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보면 정치 돌아가는 꼴이 어느 예능 TV 프로그램보다도 재밌을 때가 있다. 이런 느낌에 두 가지 생각을 해봤다. 아, 내가 나이가 들고 있구나. 나이 많은 남자들이 정치 수다를 좋아하지 않던가. 노화 현상을 부정하고 싶었는지, 또 하나 든 생각은 바로 이거였다. 어쩌면 대한민국 정치가 예능보다 우스운 건 사실일지도…

때마침 등장한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이란 코너는 그래서 눈길을 끈다. 주인공이 우연찮은 기회에 시사토론에 토론자로 참석하게 되고, 거기서 하는 모든 말들이 정치적 발언으로 왜곡되어 파장을 일으킨다는 내용이 골자다. 토론과 정치. 한동안 보기 어려웠던 정치 풍자 코미디다. 내 개인 취향에 부합하는 건 물론이고 우리 시대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웃음 포인트는 간단하다. 모든 말을 정치적 표현으로 번역해내는 사회자 박영진의 집요한 재기발랄함에 기가 차고, 그 와중에 정치적 사태에 휘말린(?) 주인공 유민상의 바보스러움에 깔깔거리면 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토론자가 ‘이왕 그’렇게 된 거 그렇다 치자고 하면 사회자는 이완구 전 총리가 돈을 받은 게 사실이란 말이냐고 놀라고, 당황한 토론자가 그게 ‘문젠’게 아니라고 하면 놀란 사회자는 그럼 문재인이 문제라는 거냐며 더 놀란다.

주인공 캐릭터에 정치적 무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인들이 응축되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관심의 실체가 정치에 대한 냉소나 혐오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주권’을 행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대중들의 정치적 역량 문제에서 비롯된 건지는 확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에 관심을 두려하지 않고 어떻게든 회피하고자 하는 게 오늘날 대중적 정치의식의 단면 아니던가.

   
▲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 화면 갈무리
 

문제는 이놈의 정치는 피하면 피할수록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탈정치적 성향이 정치적 표현으로 왜곡·번역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는 우리 모두의 운명과 다를 게 없다. 이를테면 신체적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사회적 요구나 먹고 살게 해달라는 경제적 요구가 곧잘 불순분자들(?)의 정치적 요구로 둔갑하는 현실이 그렇다. 이건 적어도 둘 중 하나 또는 둘 모두를 가리킨다. 대개의 기득권자들은 그 모든 비정치적 요구를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도전으로 받아들인다는 점, 따라서 우리네 삶의 거의 모든 일들이 사실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민상토론’의 미덕은 바로 이 지점마저도 비꼰다는 데 있다. 그들이야 단지 웃기고자 했을 뿐인지 모른다. 그러나 토론을 중간 정리하기 위해 사회자가 “개그맨 유민상씨의 의견은 개그콘서트 조준희 PD와는 전혀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했을 때, 관객들의 웃음은 어안이 벙벙한 주인공을 향한 것임과 동시에 정치적 (대리인일 뿐이지만 사실상으론) 지배세력의 속좁은 그릇을 비웃는 것이기도 하다.

   

▲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물론 이 흐름이 마냥 통쾌한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개콘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 풍자를 위해 탈정치적인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에게 정치 풍자의 책임을 전가하는 기묘한 방식을 채택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지점에 이르러 관객들은 오늘날 정치 풍자의 한도가 어디까지인가를 재삼 확인하게 되는 건 아닐까.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누가 봐도 정치적이지만 결코 정치적인 게 아니라고 항변하는 전략. 그와 같은 항변의 대상이 정치권이나 심의당국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대상이 어쩌면 우리 시대의 ‘대중적인’ 정치 혐오 문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시청자 대중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을 가장 꺼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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