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나 야구경기가 다 끝난 뒤 복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식 뭐 만지기다. 그러나 정리는 해봐야 한다.

먼저 천정배 당선자.

탈당과 출마선언 이후 줄곧 ‘제1야당 심판론’으로 포장하긴 했지만, 호남정치 복원을 주장하며 호남민심과 지역정서에 호소했다. 퇴행적 주장이다. 당선은 됐지만 옳지 않다. 당선증이 정치적 오류마저 사해주는 건 아니다. 천정배가 싸워야 했던 주적은 제1야당이 아니라 여당과 정권이었다. 연후, 야당의 문제점도 지적했어야 한다. 그런데 순서가 뒤바뀌었다. 어쨌거나 당선됐다. 천 당선자는 호남정치 복원이 아니라, 진보권 개혁방안을 내놔야 한다. ‘천정배발 야권 재편’을 일각에서 얘기하는데, 명분이 약하다고 본다. 호남에 기반한 또 하나의 야당이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제2의 지역정당에 그칠 공산이 크다. 호남을 주축 기반으로 하는 새 야당이 아니라, 개혁희구층 전체를 아우르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
 
정동영 후보.

‘국민모임’은 누구와 함께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지에 대해 정립한 게 있기는 한가? 국민모임과 정동영 후보의 정치적 정체성은 뭔가? 인재영입이 안돼 인재영입위원장이 나섰다가 승리를 여당에 헌납했다. 정동영 후보의 개인적 지명도와, 선거구 내 호남 출신 유권자에 기댄 바 컸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인재’를 구하지 못해 인재영입위원장이 왼갖 욕 들어가며 출마한 국민모임은 우선 정체성부터 가다듬기 바란다. 도대체 뭘, 어떻게, 누구와 하려는 지가 갈수록 요령부득이다. 어설픈 분파이자 어부지리 원인제공자라는 비판에 억울해하기 전에, 왜 국민모임이 필요한지 내적 승인절차를 먼저 밟기 바란다. 야박한 얘기지만, 정동영과 국민모임의 한계이자 현주소다. 향후 나아지거나 세를 확장시킬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개혁희구층 전체를 위해 뭘 어떻게 하는 게 도움이 될지, 시대정신에 올바르게 복무하는 것인지, 고민하기 바란다. 국민모임의 존폐 문제를 포함해서 말이다.

   

▲ 왼쪽부터 이번 4·29 재보궐선거에 당선된 천정배 의원,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연합뉴스

 

 

문재인 대표.

“탈당자들 때문에 졌다”가 아니라, “나 때문에 졌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개표 후 일성에서 그 점은 밝혔지만, 향후 야권을 아우를 추동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아니, 오히려 더 곤궁해졌다.

천정배 후보가 나선 광주에서는 제1야당심판론이 먹혔다. 이게 문재인 대표가 풀어야 할 첫번 째 숙제다. 서울 관악은 물론 본질적으로 ‘어부지리’지만, 정권심판론이 확실하게 파고들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이게 두번 째 숙제다. 정동영 후보가 얻은 20%는 뭘 말하는가? 야권의 정국 대응방식에 대한 항의이자 경고이다. 그 표 흡수하지 못하면 내년도, 내후년도 이번과 비슷할 수 있다.

지기 힘든 정치적 상황에서 또 다시 완패한 야권. 총체적 리셋이 필요하다.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하겠다”고 연초부터 역설해왔지만, 아직 태부족이다. 리모델링이건 재건축이건 간에 철거대상 건물도 아직 허물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과 제1야당은 천정배나 정동영과 싸울 게 아니라 정권과 싸웠어야 했다. 더구나 ‘성완종 리스트’가 터진 이후에는 더더욱. 투표일 20일 전에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졌건만 국면 전환에 실패했다. 그게 제1야당과 문재인의 역량이자 한계이다.

   

▲ 이강윤 국민TV ‘이강윤의 오늘’ 앵커

 

 

온갖 악재들 속에서도 여당은 ‘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완승했다. 서울관악 같은 어부지리 승리가 아닌 승리 지역의 후보별 득표 꼼꼼히 분석해봐야 할 것이다. “재보선은 투표율이 워낙 낮아서 민심의 정확한 반영이 아니”라는 얘기는 이제 그만들 두기 바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첨언한다. 4·29 재보선에서 여당이 이겼다고 해서 현 정권의 온갖 비리와 실정이 사면받았다고 치부한다면 오판이자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 현 권부 핵심에서 구조적으로 저질러져 온 부패와 금권(金權)유착은 이번 선거 결과와 상관 없이 도려내져할 환부이다. 늘 어물쩡 넘어왔기에 구조화-고착화됐던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여야가 이번 선거를 통해 받은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내년과 내후년의 본고사 결과가 정해질 것이다. 예비고사 망쳤다고 본고사도 실패할 것이라 판단하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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