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뿐만 아니라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조준해서 물대포를 쏘는 등 폭력을 행사한 정황이 연달아 나오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집회에서 사진기자들이 경찰의 폭력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 심각한다고 판단해 공식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 언론보도의 위축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에서 경찰이 이미 위헌 결정이 난 바 있는 차벽을 설치하고 캡사이신 장비를 남용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사진기자들을 상대로 공공연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는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기록하려는 사진 기자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기도 했다. 

이날 집회 현장을 취재했던 사진기자들에 따르면 이날 저녁 조계사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대치하는 가운데 경찰이 쏜 물대포가 수초 동안 버스 위에 올라와 있던 기자들에게 쏟아졌다. 6~7명의 사진기자들은 물을 뒤집어썼고 카메라 등 장비가 순식간에 파손됐다. 이뿐 아니라 캡사이신이 섞여 있는 물이 피부에 닿으면서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진작가 최항영씨가 당시 경찰버스 위에서 올라가 있던 사진기자들을 찍은 사진을 보면 사진기자들이 회오리가 일고 있는 물대포를 뒤집어 쓰고 몸을 움츠리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버스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도 연출됐다. 

   

▲ 지난 5월1일 노동절 집회에서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쏘고 있는 경찰. 사진=사진작가 최항영씨

 

 

사진기자들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장비가 망가지고 고통을 호소하면서 이날 사진 취재를 사실상 포기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경찰이 물대포 수압 조절을 통해 거리를 조절할 수 있었는데도 대치 상황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기자들을 향해 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권우성 오마이뉴스 기자는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상황 중 경찰이 시위대 쪽으로 물대포를 조준했다"며 "물대포를 쏘면 수압 조절에 따라 물줄기 바로 떨어질 수도 있고 더 세게 하면 멀리 나갈 수 있는데도 물줄기가 몇초 동안 사진기자들을 향했다. 의도적으로 사진기자들을 향해 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권 기자는 "물대포를 맞고 나서 눈도 제대로 못뜨고 장비도 젖어버려서 이후 상황을 기록하지 못했다. 물대포 발사 규정에 따르면 직사를 하면 안되고 각도를 조절하게 돼 있는데 기자들을 향해 대놓고 쏜 것“이라며 ”물에 섞인 최루액도 하얀 거품이 날 정도로 고농도로 섞여 있어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물대포를 맞지 않은 시민들도 토를 할 정도였다. 화학무기를 사용한 수준이었다"고 증언했다.

권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경찰이 캡사이신을 의도적으로 카메라를 향해 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이런 일을 겪다보면 현장도 멀리서 찍게 되고 과잉 진압 현장도 노출이 되지 않는다. 반면 경찰 쪽은 많은 채증요원을 활용해 시위대의 폭력 내용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기자는 "1980년대에 봤음직한 고글과 마스크가 사진기자들의 필수 장비가 돼버렸다"고 덧붙였다.

   
▲ 지난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 경찰과 시위대 대치상황을 취재하던 기자를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조준해 쏜 정황이 나오고 있다. 사진 속 기자들은 물대포를 맞고 버스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도 연출됐다. 사진=사진작가 최항영씨

 

 

권 기자와 함께 버스 위에서 물대포를 맞았던 사진작가 노순택씨도 페이스북을 통해 "살아오면서, 갈등과 폭력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오면서 숱하게 물대포를 맞아봤지만, 이렇게 캡사이신 농도가 짙은 물대포는 처음"이라며 "하물며 미끌미끌한 경찰버스 위에서. 이러다가 누구하나 미끄러져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조금만 움직여도 버스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으므로 그냥 맞는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고 있는 다큐제작소 김철민 감독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달 18일 김씨는 광화문 방면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몸싸움을 하고 있는 현장을 20미터 뒤쪽으로 떨어져 비디오 카메라로 담고 있었는데 집회 참가자들을 쏘던 물대포가 갑자기 뒤쪽에 있는 자신을 표적 삼아 향하면서 카메라가 망가졌다. 김씨는 "미디어 활동을 오래해왔지만 이렇게 카메라를 직접적으로 향해 물대포를 쏜 적이 없다"며 "노동절 집회에서는 물대포를 맞은 경험 때문에 현장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위축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사진기자들은 물대포 뿐 아니라 경찰이 휴대하고 다니는 캡사이신도 카메라를 향해 쏘는 횟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기록 자체를 방해하는 의도된 행위라는 것이다. 

   

▲ 지난 5월1일 노동절 집회에서 시위대 진압하는 경찰. 사진=사진작가 최항영씨

 

 

물대포와 캡사이신 장비 사용과 관련해 엄격한 절차가 있기 때문에 카메라를 향한 분사는 의도된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2013년 5월 서울청 1기동단으로 입대해 올해 2월까지 근무했던 허아무개씨는 “경찰관들이 아무래도 기자들에게 반감이 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물대포는 직업 경찰관이 관리하는데 지시가 오기 전까지는 쏘지 마라는 것이 기본이다. 민주적 통제가 중요한데 현재는 집회에서 차벽을 설치 안해도 되는데 윗선에서 지시해 아랫사람이 욕을 먹고 충돌로 번지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씨는 "경찰의 자율성을 존중해줘야 하는데 이 같은 구조를 놔둔 채 권력자에 따라 공권력을 행사하면서 문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사진기자협회는 집회에서 경찰 폭력에 노출된 기자들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보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 공식 대응할 계획이다. 홍인기 한국사진기자협회장은 "취재하러 올라간 버스 위에서 기자들을 향해 물대포를 무자비하게 쏜 것뿐 아니라 만약 떨어지게 되면 심하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일부러 기자들을 향해 조준했다면 더더욱 안 될 일"이라며 "협회 회원은 아니지만 기자들이 다친 경우도 있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다. 자료를 경찰청이나 정부 부서 쪽에 근거로 내보이면서 항의를 할 생각이다. 방송 카메라기자와 사회부 취재 기자들도 경찰의 과잉 대응에 노출되면서 협회 뿐 아니라 기자협회 전체 차원에서 강력하게 항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지난 5월1일 노동절 집회에서 시위대 진압하는 경찰. 사진=사진작가 최항영씨

 

 

이에 대해 박재진 경찰청 대변인은 "해당 기능(부서)에서 판단할 사안으로 (기자들이)문제를 제기하면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대변인실은 4일 "주요 인권선진국과 비교해도 한국 경찰의 물리력 사용이 과도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불법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엄정대응하는 것이 경찰의 일관된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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