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공정성 보장은 언론 노동자의 근로조건이다.” 

법원의 이 말 한마디가 갖는 힘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민사와 형사 항소심 재판부 모두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의 파업 정당성을 인정하며 이와 같이 판단했다. 사측은 “파업이 반복될 것”이라며 우려하지만 언론계에서는 역사적 판결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MBC 언론인 6명(강지웅·박성제·박성호·이용마·정영하·최승호)에게 덧씌워진 해직이라는 굴레는 법원에 의해 잠시나마 벗겨졌다. 언제가 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았다. 그래도 이들 얼굴에는 미래의 두려움보다 당장의 해방감과 기쁨이 가득했다. 미디어오늘이 12일 오전 이들 6명을 상암동 MBC 신사옥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 지난달 항소심에서 '해고무효' 판결을 받은 MBC 해직 언론인 6명이 지난 12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최창호 'way' PD)
 

- 파업 손배소를 제외한 항소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정영하 : 재판이 계속될수록 공허함을 지울 수 없었다. MBC는 법원 판결과 결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으니까. 저항해서 무언갈 바꾸자고 우리가 나선 건데 시간만 가는구나 싶었다. 2심에서 지면 대법에서도 진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판결이라는 바늘구멍을 이제야 뚫고 나왔다. 이제는 결실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승호 : 방송사에서 파업을 했다하면 거의 다 업무방해로 판결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선배들도 업무방해로 기소되고, 집행유예 등 범법자로 결론났던 게 현실이었다. ‘공정방송이 근로조건’이라는 말을 법원에서 판결로 들었을 때 귀가 의심스러웠다. 1심에서는 ‘진보적인 판사들이 사고쳤다’는 느낌이 앞섰다.(웃음) 2심에서도 판결이 유지되는 걸 보면서 비로소 파업의 의미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박성호 : MBC 구성원들이 ‘정의로운 일을 했다’는 응원을 밖에서 듣는 건 익숙했다. 그러나 사법적으로 객관적으로 판단을 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다. 우리의 주장이 남들의 평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무엇보다 의미있다고 본다. 내부에 던지는 메시지를 넘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있지 않나 싶다. 최근 대학생 대상으로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학생이 ‘기자님이 정의롭게 싸운 것은 알겠다. 그러나 리더로서 전술적으로 패배한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 더 큰 일을 위해 파업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느냐에 대한 의문이었다. 또 다른 학생은 ‘우리 젊은 세대에게 그러한 저항과 용기를 요구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하더라. 학업, 취업 등 일상화한 좌절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재판은 꼭 이겼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혹여 ‘불의가 승리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청년들에게 전할까 싶어 많은 걱정을 했다. 정의가 승리한다는 메세지를 줄 수 있어 기쁘다.

- 해고무효 판결 직후 박성제 기자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었나?

박성제 : 아니, 옆에서 이호찬 노조 민실위 간사가 흥분하면서 내 손을 꼭 잡더라고. 그래서 나도 눈물이 좀 났어.(웃음) 1심 때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재판정에 나가지 못했다. 처음부터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1심 재판부가 워낙 판결을 잘 정리했다. 판사들 사이에서 상당히 주요한 이슈가 아니었을까 싶다. 수많은 사건 가운데 우리 사건을 길게 설명해주고 별도의 보도자료 내는 걸 보고 더 그랬다. 판사들이 이번 기회에 MBC 판결을 우리 사회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던 게 아닌가 싶다. 대법에 가서도 잘 유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 박성제 MBC 해직기자. (사진=최창호 'way' PD)
 

- 1·2심 재판부 모두 ‘공정방송은 근로조건’이라는 결론을 냈다. 역사적 판결이라는 평가도 나오는데.

