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했다. 6개의 현(E-A-D-G-B-E)으로 다양한 화음을 만들고, 높은 선율과 낮은 선율을 다 연주할 수 있다. 브리지 근처를 퉁기면 날카로운 소리가 나고 줄 중간 쪽을 퉁기면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하모닉스 등 특수주법으로 다양한 음색을 낼 수 있고 몸통을 두드려 타악기 효과도 낼 수 있으니 약간의 과장을 허용한다면 ‘작은 오케스트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기타는 소리가 작다. 그러나 멀리까지 들린다.” 이건 슈베르트의 말이다. 기타는 혼자서 연주할 수도 있고 노래를 반주할 수도 있으니 피아노에 버금가는 구실을 하는데,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으니 피아노보다 편리하다. ‘기타 하나, 은전 한잎’이란 노래도 있었으니 기타는 가난한 젊은이들이 벗 삼기 좋은 악기다. 배워서 익히기도 비교적 수월하니 기타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악기가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 시절, 기타를 배운 적이 있다. 음악 전공의 꿈을 포기한 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들이 딱해 보이셨는지, 아버지께서 “사내 놈들이 기타 뚱땅거리면서 노래하는 건 좋아 보이더라”며 기타 학원 다니는 걸 허락하셨다. <로망스>, <알함브라 궁전이 추억> 같은 곡을 칠 수 있게 됐지만, 줄리아니의 소나타를 연주할 실력은 안 된 상태에서 학원을 접었다. 입시가 다가왔고, 고개를 숙인 채 깔짝대며 줄을 뜯는 이 악기가 아무래도 기질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알량한 실력이지만 기타 연주를 써먹을 기회도 있었다. 까마득한 옛이야기지만, 92년 MBC 파업 집회에서 권오형 PD와 함께 나가서 슈베르트의 <밤과 꿈>을 연주했는데, 강퍅한 파업 중에 울려 퍼진 기타의 고운 소리가 꽤나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내가 선율을 연주하고 권오형이 반주를 했는데, 반주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밤늦게 FM을 틀면 폼포니오와 자라테가 연주한 이 곡이 자주 나오던 시절이었다.

나보다 훨씬 기타를 잘 친 권오형은 영화 <디어 헌터>에 나온 스탠리 마이어의 <카바티나>도 곧잘 연주했다. 이 곡의 악보를 구할 수 없던 시절, 그는 비디오 카세트로 영화를 되풀이 틀며 악보를 받아 적어서 연주했다고 한다. 요즘은 악보 구하기가 쉬울 것이다. 팝송으로 편곡되어 널리 사랑받는, 무척 따뜻한 곡이다.

   
 
 

 

영화 <디어헌터> 중 <카바티나>(스탠리 마이어 작곡)                  
https://youtu.be/c6gpa8nUa70

 

 

 

바흐 음악에 눈뜨게 해 준 것도 기타였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바흐 선율의 정수’라고 하지만, 화음 없이 선율만 구부구불 흘러가기 때문에 단조롭게 들릴 수 있다. 반면, 세고비아가 기타로 편곡한 것은 음표 하나하나의 잔향이 어우러져 일정한 화음을 이루기 때문에 좀 더 달콤하게 들린다. 광고 음악과 핸드폰 신호음으로 쓰여서 귀에 익은 선율이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프렐류드
(안드레 세고비아의 기타 편곡)
https://youtu.be/vXbH62Eea5c

 

 

 

고등학교 시절, 이 곡 덕분에 바흐 음악이 얼마나 즐거운지 처음 깨닫게 되었으니 기타에게 감사, 세고비아에게 감사….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선남선녀들이 세고비아의 기타 연주로 바흐에 입문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란다. 뛰어난 류트 연주자던 레오폴트 바이스(1687~1750)가 바흐와 친밀하게 교류했고, 그 결과 바흐가 4곡의 류트 모음곡을 쓰게 된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됐다.

   

▲ 클래식 기타의 거장 세고비아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기타로 편곡해서 연주했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귀재로 알려져 있지만 평생 기타 음악을 작곡했다. 기타 반주의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는 <모래시계>에서 혜린의 테마로 등장, 널리 알려졌다. 파가니니의 그랜드 소나타 A장조는 기타를 클래식 음악의 당당한 독립 악기로 격상시킨 걸작이다. 크로아티아의 젊은 기타리스트 안나 비도비치(1980년 생)의 연주가 훌륭하다. 한땀한땀 단정하고 정확히 연주하지만, 기계 같은 느낌이 아니라 섬세한 감정과 표현력이 돋보인다.

   
 
 

 

파가니니 그랜드 소나타 A장조 중 1악장 ‘빠르고 단호하게’
(안나 비도비치 연주) 
https://youtu.be/NQoh45IpWeQ

 

 

 

일본의 무라지 가오리, 크로아티아의 안나 비도비치, 불가리아의 스토야노바 자매 등 젊은 기타리스트들의 활약이 흐뭇하다. 한국의 박규희도 빼놓을 수 없다.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음대와 빈 국립음대로 유학한 그녀는 스페인의 알함브라 콩쿠르에 입상하는 등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연주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어보자. 주선율을 트레몰로로 연주하고 엄지 손가락으로 반주하는 곡으로, 클래식 기타의 명곡 중의 명곡이다. 트레몰로는 기타 연주에서 특별히 어려운 기법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음 하나하나를 고르고 단정하게 연주하기는 쉽지 않다. 적절한 템포로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연주다.  

   
 
 

 

타레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박규희)                     
https://youtu.be/DvpPc8ru2io

 

 

 

 

   

▲ 기타리스트 박규희는 한국 팬들을 만나는 순간이 제일 떨린다고 한다. 그녀의 연주를 통해 클래식에 입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박규희는 유럽에서 되풀이 콩쿠르에 도전하던 시절 음악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아무 기쁨도 없이 테크닉만 보여주는 콩쿠르,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상금을 타고 싶었는데 연주 자체가 목적이 아니어서 순수하지 못했고 스스로도 행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밥 지어먹을 시간도 없이 하루 13시간을 연습했고, 손을 다칠까봐 요리를 하지 않아서 변변히 먹지도 못한 채 무대에 오르곤 했다. 박규희는 1년 남짓 계속된 슬럼프를 이겨낸 뒤 인간적으로, 음악적으로 성장했다. 그녀는 리처드 용재 오닐이 비올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것처럼, 클래식 기타로 한국의 음악팬들에게 다가서고 싶다고 말한다.

“음악은 사람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연주자가 행복하지 못하면, 연주도 행복하지 못하죠. 그걸 생각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졌죠.”

잔인했던 4월이 간다. 클래식 음악이 마음을 위로한다면, 클래식 기타는 좀 더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박규희가 연주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한 번 더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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