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51%가 종이신문을 구독한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NIE(Newspaper In Education, 신문활용교육) 강국인 핀란드가 그렇다. 우리나라는 ‘2014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결과 전체신문구독률이 20.2%로 매우 낮다. 청소년의 구독률은 더욱 낮을 것으로 보인다. 

1995년 중앙일보가 NIE 지면을 도입한 이래 20년이 흘렀지만 우리 NIE는 ‘활성화’ 단계라고 보기 힘들다. 양적인 팽창은 있었다. 현재 NIE 거점학교 중심으로 2000여개 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9개 중앙일간지, 13개 지역일간지가 NIE 지면을 마련했다. 그러나 여전히 초보 딱지를 떼지 못했다. 전문가들의 해법은 각기 다르지만 현실인식은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점은 하나의 이슈에 대해 신문별로 극단적인 시각이 나타나는 사실이다.” 황치성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그는 “우리 신문의 정파성이 교육현장에서는 장애요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2006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NIE 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신문기사의 편향성’이었다.

신문의 정파성 문제는 교사가 어느 신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회현안에 대한 시각차가 현저하게 나타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다. 전경란 동의대 디지털콘텐츠공학과 교수는 “교사에 따라 사안에 대한 판단이 좌우된다”면서 “각 정파의 뉴스, 특정 신문만을 골라 교육하는 방식은 NIE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문의 정파성이 극심해지는 추세는 이 같은 문제를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등이 <대통령 선거보도의 기사품질, 심층성, 공공성의 변화> 연구논문에서 20년간 조선일보·중앙일보· 한겨레의 선거보도를 분석한 결과 “복합적 관점의 기사가 현저히 줄고 단일 관점 기사가 급증해 신문의 정파성이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밝힌 바 있다.

   
▲ 일러스트= 권범철 만평작가.
 

신문의 자극적인 보도, 피상적 보도, 전문적인 내용 역시 우리 신문이 좋은 교재가 아닌 이유다. 황치성 연구위원은 “정파성에 비해 덜 중요한 문제지만 자극적 표현, 부분만을 강조해 제목을 뽑는 등의 행태는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 신문이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현상의 흐름을 좇는 데 치중하는 것도 문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2012년 한국신문협회가 실시한 ‘NIE 현황조사’에서 한 NIE 담당자는 “NIE 지면이 약간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면이 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혼자 읽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말했다.

NIE에 특화된 지면을 활용한 교육을 시행할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 ‘입시위주’라는 목표가 NIE의 취지를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규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10년 발표한 에서 “신문사의 NIE 교재는 신문판촉을 목적으로 입시와 과외를 보완하거나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문사가 장기적 비전을 갖고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않는 점 역시 NIE가 활성화되지 않은 원인 중 하나다. ‘국내 NIE 현황조사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 12개 신문 중 5개 신문에 NIE 담당기자가 1명 뿐이었다. 담당기자가 없는 신문도 1개 있었다. 주로 외부필진에 의존하는 구조인데,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장애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한 신문사의 NIE 담당자는 “신문사에는 교육팀이 있긴 하지만, NIE를 맡는 사람은 담당 기자 뿐이다. 물론 연구위원단의 도움도 받긴 하나 한계가 있다. 신문사가 NIE를 주도해야 하는데 기자 개인이 혼자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예산확충 역시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NIE 현황조사 연구’에서 12개 신문사 중 고정예산을 확보하고 있는 경우는 3개 언론사 뿐이었다. 나머지 언론사는 후원, 필요에 따라 경비를 지급받는 식으로 예산을 마련했다. 정문성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결국은 인력과 예산의 문제다. 이게 부족한 상황에서 퀄리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서 “현실적으로 모든 언론사가 여건이 힘든 상황에서 최소한 몇 개 신문사만이라도 물적, 인적 기반을 갖춰 흐름을 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늘날 10대에게 신문은 친숙하지 않은 매체다. 디지털 네이티브세대에게 종이신문을 강요하는 게 적절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경란 교수는 “신문에 대한 청소년들의 친밀도와 접근성이 나날이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문성 교수는 “종이신문을 이용하지 않는 세대에게 신문읽기를 강요만 하는 것 보다는 변화된 환경에 맞출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불신’과 ‘외면’의 대상이 된 신문. 보도를 개선하는 게 최선이지만 현실적인 방안은 아니다. 우리 신문의 정파성이 극심한 편이긴 하지만 어느 나라건 신문은 정파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의 성공사례를 참고하는 것은 중요하다. NIE 교육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핀란드와 일본은 신문 내용의 맹목적인 수용보다는 ‘비판적 읽기 교육’을 중시한다.