이용마 : 공정방송이 근로조건에 해당이 된다, 그리고 공정방송이 단순히 경영진에게만 주어진 자유 내지는 의무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권리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선고 직후 이야기했지만 공정방송이 사측의 일방적인 행위로 인해 침해된다면 언론인들이 저항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한 것이라고 본다. 언론사 파업과 관련해 이전까지는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곤 했다. 이번 형사판결을 보면, 업무방해 혐의로 무조건 처벌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파업의 목적이나 절차가 정당하다면 하위법률인 업무방해죄로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파업을 처벌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얘기다. 노동 운동 차원에서도 의미있는 판결이다. 

박성제 : 너무 낙관적인 전망 아닌가.(웃음) 이번 판결의 결과는 MBC노조가 파업에 앞서 지속적으로 공정방송협의회 개최를 요구했고, 공정방송 요구를 절차에 따라 제기했다는 점을 판사들이 인정한 거라고 생각한다. 낙하산 사장 반대라는 명분만으로 파업한다고 지금처럼 정당성이 인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박성호 : 법원은 절차를 굉장히 중요하게 판단했다. 공정성을 지킬 의무가 노사 양측에 있는데, MBC 노조는 끊임없이 (불공정 방송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절차를 지켜 복구하려고 애썼지만 사측은 불응하고 회피했다고 했다. 2012년 당시 노조가 절차를 지켜 싸웠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된 계기다. 핵심은 노사 모두에게 공정방송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강지웅 : 대법에서도 확정 판결을 받고 우리가 다시 MBC로 복귀하는 과정이 이뤄지게 된다면, 한국 언론사(史)에 획기적인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 우리 싸움이 진행 중이라고 본다. 170일 파업도 끝나지 않은 것이고. 어떤 식의 결말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제 7부 능선을 넘었다. 또 인상 깊었던 것은 재판 과정이었다. 공정방송 요구에 체화돼 있지 않은 판사나 배심원들, 그들에게 사측은 ‘MBC노조는 정파적’이라고 주장하고, 우리는 ‘공정방송을 위해 싸웠다’고 설파했다. 2심에서는 최고의 변호사끼리 맞섰고 증인으로 많은 관계자들이 나왔다. 그 과정이 한 편의 영화처럼 되게 멋있었다.(웃음) 사료로서 재판 과정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 종사자들이 그 기록을 꼭 봐야 하지 않을까.

   
▲ 박성호 MBC 해직기자. (사진=최창호 'way' PD)
 

- 재판 과정에서 MBC의 위증이 드러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성호 : 회사 측은 막판까지 우리가 주장했던 보도 불공정성 사례가 왜곡됐다면서 반박 자료를 제출했다. 자료를 보면 숱한 증거 조작이 드러난다. 한두 건이 아니었다. MBC 경영진은 사법부마저 속이려 들었다.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사법부도 안중에 없던 것이다. 지난 2011년 한미FTA 보도에서 발생했던 리포트의 누락, 왜곡, 삭제의 방식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서도 똑같이 확인됐다. 기본적인 법질서마저도 우습게 여기고,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자의적으로 이용한다는 데서 현재 MBC 경영진의 인식 수준이 드러난 것이다. 

- YTN 해직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받는 데까지 3년 반이 걸렸다. MBC 판결은 더 오래 걸릴 것 같다.

이용마 : 1·2심은 판사들이 독립적인 판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현 대법관들은 MB정부 이후에 임명됐다. 철도노조 파업, 쌍용차 정리해고 등에서 원심을 뒤집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그래서 현재 MBC 판결이 그대로 굳어지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래도 2심 판결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우리와 같은 사례가 다시 생긴다면 MBC 판결이 기준이 될 테니까.

최승호 : 일반 국민 인식이 중요하다. 1심에서 2심까지 과거 없던 판결이 다섯 차례(업무방해 형사 1·2심, 해고무효 1·2심, 손배소 1심)나 나왔다. ‘김재철은 정말 심하다’, ‘MBC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데 여론이 모아진 결과다. 보수적 국민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현재 MBC는 심각하다. 이제 국민들은 세월호 사건을 경험하면서 ‘공영언론을 보고 행동하다가는 내 생명도 위험할 수 있겠구나’라고 판단하게 됐고, 이러한 현실 인식이 재판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언론 공정성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을 대법원이 뒤집는다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이용마 : 최승호 PD 말씀대로 업무방해 2심 형사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 결과를 인용했다. 평균적인 시청자인 배심원들이 공정방송 요구에 손을 들어준 사실을 반영했다. 이번 판결이 만약 한 건이었다면 대법원 입장에서 부담이 적을 텐데 사실상 형사, 민사, 손배소까지 3건이다. 대법원도 고민이 많이 될 것이다. 

