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마루타였다” 의료사고 피해자인 심아무개씨는 남편 김아무개씨와 함께 지난 1994년부터 부천에 위치한 한 병원을 찾았다. 김씨의 어머니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뒤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김씨는 건강했다. 김씨는 건강관리만큼 꼼꼼하게 회사를 관리하던 전자업계 사업가였다.   

김씨는 부천의 한 병원 소속 이아무개 의사에게 지속적으로 정기검진 및 진료를 받았다. 그러던 중 지난 2003년 8월 의사는 김씨에게 임상실험 하나를 제안했다. 한 제약업체에서 B형간염 바이러스 활동을 억제하는 약을 개발했는데 심씨와 김씨는 이 약의 실험대상에 대해 ‘B형간염보균자 중 건강한 사람’이라고 들었다. 김씨가 사망한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진료기록에 보면 김씨는 1999년 이미 간경변증이 있었기 때문에 임상실험 대상자로서 부적절했다는 게 심씨의 주장이다. 

하지만 의사가 김씨에게 간경변증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이런 사실을 몰랐던 김씨는 믿고 있던 의사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하지만 6개월 뒤 몸이 나른해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심씨와 병원 측의 민사소송 판결문에 따르면 이 약은 미국에서 무기력해지는 ‘근무력증’을 이유로 임상실험이 중단된 바 있다. 김씨 부부는 약물을 끊어줄 것을 요구했고 의사도 이에 동의했다. 

2004년 7월경 김씨는 심한 황달로 보름간 입원치료까지 받았다. 심씨는 의사에게 항의했고, 의사는 입원비 전부를 내줬다. 심씨가 보기에 이는 “의사가 임상실험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2009년 CT촬영에서는 ‘힐끗 힐끗 뭐가 보인다’는 이상 소견을 내리고도 의사 이씨는 김씨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심씨는 “(내가)참 순진했다”며 “찜찜했지만 의사가 괜찮다니 다 괜찮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 의료사고 피해자 심아무개씨.
 

 
지난 1994년부터 이아무개 의사에게 16년간 ‘건강에 아무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아온 김씨는 지난 2010년 10월 27일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간암 말기입니다.” 일주일사이 10kg이 빠졌던 김씨에게 내려진 사형선고였다. 김씨는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지난 2011년 7월 세상을 떠났다. 심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믿어왔던 의사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의사가 건강하다고 했지만 김씨는 아팠기 때문이다.

이아무개 의사가 심씨에게 알리지 않았던 진료기록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006년부터 암으로 보이는 1㎝짜리 결절이 있었고, 2008년에는 간암검사를 하라는 진단도 있었다. CT촬영에 의사가 ‘힐끗 힐끗 뭐가 보인다’고 했던 2009년 진료기록에는 ‘간세포암’이라고 적혀있었다. 

심씨는 남편 사망 직후 병원에 1994년부터의 진료기록을 요구했다. 병원에서는 10년 이상 지난 진료기록은 폐기했다고 답했다. 양측은 법정에 섰다. 법정에는 심씨에겐 숨겨왔던 병원진료기록이 제출돼 있었다. 그곳엔 간장약 복용이라는 외래 진료 기록까지 추가돼 있었다. 

남편은 마루타였다, 의사가 간경변 사실 알리지 않아

심씨는 담당의사가 미필적 고의 부작위, 즉 살인을 방조했다고 주장했다. 간암이 초기에 발견됐지만 말기가 돼서야 김씨에게 얘기했고, 김씨에게 간경변증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신약 임상실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심씨가 자신의 남편이 “마루타였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남편이 떠나고 심씨는 남편의 사업을 이어받았다. 소송과 사업으로 정신이 없는 사이 심씨는 딸들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심씨는 “남편의 사업을 살리지 못하면 집안 통째가 망할지도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라 첫째 딸이 우울증에 괴로워하던 걸 뒤늦게 알았다”며 “남편이 데려갔다고 봐야할까, 첫째 딸은 아빠를 따라 세상을 떠났고 결과적으로 나는 의료사고로 가족 두 명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 됐다. “작은딸이랑 나랑 둘이 이 사건을 가슴에 묻고 평생 억울하게 살지, 언제 밝혀질지 모르는 진실을 위해 온몸을 던져볼지, 참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가족을 둘이나 잃은 마당에 답은 정해져있는 것 아닌가.” 심씨는 2심부터 재판내용을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심씨가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던 1심 재판은 병원측의 주장이 더 많이 받아들여진 채 끝나 있었다. 심씨는 “수사당국은 남편 사망 직후 병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증거확보 노력을 하지 않았고 재판은 병원 측 답변서에 의존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서울남부지법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1996년부터 김씨가 간염이 악화돼 간장약을 복용했고, 2003년부터 실시한 임상시험에서도 김씨가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했고, 이로 인해 간 건강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병원 측이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면 김씨는 1996년부터 간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고 병원은 이에 따른 적절한 처방을 해온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병원의 진료기록을 보면 김씨는 1999년에 간경변증이 발견됐고,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심씨는 남편의 질병을 의사에게 통보받은 바가 없었다. 

