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원인 공영방송이 집권세력이라는 후견인에 의해 통제되며, 이는 ‘도구화’ ‘충성’ ‘커넥션’이라는 행태로 나타난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엔 유신 독재체제의 ‘권력 입맛 맞추기’식 보도통제까지 부활했다.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 심포지엄에서 전국언론노조 김춘효 연구원(매체정치경제학 박사)이 내놓은 한국 공영방송의 현주소다. 

1995년 5월, 국내 최초의 미디어 전문지로 출범해 창간 20주년을 맞은 미디어오늘과 저널리즘학연구소·전국언론노조가 공동주최한 심포지움 <한국 언론의 미래를 묻는다>가 13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됐다. 첫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김춘효 박사는 한국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영국 및 일본과 같은 ‘정부모델’로 구분하면서도, 한국의 경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임명권자인 집권세력과 진영논리를 그대로 반영”하는 후견주의(clientelism)적 권-언 유착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할린과 만시니(Hallin & Mancini)에 의하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는 크게 정부모델과 전문모델, 의회모델, 시민모델로 나눠볼 수 있다. 공영방송이 의회 다수당 또는 정부에 의해 직접 규제되는 것이 정부모델인데, 영국BBC나 일본NHK가 대표적 사례다. 전문모델은 정부가 감독기구에 대한 임명 권한을 행사하기는 하지만 그 운영은 방송사 구성원들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공영방송의 위상이 상업방송의 보조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미국이 이에 해당한다. 의회모델은 정당이 의석 비율에 따라 공영방송을 통제하는 모델이다. 시민모델은 의회모델과 유사하지만 정치세력 뿐 아니라 사회집단도 공영방송에 대한 통제권한을 갖는다.   

   
▲ 이명박 정부 이후 유신 독재체제의 ‘권력 입맛 맞추기’식 보도통제가 부활했다. 사진은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경우 크게는 정부모델로 볼 수 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에야 민주화 과도기에 들어선 한국에선 언론 역시 독재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게 김 연구원의 지적이다. 즉, 한국 언론 매체는 “한국 정치체계가 갖는 다수결주의적 승자독식 정치문화를 따르며 강력한 정치 병행성에 따라 이념적 지형과 언론사 논조가 상호 조응하는 특징을 보이며 전문직주의 규범의 형성이 더디고 매체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개입 양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한국 공영방송의 지배구조가 “진영 논리만 난무한 공영방송”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이유로, 공영방송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없는 점을 들었다. 같은 ‘정부모델’로 분류되는 영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은 공영방송의 의무조항이 없을 뿐 아니라 개념조차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이러한 제도적 공백 하에서 만들어지는 정권-공영방송의 유착관계는 할린 등에 의해 후견주의라 불린다. 사회적 자원인 방송에 대한 접근이 후견인인 집권세력에 의해 통제되고, 피후견인인 공영방송 경영진은 집권세력에 복종한다. 또한 공영방송은 집권세력의 피후견인이 되는 대가로 자원(권력과 돈)을 나눠받는다. 

후견주의 전통은 공영방송 지배구조에서 ‘낙하산 인사’로 나타나며, 피후견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인사가 내쳐지기도 한다. 지난 2008년에도 KBS이사회는 당시 이명박 정권과 ‘코드가 다른’ 정연주 사장에 대해 부실경영의 책임이 있다며 해임을 제청했고, 청와대는 정연주 사장 해임으로 화답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이 정 전 사장의 해임처분 무효소송을 받아들임으로써, 정 전 사장에 대한 해임은 정치권력이 자행한 불법임이 드러났다.  

김 연구원은 집권세력의 공영방송 통제가 ‘대통령-방송통신위원회-이사회-사장’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방송통신위원은 정부여당이 ‘3대2’로 우위를 가지며, 이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 혹은 선임하는 이사회 구성도 정부여당의 입김이 작용하는 인사가 과반수를 넘게 된다. 

KBS의 경우를 보면, 민주화 이후에도 ‘코드 맞추기’ 사장 임명은 계속됐다. 특히 2008년 이명박 정권 이후에는 유신 독재 체제의 ‘권력 입맛 맞추기’식 보도통제가 부활했다고 김 연구원은 분석했다. 정필모 KBS 해설위원은 “사장 등 주요 간부의 임명과정에 작용한 청와대의 직간접적 영향력이 대통령 관련 보도의 공정성을 해치고 청와대가 권위주의적 정치 지배를 통해 보도를 통제한다”면서 “권-언 유착은 비공식 통로(인사권 개입, 지시, 회유, 압박)를 통해 이뤄지고 지연, 학연, 혈연 뿐 아니라 출입처 등을 통해 맺어지는 ‘직연’이 기자들에 대한 ‘길들이기’에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 연구원은 2000년도부터 2012년까지의 KBS 및 MBC 이사진 구성을 분석해, 이들 이사회가 “한마디로 국민의 다양한 계층과 연령을 대표하기 보다는 ‘영남 출신 남성 50대 이상 SKY급 출신’으로 특징”지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방송사 간 교차임명이 없는 점을 들어 “언론인의 동종교배가 이뤄지고 있었다”며 “한국 공영방송에서 국민들은 제외되고 엘리트들만 이사회 좌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제도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제안들도 내놓았다. 1) 공영방송에 대한 정의가 법제화 되지 않아 이사회 구성과 운영이 정권 입맛에 따라 휘둘리므로, 방송법에 공영방송의 정의와 역할을 명시해야 한다 2) 공영방송의 이사회 구성에 다원화되고 있는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도록 계층별, 성별, 연령별, 직능별로 이사회 구성을 세분화해야 한다 3) 권-언 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집권세력의 당원이거나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은 공영방송 이사 및 최고 경영자로 임명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4)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야 동수의 이사 추천이나 3분의 2의 이사 동의를 의무화하고 언론 및 시민단체, 방송전문가 등으로 사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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