   
▲ 이용마 MBC 해직기자. (사진=최창호 'way' PD)
 

- 이보다 앞서 김재철 사장에게 배임 혐의로 징역형이 내려졌다. 

이용마 : 인과응보다.(웃음) 

정영하 : 살짝 측은지심도 들었다.(웃음) 저 양반은 무엇을 얻자고 그때 그랬을까 싶다. 모든 걸 (정치권에) 바쳤으면서.

최승호 :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다. 후세대 언론인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언론을 망가뜨린 인간의 종말이 저렇구나’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정영하 : 김 사장은 끊임없이 사리사욕을 챙겼으나 결국 반면교사가 됐다. 공영방송 사장이 사천 시장 나가서 4등한 것은 또 뭔가. 법정에서 판사의 꾸짖음을 들으며 실형을 받았다. 너무 말 안 되는 행보가 이어지니까. 이런 사례는 앞으로도 없을 거다. 

이용마 : 사천 시장 후보로 나가기 위해 새누리당에 공천 신청을 하면서 속내가 드러났다. 그런 자리 몇 개 더 얻기 위해 그동안 정권 뜻에 맞춰서 움직인 거 아닌가. 

정영하 : 김재철 사장은 이 정도로 자기가 MBC를 (정권에) 팔았으면 솔직히 총리는 돼야 한다.(웃음) 

박성제 : 김재철 사장이 당시 사천 시장에 나올 때 공약 가운데 박정희 고등학교를 만들겠다고 한 게 있다. 그걸 보면서 만약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면 노무현 고등학교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을까.(웃음)

박성호 : 이번 판결에 비춰보면, 김재철 사장 사례는 경영진의 생각이 얼마나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김재철 사장의 인사들이 여전히 경영권을 쥐고 있다. 

강지웅 : 적어도 김재철 사장은 전면에 나섰다. 노조가 던진 계란을 자기 얼굴로, 정면으로 맞았다. 안광한 현 사장은 뒤에 있었다. MBC 조합원 징계의 수장은 안광한 사장이었다. 과거에는 김재철 사장 등 뒤에 숨어 있었다. 지금은 MBC라는 회사 뒤에 숨어있다. 그들(현 MBC경영진)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자기 실명이 거론되고 ‘당신은 좀 나쁜 사람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듣는 걸 제일 두려워한다. 김재철 사장은 이와 비교하면 전국구 스타다. 만약 법원이 개개인을 특정해서 실명을 얘기했다면 바짝 엎드렸을 것이다. 정말 비겁하다. 최소한 언론인이라면 양심에 따라 당당하게 법원 판결에 입장을 밝혀야 한다. 언론사에 남을 판결인데 그들은 결코 자기의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 

박성호 : 만약 이 재판이 끝까지 가서 지게 된다면 우리는 책임을 질 것이다. 판결에 따라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지금의 결과가 확정된다면 임원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이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우리의 복직보다 시급한 것은 회사의 정상화다. 현 경영진 태도를 보면, ‘사주가 있는 회사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수신료를 받아 국민과 의회의 감시에 있다면 이런 행태를 보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하려면 인적 자원이 제대로 정상화해야 할 텐데 아직도 경영진은 파업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런 문제 제기를 하면 비제작부서로 배제를 하잖나. 안광한 사장은 구성원 징계에 있어서 인사위원장이었다. 이것을 주워 담기가 어려울 거라고 본다. 다시 말해 MBC 정상화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데, 자기가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 안광한 사장은 MBC를 정상화시킬 수 없다. 

