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경악시킨 예비군 총기사고가 발생한 지 엿새가 지났다. 지난 13일 발생 당시만 해도 모든 이슈를 압도하며 온 언론사에서 앞다퉈 비중있게 다루던 사고는 주말을 넘기지 못하고 가시권에서 멀어졌다.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급변하고 뉴스는 넘쳐난다. 사건의 경중을 떠나 이슈의 지속력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13일부터 국방부에서 이 사고를 취재하며 ‘짧고 굵은’ 취재 행태를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사건 당일 우르르 취재경쟁에 뛰어들어 똑같은 속보를 써대다가, 잠시 ‘단독’ 경쟁을 하고, 중간 수사결과가 발표되고 ‘대책’(비슷한 것)이 발표되면 기승전결이 완결된 마냥 취재도 끝나버리는, 새로울 것도 없는 언론의 주기.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루를 소개하고자 한다. 15일 아침 국방부 기자실. 지난 이틀 거의 밤샘 취재로 녹초가 된 기자들이 평화로운 하루를 기원하면서도 ‘오늘은 뭐 쓰지’ 하는 고민에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이때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안전 대책을 세우기 전까지 예비군 훈련을 전면 중단하라”고 발언하면서 잠시 평온하던 국방부는 또 다시 들끓었다.

10시 반 브리핑에서 유 원내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예비군 훈련을 중단할 계획이 없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준비를 완벽히 못해온 대변인은 “사고난 부대는 사격훈련을 이론교육으로 대체하고 나머지 부대는 계획대로 훈련을 진행한다”고 짧게 답했다. 단신 처리됐다.

이날 오후 2시쯤. 한 초년생 방송기자가 하소연을 한다. “회사에서 대책 관련해 만들라는데 딱히 나온 게 없는데…” 각 언론사 데스크에서 슬슬 ‘대책’ 꼭지를 준비할 무렵, 국방부는 귀신같이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오후 3시 반쯤 갑자기 기자실에 배포된 ‘예비군 훈련 총기사고 재발방지 안전대책’ 유인물은 우선 조치사항과 추가 검토사항 등으로 빽빽히 채워져 있었다. 추가 검토사항엔 통제관에게 방탄복과 실탄을 부여하고 현역복무 결과를 예비군부대에 연동하는 방안 등 파격적인 내용이 포함돼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자들은 일제히 군이 해당 내용을 ‘검토 중’이라는 속보를 내보냈고 포털을 통해 즉각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몇 분이 지났을까, 대변인이 급히 기자실로 들어와 해당 내용은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추가 검토사항’은 아이디어 차원으로, 실행 여부는 예산과 가능 여부를 태스크포스(TF)에서 검토한 후 확정한다”고 했다. 검토 중이라고 쓰면 되냐는 질문엔 “검토 중이라고 하면 국민들은 하는 줄 안다”며 거듭 ‘아이디어 차원’이라는 애매한 워딩을 설파했다. 실행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퇴로를 만들고 있다고밖에는 해석되지 않았다. 면피성 대책발표의 최후였다.

기자들은 속았다. 속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걸 써 말아. 아우 진짜 미치겠네” “할지 안할지 알지도 못하고 발표를 하면 어떡해요” 기자들은 한숨을 내쉬다 못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일제히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황당한 상황을 설명했다.

결론은? 이날 저녁 대부분의 지상파 뉴스에서 해당 안전대책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정치권의 대책 촉구에 상응하는 보기 좋은 ‘그림’이 만들어졌다. 이날의 촌극은 화면 밖으로 밀려났다. 대책 실효성을 지적하는 온라인 기사들이 나오긴 했지만 이날은 결국 국방부가 안전대책을 발표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 박소연 머니투데이 기자

 

 

물론 대책 일부는 실행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로써 대부분 언론이 사건을 봉합했고, 이것의 실행 여부에 더 이상 큰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는 데 있다. 사건사고는 그 자체보다 잠재된 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드러낸다는 데 의미가 있다.

1년 전, 세월호 참사로 사회의 안전 시스템이 바뀔 거라고 모두가 장담했지만 현재 어떤가. 우린 여전히 정부의 말만 받아적고 있진 않은지. 이번 예비군 총기사고 이후 정말 우리 예비군들이 안전해질지, 두 눈 부릅뜨고 길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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