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이완구 총리의 사의를 수용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이 총리는 박 대통령 사의 수용 뒤 이임사를 발표했다.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국정운영 책임 2인자의 사의를 수용하면서도 국민에 사과의 메시지는 유보한 것이다. 사의를 수용한 즉시 사과 메시지를 내놓지 않으면서 성완종 리스트 정권 확산 의혹을 이 총리의 사의 표명 수용 수준으로 꼬리자르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완구 총리도 이임사에서 "최근 상황과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습니다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으로 믿으며 오늘은 여백을 남기고 떠나고자 한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 총리는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며 소통, 공직기강 확립, 부패척결 등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이루겠다는 큰 희망을 갖고 시작했다"고 소회를 털어놓고 "짧은 기간 최선을 다했으나 주어진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무척 아쉽게 생각하며, 해야 할 일들을 여러분께 남겨두고 가게 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대해 "저는 그간 최근의 일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 우리 국가의 현실과 장래에 관하여, 그리고 특히 공인으로서 다해야 할 엄중한 책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였다"고 말했다. 이 총리의 발언은 자신에 쏟아지는 의혹에 떳떳하지만 공직자의 책무를 감안해 물러난다는 억울함이 깔려 있다. 

새누리당은 이 총리의 사의 수용을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추켜세웠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대통령의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은 “매우 안타깝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치개혁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가 읽혀진다”며 “성완종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은 해결됐다. 대통령의 진상 규명 의지가 거듭 확인된만큼 한치의 의혹을 남기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성완종 리스트 의혹 이후 정치 전반의 개혁을 강도 높게 주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박 대통령은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 불법자금으로 쓰일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도 자신의 책임은 뒤로 한 채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성수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완구 총리의 사임을 수용하면서 아무런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건강문제로 공식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는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측근들이 망라된 전대미문의 권력형 비리게이트에 대해서 한마디의 사과 없이 총리 사의만 수용한 것은 옳지 못하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진솔하게 사과하고 총리를 사임시켰어야 마땅하다. 친박 비리게이트는 총리 사임으로 끝내서는 안 되고 끝낼 수도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 이완구 국무총리
 

일단 이 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검찰이 현직 검찰을 수사하는 모습을 피했지만 수사 공정성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새누리당과 법무부장관, 청와대 민정수석이 일체 수사에 관여치 말도록 지시하고 약속하길 바란다"고 주문했지만 우병우 민정수석이 성완종 리스트 의혹을 받고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돈독한 관계'라는 지적도 나오면서 수사 공정성 논란이 재차 제기됐다. 

이완구 총리 사의 이후 청와대에서 특검 수용 의사를 다시 한번 밝히는 선에서 이번 의혹의 파문을 최소화하려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28일 국무회의에서 부패척결 의지를 재차 밝히면서 국회에 특검 도입을 강하게 주문해 '깨끗한 정권'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전략이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위경련과 인두염 증세로 보였고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권장이 있었다는 청와대 발표가 나오면서 28일 국무회의를 주재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김철근 교수(동국대 정치외교)는 "건강이 실제 좋지 않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고 선거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사과 표명 여부를 포함해 어떤 식으로든 박 대통령의 발언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무회의 불참 가능성도 보인다"며 "박 대통령의 심신이 지친다는 메시지는 또한 의도치 않게 보수층 결집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성완종 리스트는 8명 명단으로부터 촉발됐지만 특사 논쟁으로 가면서 여야 모두 손해를 보고 있고 국민들 인식에도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의혹으로 확산되면서 제3지대쪽 인사에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날 이완구 총리의 이임사 발표 생중계 방송을 불허한 것을 두고 최단기 불명예 퇴진과 함께 인사참사의 연속이라는 비판을 조금이라도 피해가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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