최승호 : MBC는 과거 대단한 언론사였고 MBC가 어떤 보도를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식인들은 MBC가 어떤 보도를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는 더 이상 MBC를 모니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MBC 소식을 듣는 것도 귀찮고, MBC가 어떻게 개선돼야 하는지에 대해서 ‘굳이 필요하느냐’는 반응이 크다. 종편은 가끔씩 박근혜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MBC 경영진은 박근혜 비판하면 죽는 줄 안다. 사소한 비판에도 어쩔 줄 몰라 하잖나. 시청자에게 외면받는 이유다.

   
▲ 2012년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강지웅 PD(왼쪽)와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 (사진=최창호 'way' PD)
 

- 지속적으로 축소·왜곡·누락되는 공영방송의 보도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하는 여론도 있다. 세월호 보도에서 드러나듯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용마 : 공영방송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국, 이탈리아 등은 상업 방송 천국이다. 그런 국가에서 공익을 대변하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있느냐를 봤을 때 굉장히 회의적이다. KBS, MBC라는 공영방송이 있다는 것 자체는 국민에게 혜택이다.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처럼 지금 공영방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 제도 자체를 아예 없앤다고 하는 건 기득권 세력이 원하는 걸 채워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박성호 : 오죽하면 공영방송 무용론이 나올까 싶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종편 등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되면서 다시 중심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시청자들이 파편화한 상태의 매체를 접하기 때문에 오히려 공영방송과 같은 질 높은 콘텐츠가 제공돼야 한다. MBC를 없애면 그 자리는 누가 채울까. 재벌 방송 하나 탄생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영하 : MBC 하나만 싹 들어내면 차라리 나을 거다.(웃음) 그러나 그 자리를 사영방송과 관영방송이 채운다. 중립 지대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하겠다는 방송이 아니라 한쪽 편, 힘을 가진 편에 서게 되는 방송이 들어설 것이다. 결국 국민들이 계속 채찍질하는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은 무게 중심이 잡혔을 때 건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재 MBC는 보도·시사 기능이 없는 반쪽짜리 방송이다. 드라마, 예능은 잘 만들고 잘 나간다. 하지만 구성원 얘길 들어보면 굉장히 버겁고 허덕이고 있다. MBC는 엔터테인먼트 주식회사가 아닌데 보도·시사라는 큰 기둥이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버거워한다. 시청률이 빵빵 터져도 ‘역시 MBC’가 아니라 ‘쟤들은 왜 저런 것만 할까’ 이런 반응이 나온다. 칭찬이 아닌 비난을 받는 거다.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게 자리매김이 필요하다. 그게 안 되면 축이 틀어지고 서로 이상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예전에 파업할 때 김현석 언론노조 KBS본부장이 우스갯소리로 ‘더도 덜도 말고 9시 KBS뉴스, 개콘 만큼만 해라’고 했다. 얼마나 풍자스럽나. 보도가 못하니까 예능에서 그런 소재를 하게 되고, 사람들이 이제 예능을 예능이 아닌 시사로 받아들이지 않나.(웃음)

박성호 : 우리사회가 공영방송을 가진 지 얼마 안 됐다. 역사가 짧다. 유럽 공영방송은 20세기 초반에 생긴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여곡절, 여러 질곡 끝에 정립이 됐다. 한국의 공영방송을 논하기 위해 87년 민주화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과연 적당한지 의문이다. 그 이전에 관영매체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신문 역사와 비교해봐도 공영방송 역사는 일천하다. 우리사회가 좌충우돌하면서도 가꿔나가고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다. 공영방송은 토론과 의사소통의 장이다.

