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MBC ‘PD수첩’이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파헤친 지 10년이 지났다. 

당시 ‘황우석 신화’의 허구와 숨은 진실을 세상에 알림으로써 일대 파장을 일으켰던 주인공 한학수 MBC PD는 이제 제작 일선에 없다. 당시 한 PD와 함께 ‘PD수첩’을 제작했던 최승호 책임PD는 MBC에서 해직돼 현재 탐사보도 전문매체 뉴스타파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제보자>는 한 명의 제보자로부터 시작된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 사건의 진실을 국민에게 ‘제보’했던 한 PD(박해일 주연)에 초점을 맞춰 제작됐다. 

희대의 특종으로 세상을 바꿨던 ‘PD수첩’과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사라진 지금의 MBC를 바라보는 한 PD의 심경은 어떨까.

현재 MBC 비제작부서인 미디어사업본부 신사업개발센터로 자리를 옮긴 한 PD는 지난 29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관으로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열린 ‘언론영화콘서트’에서 “황우석 사태는 과학적 사기와 음모론, 국가와 국간 간 대결 등 여러 다른 접근 방식으로 다룰 수 있었지만 <제보자>는 저널리스트를 중점적으로 두고 만든 것 같다”며 “그 문제의식이 이 영화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본의 아니게 제작 일선에서 떠나있어 개인적으로 불행하지만 다시 제작 일선으로 돌아갈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려 본다”고 말했다. 

   
▲ 지난해 10월 개봉한영화 <제보자> 포스터. 주인공 윤민철 PD의 실제 모델은 2005년 당시 황우석 의혹을 폭로했던 한학수 MBC PD다.
 

한 PD는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낙하산 인사’로 불렸던 김재철 MBC 사장 부임 후 2011년 비제작부서인 경인지사로 밀려났고, 교양국 폐지 후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이 났다. 이후 한 PD는 MBC신사옥 야외스케이트장 관리를 맡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해당 업무에선 배제됐다. 

이날 <제보자> 언론영화콘서트에 참석한 한 관객은 “당시 우리 언론의 힘으로 진실을 밝혔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는데 10년 지난 작금의 사태 좀 다른 것 같다”며 “한 PD도 이상한 곳에 발령이 났고 얼마 전 웹툰을 그린 (권성민) 예능 PD도 해고됐다. 멋지게 진실을 파헤친 PD들이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제보자>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은 “영화의 힘이 대단한 게 작년에 한 PD가 신사옥 스케이트장 관리직으로 갔다가, 영화가 나오고 반발이 커지자 좀 나은 곳으로 옮겼다고 들었다”며 “처음에 영화 제작 제의를 받았을 땐 무슨 의미로 10년 후 이 사건을 들출 것인지 확실히 오는 게 없었다”고 술회했다. 

임 감독은 “그러다 한 PD가 쓴 책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진실, 그것을 믿었다> 초판)을 읽고 이 영화는 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한 언론인이 이렇게 집요하게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적들, 정부와 언론사 고위 간부, 황 박사 지지자 등 이들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진실 밝히려는 언론인의 태도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이어 “진실에 눈 감지 않아야 한다는 게 언론인의 사명이고, 저널리스트가 진실을 외면하면 우리 국민은 거대한 구조 속에서 진실을 알 길이 없다”며 “영화에서 언론인이 그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5년 12월 기자회견을 열어 황우석 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혔던 당시 PD수첩의 최승호 부장과 한학수 PD.
 

한 PD는 책을 쓰게된 이유에 대해 “처음 취재를 시작하던 날 최승호 팀장이 ‘학수야, 이건 반드시 법원에 간다. 기록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그래서 불가피하게 꼼꼼하게 모든 걸 기록해 그걸 바탕으로 책을 쓴 것”이라며 “과학사와 언론인으로서 1차 사료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논문에 인용한 최소한의 근거 자료를 사건 당사자로서 남기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임 감독은 당시에도 다수의 언론에 의해 그릇된 ‘황우석 신화’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2005년도만 해도 지금의 언론의 위상과는 다르게 국민의 언론에 대한 신뢰는 상당히 컸다고 생각하고 언론 보도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며 “PD수첩을 보기 전까지 대다수 국민이 우매하고 판단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황 박사 다루는 언론이 객관적 검증 보도 방기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임 감독은 “국민도 어떤 보도를 볼 때 팩트(fact)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팩트를 통해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PD수첩 방송 당시 줄기세포가 있다는 다른 방송도 있었는데 두 방송을 보고 어떤 것이 더 진실 되고 합리적·상식적 주장인지 판단의 몫은 시청자가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똑같은 자료를 보고 거짓된 것에 쏠린다면 이는 판단을 한 사람의 책임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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