괴성을 질렀다니, 리버럴한 당시 청중들에게는 돈조반니를 일종의 영웅으로 보는 시각이 아주 설득력이 없진 않았던 모양이다.  

이러한 해석의 대표자는 덴마크의 사상가 키에르케고르다. 그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한 챕터를 할애해 이 오페라를 예찬했다. 모차르트의 <돈조반니>는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괴테의 <파우스트>를 능가하는 독보적인 작품이다. 돈조반니와 만난 여성들은 단순히 피해 여성이 아니라 자기 책임으로 사랑과 실존을 직면했다. 주인공 돈조반니는 단순한 바람동이가 아니라 ‘정열과 감성의 천재’며, 선악을 뛰어넘은 디오니소스적 인간이다. 이 시각에서 보면, <돈조반니>는 일종의 비극이 된다. 그가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2막 ‘기사장의 심판’ 장면에서 이 오페라는 사실상 끝나는 셈이며, 선남선녀들의 마지막 합창은 사족에 불과하다.

   

▲ <돈조반니> 1막 피날레에서 모차르트가 “자유 만만세”를 외친 것은 프랑스 혁명 2년전이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오페라 해설가들이 간과하고 있는 혁명의 코드다. 1막 끝부분, 돈조반니는 선남선녀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벌인다. 복수를 위해 그를 추적하던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연회장에 도착하자 돈조반니는 “자유 만만세”(Viva la liberta)를 선창한다. 맘껏 즐기라며 손님들을 환영하는 셈인데, 돈조반니 입장에서는 자기의 방종을 예찬하는 꼴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자유 만만세”를 합창할 때 이것은 자연스레 혁명의 구호가 된다. (링크 1:22:05부터)

이 오페라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혁명의 코드는 특히 하인 레포렐로의 대사에서 감지할 수 있다. 레포렐로는 등장인물 중 청중들과 가장 가까이 교감하는 캐릭터다. 그는 가장 흔해빠진 인간상으로, 먹고살기 위해 돈조반니의 하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는 돈조반니가 자기 마누라를 건드렸다는 걸 알고도 항의하지 못하는 속물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럭저럭 현실과 타협하고 사는 대다수의 인간이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불평 섞인 대사들은 봉건 귀족들의 억압에 신음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킨다. 1막 첫 장면부터 그는 “주인이 즐기는 동안 보초나 서고 있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2막 첫 장면에서 “더 이상 못해 먹겠다”며 떠나겠다고 주인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의 속물적인 행태에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의 평범한 행태에 공감하기 때문에 “자유 만만세”의 외침에 자연스레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