민사 2심 재판 중엔 의사가 남편에 대한 임상실험을 계속했다는 정황도 밝혀졌다. 2010년 5월에 약 투여를 중단하라는 기록이 나왔기 때문이다. 2004년 중단했던 임상실험이 언제 재개됐는지 모른 채 왜 2010년 다시 중단돼야 했을까? 답변서에 따르면 병원 측은 김씨의 간경변증이 악화되고 있어 2010년 4월 8일 약을 처방했으며 당시 그 약은 식약청의 정식 허가를 받아 시판되고 있었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 2010년 8월 진료기록에는 2010년 5월부터 약을 중단하라는 기록이 등장했다. 심씨는 2004년 임상실험을 중단했던 약이 언제 남편에게 다시 처방됐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심씨는 간경변증이 있다는 사실과 임상실험 부작용으로 중단했던 약을 다시 처방한 사실을 모두 모른 상태였다. 진료기록에도 2010년 4월 8일 말고도 같은해 3월 11일에도 이 약 30일분을 처방한 기록이 있다. 

심씨와 병원 측의 공방은 임상실험이 시작된 2003년이 아닌 간암 말기 판정 약 1년 전인 2009년경부터의 기록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재판부는 김씨가 B형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였으므로 임상실험 대상 요건에 해당한다고 봤고, 의료과실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진료기록상에 간암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2009년 이후의 내용으로 공방의 범위를 제한했다. 

법원은 조정권유, 조정중재원은 의료인에게 유리

1심이 끝나자 법원은 심씨에게 2심이 아닌 조정을 권유했다. 지난해 3월 발의된 의료분쟁조정제도 개정 법안을 보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는 조정절차에서 진술이나 감정서 등을 소송에서 원용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또한 조사를 방해하더라도 과태료로 형사처벌이 감형되는 등 의료인들에게 유리한 조항이 많다.

심씨는 조정을 거부했다. 조정과정에서 의료감정을 진행하는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인들의 이익집단이고, 심씨의 담당의사는 대한의사협회 간학회장을 역임했던 사람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또한 심씨는 자신의 남편이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임상실험을 해온 의사와 조정이나 합의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실제 이 사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죄 없음’이라는 조사결과는 내놨는데 이는 사법부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한 것에 비해서도 후퇴한 결론이다. 

조정권유를 거부한 뒤 2심이 시작됐다. 심씨는 “임상실험이 시작된 시점부터 진료기록을 가지고 의사와 제약회사간 리베이트 사건까지 다 파헤쳐봐야 진실이 드러난다”고 주장했지만 심씨의 말을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민사소송에서 재판부는 “병원 의료진이 적어도 (간세포암 감별 진단이 있었던) 2009년 6월 이후에는 김씨에 대해 간세포암 진단을 내리고 이에 대한 적절한 처치를 해야 함에도 소홀히 했다”며 의료진의 업무상 과실을 인정했다. 

심씨는 “민사소송이 끝나기 전에 담당의사가 기소됐는데 그러면 형사소송결과가 나올 때까지 민사소송도 보류된다고 들었고, 그 사이에 법원에 문서제출명령서와 사실조회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심씨는 자신의 남편이 임상실험에 부적절함에도 참여했으며 그 결과를 가지고 당시 식약청의 허가를 받은 약에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제약회사와 병원, 식약청에 임상실험결과보고서를 요청해달라고 재판부 신청했고, 환자의 동의 없이 약을 사용한 경위, 약의 부작용 등에 관한 자료 제출명령을 재판부에 신청했다. 

하지만 자료제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민사소송이 끝났고, 지난 2013년 말 시작된 형사소송에서도 심씨는 업무상 과실치사가 아닌 살인방조 미필적 고의를 주장했지만 검사는 김씨의 담당의사를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했다. 

일부 이겼다지만 밝혀진 진실은 없어 

심씨는 현재 작은 딸과 함께 남편이 남겨놓은 사업을 키워가고 있다. 세상을 떠난 김씨와 그의 첫째 딸과의 추억이 녹아있는 네 가족이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집을 구했다. 하지만 심씨는 남편을 진짜 떠나보내는 길은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 생각한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을 잘 듣고 병원에 가면 의사 말을 잘 듣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해보면 남편은 세수를 하다가도 코피가 자주 났었고, 몸이 너무 피곤해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담당의사에게 소견서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심하라는 의사의 말만 믿었다. 병원 측의 잘못이 밝혀지고 다시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남편의 담당의사 면허를 박탈당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심씨는 남편 김씨가 눈을 감기 전에 ‘내가 죽은 후에라도, 억울한 내 의료사고를 알아봐달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민사소송 직후 담당의사는 해당 병원을 떠났고, 형식상 민사소송은 심씨가 일부 승소했지만 사법부는 심씨의 억울함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지난 15일로 예정됐던 형사 3차 공판은 병원 측의 요구로 다음 달로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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