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읽기 어려운 책이 아주 많이 있다. 물론 내가 수준높은 독서가가 되지 못한 것이 큰 이유지만, 내 경우에는 미셀 우엘벡의 책들이 그랬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같은 건 물론이며, 라깡이니 들뢰즈니 하는 데서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내뺀다. 니체는 눈도 안 마주치고 도망쳐 버린다. 하지만 그것들을 다 합친 것보다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책이 있었다. 그리고, 절대로 눈을 맞춰야 하는. 수준높은 독서가가 아닌 대신 성질이 급한 만큼 책도 빨리 읽어서, 웬만한 책이면 40분에서 한 시간 정도면 읽어치울 수 있지만 이 책을 다 읽는 데는 네 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바로  <잊지 않겠습니다>(416가족협의회·김기성·김일우·박재동/한겨레출판/1만3500원)라는 책이었다.

단원고 아이들의 가족들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인 만큼 어려운 단어가 없고 가족을 잃은 절절한 슬픔과 비통함의 무게들이 하나같은 만큼 엄밀히 말하자면 편지들이 다들 비슷한 내용이라 할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 달랐다. 박재동 화백이 그려낸 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과 눈을 마주치기 부끄럽고 괴로워 많이 울었다. 이 꽃같은 목숨들과 눈을 똑바로 맞추고 감히 ‘시신 장사’ ‘보상금 요구’니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누군지는 몰라도 아마 돈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물론 나도 돈을 좋아한다. 그러나 내 가족의 값을 순식간에 원화로 환산할 수 있을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시신 장사, 하는 말이 입에서 쉽게 나온다면 본인이 그 장사를 할 태세가 충분히 되어 있나보구나, 정도의 의심은 받아 싸다. 어쨌거나 이 책에 나오는 단어 중 인상 깊었던 건 ‘기억 투쟁’이라는 새로운 용어였다. 자꾸만 가슴에 묻고 닥치라고 윽박지르는 세상에서 기억하고 슬퍼하는 것만으로도 굳은 마음 먹고 싸워야만 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이다. 카톡 프로필 사진 같은 것에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어 놓는 것은 아주 쉽다. 당장 내가 그러다 몇 달 지난 후 다른 걸로 바꿨듯이. 기억이 투쟁이 되어 버린 지금,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약속은 우리에게 카톡 프사 따위보다 훨씬 엄중한 각오를 요구한다.

지금도 단원고에는 떠나간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빈 교실에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되고 있지만 시인이자 르포라이터인 송기역 씨가 아이들의 간략한 일대기를 쓰는 작가로서 출입이 허용되었다며 혹시 전해 주고 싶은 게 있으면 달라고 했다. 내가 그나마 안다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은 둘이다. 김영오 씨의 딸 유민 양과, 유경근 씨의 딸 예은 양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팟캐스트 <무책임한 그내탓>에서 김영오 씨를 인터뷰하다 광장에서 엉엉 울었다(지나가는 사람들이 핏 하고 비웃으며 저런 미친 년, 하고 크게 말했지만 이런 상황에 미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혀 화나지 않았다). 김영오 씨는 휴지를 꺼내 내게 건네주고 자신도 눈물을 닦으며 나에게 울지 말아요, 하고 말했다. 그 말에 더 눈물이 났다. 이분한테 울지 말란 소리를 듣고 있게 생겼는가.

우리가 죄다 총출동해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기에도 모자랄 판에. 예은 양의 어머니와는 다른 팟캐스트 <과이언맨>에서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나는 삭발도 안했고 말도 잘, 하면서 사양하시던 예은 양의 어머니는 방송이 연결되자 침착하고 차분하게 왜 시행령이 전면폐기되어야 하는지 또박또박 설명했다. 두 분이 모두 강조한 것은 앞으로의 대한민국에 꼭 있어야 할 ‘안전’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막말하는 것처럼 돈 몇억 받아먹고 떨어지면 됐지 왜 이 고생을 하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잊지 않겠습니다’ 는 아이고 불쌍해라 생목숨들이, 와는 다르다. 다시 이런 희생이 없기 위해, 모두가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야 나중에 아이들을 만났을 때 조금이나마 덜 미안할 것 같다는 가족들의 뜻을 쓸데없는 왜곡이나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억울한 마음을 알아 주는 것이 정말로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 김현진 에세이스트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주제에 유민 양, 예은 양의 책상에 놓아 주기 위해 예쁜 꽃과 카드를 샀지만 새하얀 속지 앞에서 나는 아직도 망설이며 한 줄도 못 쓰고 있다. 길게 쓸 것도 아니건만 이렇게 쓰기 어려운 글은 처음이다. 역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어쩌고 하는 어설픈 사과보다 약속을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절대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뜻하지 않게 세상에서 제일 슬픈 투사가 되어 버린 엄마 아빠들을 힘껏 지켜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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