   
▲ 종합일간지.
 

따라서 우리 NIE의 개선방향 역시 ‘비판적 읽기’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치성 연구위원은 “일본과 핀란드는 비판적 읽기능력을 중시한다. 일본은 NIE의 핵심목적을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살아가는 힘이 되는 매개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비판적인 읽기를 통한 정보 수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우리 신문읽기 교육도 궁극적으로는 비판적인 읽기가 주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이 같은 교육이 많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발표된 역시 ‘비판적 읽기 교육’에 주목했다. 연구에 따르면 “신문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민주시민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중요한 기능”이라며 “정보를 습득하고 비평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 현상에 대한 이해와 사고의 수준을 높이도록 하는 NIE의 주된 목표에 가까이 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비판적 읽기 교육’의 이점은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당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신문의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고 이는 효과적인 독자확보 전략이 되기도 한다. 전경란 교수는 신문의 장점에 대해 “사람들이 종이신문을 외면하고 있지만 종이신문은 인터넷에서 개별적인 기사를 보는 것과 달리 편집과 배치에 따른 지면전체의 흐름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NIE 경험이 신문구독으로 이어지는 유의미한 조사결과도 있다. 미국 신문협회가 2004년에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학교 시절에 신문 관여도가 높았던 응답자의 61%가 성인이 된 후에도 신문을 정기적으로 구독했다. 반면 초·중·고등학교 시절 신문 노출 경험이 없는 응답자들의 신문 정기구독률은 38%였다.

국내에서 ‘비판적 읽기’에 특화된 시도도 있다. 지난해부터 중앙일보와 한겨레가 공동으로 마련한 ‘사설 속으로’ 코너가 그것이다. 특정 현안에 관한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사설을 비교하고 해설하는 내용이다. 정문성 교수는 “신문사간 협업을 통해 논조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도”라고 말했다. 황치성 연구위원은 “절충적 주장이 아닌 극단적 주장의 나열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이전 NIE 지면에 비해서는 획기적인 발전”이라고 말했다.

NIE 교육 활성화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럼에도 비판적 읽기능력 함양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신문산업 활성화를 고려했을 때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할 필요성이 있다. ‘황치성 연구위원은 “일본은 신문협회가 주축이 되어 NIE 재단을 설립하고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여 NIE 사업을 본격화했다. 정부가 직접 NIE를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한다”면서 “우리도 NIE를 성공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교육현장, 정부, 신문사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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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으로 뉴스 보는 시대, ‘리터리시’를 넘어 커뮤니케이션 교육으로

 

<편집자주>

미 디어오늘이 오는 5월 창간 20주년에 맞춰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하는 20회 연속 기획 시리즈를 내보냅니다. 미디어 산업의 전통적인 수익 기반이 붕괴되고 콘텐츠 플랫폼이 다변화하면서 주류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이 약화되고 생존을 위한 경쟁에 매몰되면서 급기야 저널리즘의 근간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획 시리즈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진단하고 퇴행적인 일련의 변화를 비판하고 혁신과 대안을 모색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창간 20주년, 미디어오늘은 언론 보도의 이면과 팩트 너머의 진실을 파고드는 정직한 감시자, 언론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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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온라인 저널리즘이 불러온 재앙.
(03) 붕괴하는 광고 시장, 추락하는 저널리즘.
(04) 현장에 기자들이 없다.
(05) 퇴행적인 취재 시스템.
(06) 차별성 없는 콘텐츠.
(07) 신문시장의 구조적 위기.
(08) 방송의 통신 종속.
(09) 무늬만 뉴스 도매상, 연합뉴스.
(10) 뉴스 구독 행태의 변화.
(11) 콘텐츠 수익모델 다변화.
(12) 뉴스 다양성과 경쟁력 확보.
(13) 기자 재교육과 전문성 강화.
(14) 기자의 미래.
(15)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
(16) 신문읽기 교육의 현재와 대안.
(17) 뉴스룸 쇄신, 조직의 동력을 바꿔라.
(18) 대안 언론의 등장과 주류 언론의 틈새 시장.
(19) 에버그린 콘텐츠를 찾아라.
(20) 저널리즘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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