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을 들머리에 쓰며 물음표를 덧붙인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선거가 그 상식과 무장 멀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4월29일 4곳에서 치른 재보선 결과로 ‘정국 주도권’이 여당으로 옮겨갔다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어도 과연 좋을까? 그 ‘해석’을 누가 했는가 찬찬히 짚을 필요가 있다. 재보선 다음날,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권력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심판받았다며 정쟁을 그만두고 경제 살리기에 나서라고 몰아세웠다. 새누리당 대변인 권은희는 집권여당과 언론권력의 속내를 압축해서 드러냈다. 재보선이 “박근혜 정부 3년차, 경제살리기에 더욱 매진하라는 격려의 뜻”이라며 “또한 국민을 괴롭히는 정치 공세를 지양하고 국민의 삶을 얼어붙게 하는 투쟁 정치를 멈추라는 뼈아픈 질책”이라고 언죽번죽 부르댔다.

과연 그러한가. 진실은 저들의 주장 속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선거 다음날 “문 대표, ‘친노’부터 넘어서야 살길 열릴 것” 제하의 사설에서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참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데 그 사설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설은 “새누리당이 ‘성완종 리스트’라는 대형 악재에 휘말려 휘청거리는 상황”이었다며 야당의 패배를 부각했다. 비단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많은 언론, 더구나 일부 진보적 매체에서도 어금버금한 주장이 나타났다.

그런데 어떤가. 선거가 있던 날, 조선일보 인터넷은 노무현 캠프에서 성완종에게 “2억 달랬더니 3억 보냈더라”는 큰 제목의 기사를 ‘당시 이재정 본부장 측’의 입을 빌려 머리로 배치했다. 이 기사를 보면 성완종 리스트는 정부여당의 ‘대형 악재’가 아니다. 그런데 기사 끝자락에 나오듯이 노무현 캠프가 성완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은 사실은 이미 2004년에 밝혀졌다. 당시 검찰은 성완종을 소환 조사했지만 기소하지 않았다. 불법 정치자금 규모가 비교적 작은 기업들은 ‘선처’했기 때문이다. 그 선거에서 불법 정치자금은 지금의 집권여당이 견줄 수 없을 만큼 훨씬 많았다. 그런데 그 기사를 머리로 올린다? 과연 이들을 언론인이라 할 수 있는가? 당일 지면 1면 기사는 “박 대통령 ‘성 두 차례 사면 진실 밝혀야’”이다. 이어 “정치부패 청산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다짐’을 표제로 부각했다.

선거 당일 조선일보 보도를 보기로 들었을 뿐, 재보선 정국 내내 조중동 신문과 종편은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주장을 날마다 살천스레 쏟아냈다. ‘성완종 리스트’를 결코 정부여당의 ‘대형악재’일 수 없게 여론화 한 그들이 선거 결과를 놓고 ‘대형악재가 있었음에도 정부여당이 이겼다’고 해석하는 작태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가증스럽다가 적확하지 않은가.

조선일보 사설은 ‘진실’을 더 드러내준다. “투표율이 30%대 초·중반인 재·보선에서 지금의 야당이 이기기가 구조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현 야권에 비판적인 50대 이상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가 그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문제는 50대 이상에게 조중동과 조중동 종편이 끼치는 막강한 영향력이다.

그래서다. 언론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재보선에 대해 우리 사회의 담론이 ‘과도한 야당 책임, 과소한 언론 책임’으로 기울어 있다고 분석한다. 더구나 해석되어야 할 당사자인 언론권력이 해석을 제 편의로 여론화하는 작태는 그 어느 ‘OECD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기극이다.

저들의 사기극이 가장 심각한 것은 야당이나 세월호 유족들 때문에 경제가 침체되어있다는 식의 주장을 서슴지 않는 데 있다. 명백한 왜곡이다. 경제 살리기를 못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박근혜 정부 아닌가. 한국 경제가 침체되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취업을 못해 방황하는 일차적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경제 민주화’를 공약으로 당선된 뒤, 정반대로 낡을 대로 낡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매달려 ‘규제는 암덩어리’ 타령이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라. 청와대만이 아니라, 언론권력도 ‘유체 이탈’을 만끽하고 있다. 새정치연합과 문 대표가 ‘경제 정당’으로 방향을 잡아도 보도조차 않거나 ‘위장 전술’ 따위로 논평한 자들이 현 정부의 경제실정을 야당이나 세월호 유족 탓으로 돌리는 행태는 사기극의 절정이다.

   

▲ 손석춘 언론인

 

 

학자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는 따위로 몰아세울 윤똑똑이들을 위해 명토박아둔다. 나는 새정치연합과 문재인 대표에 대해 그들이 집권세력일 때 공약을 실현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지금 언론이 가장 감시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성완용 리스트의 부정부패 추문에 휩싸인 현 집권세력이다. 그건 언론인으로 밥을 먹고 살아가는 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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