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력이 과학발전을 이끈다.

시간여행이라는 화두는 H.G. 웰스의 소설 <타임머신>으로부터 <백 투 더 퓨처>, <콘택트>, <인터스텔라> 등 헐리우드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 의해 변주됐다. 특히 그 배경에는 공통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E=mc²’ 라는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말로 설명하기에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방정식 말이다.
 
그렇게 어렵다는 상대성 이론에 제일 근접한 영화는 아마도 <인터스텔라>일 것이다. <인터스텔라>가 우리를 우주의 가장 먼 곳과 그 너머 제 5차원을 향한 환상적인 여행으로 이끄는 데에는, 스티븐 호킹과 어깨를 견준다는 이론 물리학자 킵 손의 엉뚱한 상상이 있기에 가능했다. <인터스텔라> 제작 초기부터 영화에 참여한 그는 서로 다른 시공간을 연결하는 웜홀(worm hole)을 통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고,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는 <인터스텔라의 과학>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킵 손은 <인터스텔라> 외에도 과거 <콘택트>의 자문을 맡기도 했는데, 과연 킵 손을 과학자의 길로 인도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인터스텔라의 과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린 시절과 10대에 나는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등의 과학소설과 아시모프와 물리학자 조지 가모브의 대중 과학서를 읽으면서 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10대의 킵 손이 과학소설을 읽고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면, 70대의 킵 손은 <인터스텔라>를 통해 그 상상을 체계화 시켜 ‘제 2, 제 3의 킵 손’을 탄생시키려는 건 아닐까.

얼마 전 킵 손의 바람을 이루기 위한 책이 나왔다. 랜들 먼로의 다소 엉뚱하지만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담겨 있는 <위험한 과학책>이 바로 그 것이다. 저자인 랜들 먼로는 NASA의 로봇공학자 출신으로, 현재는 ‘xkcd’(www.xkcd.com)에서 웹툰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위험한 과학책>은 그 웹툰을 엮은 책이다.

   
 
 

 
전 세계 네티즌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는 구성인데, 질문들이 황당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랜들 먼로는 이처럼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한다.

Q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수조에서 수영을 하면
A (전략) 저장 수조의 바닥까지 다이빙을 한다거나 이상한 물건을 집어 오지 않는 이상, 아마 별 문제 없을 겁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원자로가 있는 연구 시설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방사능 차폐 수조에서 누군가가 수영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봤는데요. “우리 원자로에서?” 친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금방 죽을 거 같은데? 아마 물에 닿기도 전에 죽을 거야. 총 맞아서.”

SNS와 관련된 문답도 흥미롭다.

Q 서로 다른 영어 트윗은 몇 개까지 만들 수 있나?
A 트윗은 140자 길이입니다. 영어에는 26개 글자가 있고요. 이것을 이용하면 총 27억1401만2000개의 문자열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 쓸 수 있는 문자는 여기에 한하지 않죠. 유니코드에서 쓰는 것은 모두 다 쓸 수 있고, 유니코드는 100만 개가 넘는 문자를 포함할 공간을 갖고 있으니까요.

(유니코드는 고사하고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계산을 해보려다 내 머리로는 감당이 안돼 참았다.)

고비용 저효율의 끝판을 보여주는 예도 있다.

Q 프린트된 위키피디아를 실시간 버전으로 수정하려면 몇 대의 프린터가 필요한가?
A 많이 필요 없다. 6대 정도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종이 값 + 전기세 + 잉크 카트리지 + 관리자 인건비]로 한달에 50만 달러가 든다.

   
 
 

어쩌면 덴마크의 GDP를 급상승시켜 경제 최강국으로 만들 만한 프로젝트도 있다.

Q 레고 블록으로 런던에서 뉴욕까지 차로를 만들려면 몇 개의 블록이 필요한가? 지금까지 제조된 레고 블록이 그 정도가 되나?
A 지금까지 생산된 블록으로도 뉴욕-런던을 ‘연결’할 수는 있다. 뉴욕과 런던은 레고 블록 7억 개만큼 떨어져 있다. 하지만 자동차가 다니려면 폭이 넓어야 하니 더 많은 수량이 필요하다. 문제는 대서양에서 블록을 뜨게 하려면 블록에 밀폐제를 바르는 등 화학적인 처리와 운송비, 해저케이블 설치 등이 필요하다. 이 모든 절차에 5조 달러가 소요된다. 런던 부동산 시장의 총 가치는 2.1조 달러이다.

   
 
 

이외에도 ‘핵잠수함이 슈퍼맨처럼 지구 궤도를 돈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영화 <300>처럼 화살을 잔뜩 쏘아 태양 가리기’, ‘<스타워즈>에서 요다가 발휘하는 포스의 출력’ 등의 말도 안되는 질문들이 쏟아진다(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했을 법한 질문들이다). 먼로는 이에 정색하지 않고 과학적인 근거를 들고 웹툰을 가미하며 차근차근 설명하는데, 그 참고문헌의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랄까. 이 책은 어렵게만 여겨졌던 과학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얼마나 쉬우면 초등학교 3학년인 나의 아들도 레고와 요다가 나온 챕터에서 깔깔거리며 웃었을까.

먼로는 서문에서 자신이 xkcd에서 ‘약간 정신 나간 과학도들을 위한 일종의 <디어 애비Dear Abby> 역할’을 한다고 했다. 47년간 인생상담을 했던 칼럼과의 자뻑비교가 겸연쩍었는지, 다음과 같은 경고도 잊지 않고 곁들였다.

   
 
 

“이 책에 나오는 어떤 내용도 절대로 집에서 시도하지 마세요. 이 책에 담긴 정보로 인한 그 어떤 직∙간접적 부작용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굳이 아르키메데스, 코페르니쿠스, 뉴턴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엉뚱하고 황당한 생각은 과학을 발전시켰다. 이 땅의 모든 에디슨들은 지금 당장 달걀을 품어야 할 것이다.

   
 
 

본문에 삽입된 일러스트의 출처는 모두 ‘xkcd’입니다.
랜들 먼로 지음 / 이지연 옮김 / 시공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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