강지웅 : KBS PD와 어제 이야기하는데 그분이 ‘MBC가 망가지면 KBS가 숨 좀 돌릴 줄 알았는데 같이 무너진다’고 하더라. KBS와 MBC는 경쟁구도에 있지만 사실 우군이었다.(웃음) 

최승호 : 엄청난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그래도 중심 역할을 하는 공영방송이 가치 중립적으로 취재해 많은 국민에게 인식을 시켜주면 그 기반 위에서 토론이 일어난다. 여론이 결정되고 최종적으로 수렴된다. 지금은 갈등이 계속되면서 한쪽에서는 음모론이 일어난다. 천안함, 대선부정, 세월호와 같은 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실 관계가 확정되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국민들이 공적 기관 발표를 신뢰하지 않은 채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담론들이 우리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못한 결과다. 

강지웅 : 공영방송 종사자에게는 일반 시민과 국민이 ‘공정해라’고 요구할 수 있다. 적어도 SBS나 종편보다는 더 요구할 권리가 있다. 공공의 장을 축소한다는 것 자체가 언론을 자본과 권력에 넘기는 것과 같다. 

   
▲ 최승호 MBC 해직PD. (사진=최창호 'way' PD)
 

- 올해 MBC 방문진 이사진이 교체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요구가 다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어떤 권력이든 방송을 장악하려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해법은 무엇인가.

이용마 : 현실적으로 정치권이 공영방송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나.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하는데 정치권이 언론에 손을 떼지 못하겠다면 나누는 건 어떨까 싶다. 공영방송사 사장 임기를 2년 정도로 단축해서 한 번은 여당 추천이, 한 번은 야당 추천이 사장을 하는 방법이다. 방송사 사장도 검찰총장도 그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최소한 대통령 임기 내에서 야당이 임명을 한 방송사 사장이나 검찰 총장이 2년 임기를 채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막가파식으로 갈 수 없을 것이다. 그 다음 사장이나 총장이 불거진 문제를 시정할 수 있고. 

박성호 : 정치 권력과 연계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 종사자뿐 아니라 의회에 있는 이들, 학자 및 시민사회가 이 안과 저 안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자리와 기회다. 어떤 안이 제일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많이들 해외 공영방송 지배구조와 관련해 몇 나라 언급하지만, 특정한 제도를 따라가야 할 만큼 완벽한 제도는 없다. BBC 지배구조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완벽하게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공영방송 경영진의 수준, 종사자의 수준, 이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관점, 시민사회가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든 게 논의돼야 한다. 공영방송은 우리 것이 아닌 국민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 공영방송의 이사회와 관련해서도 지금처럼 원로 언론인, 법조인, 교수 등 한정적인 구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인사가 참여해야 한다. 

이용마 : 그런데 그런 식이면 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여권에서 추천하는 극우 시민단체 인사들이 (공영방송 이사회에) 참여하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 지금의 방문진처럼 숫자 싸움이 된다. 차라리 그럴 바엔 독식하지 말고 권력과 (이사진) 자리를 나누는 게 답이 되지 않겠나.

강지웅 : MBC 재판에서 판사가 김환균 PD(현 언론노조위원장)에게 ‘증인이 생각하는 공정성은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김 PD의 대답은 ‘그냥 다 모여서 막 떠드는 것’이었다. 권력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떠들다 보면 정리가 된다는 대답이었다. 그런 절차가 공정성이 아니겠느냐고 했을 때 판사가 납득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는 8, 9월에 공영방송 이사진이 교체되는데 국민과 정치권이 너무 조용하다. 많은 게 공개돼야 한다. 방문진 이사들의 면면과 그들의 회의록도 공개돼야 한다. 

최승호 : 지금까지 수렴된 여론은 여야 이사 2/3 이상의 찬성표가 있을 때 사장을 임명하는 특별다수제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차선이다. 그것과 함께 편집권 독립을 위한 내부 장치를 확실히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국장 직선제라든지. 양면의 장치가 필요하다.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경영진을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고, 그 경영진으로부터 보도 조직을 독립시키는 이중 시스템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 MBC는 이러한 독립성이 문화로서 확립돼 있었다. 경영진은 보도 내용에 대해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게 하나의 문화로서 우리만큼 정착된 곳은 없었다. 이제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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