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세월호 1주기에 맞춰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나 많은 비판을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귀국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메모가 공개되면서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했고, 성 전 회장이 건냈다고 알려진 돈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자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에 자리를 비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27일 신문들은 이런 의혹에 대한 검증이 시작돼야 한다는 보도보다는 박 대통령이 부패 척결의 주체로 비춰지거나 고열과 복통에도 링거를 맞으며 중남미 순방을 하며 여러 성과를 거뒀다는 보도가 많았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박근혜 대선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이 아닌 ‘성완종 사건’으로 축소된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주말 네팔 카트만두 인근에 규모 7.8, 6.7의 두 차례 강진과 수십 차례의 여진이 발생해 26일까지 2400여명이 목숨을 잃고 4600여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 산에서도 산사태가 일어나 1000여명이 고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피해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해졌다.  

   
▲ 27일 중앙일보 1면.
 

 

다음은 27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세계의 지붕’이 무너졌다‘>
국민일보 <울고 있는 네팔, 모든 것이 무너졌다>
동아일보 <대한민국은 녹음중>
서울신문 <성완종 금배지 시절 ‘민원대부’로 통했다>
세계일보 <4년제 대졸자 272만명 논다>
조선일보 <금배지 달았더니…3년새 회사순익 15배로>
중앙일보 <한·일 협정 주역 JP, 아베에게 충고하다>
한겨레 <폐허 속 “살려주세요”…네팔의 절규>
한국일보 <81년 만의 강진 네팔 할퀴다>

몸도 안 좋은데, 타지에서 고생한 박 대통령

최근 정치인들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건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과 무관한 듯 말하는 ‘유체이탈식’ 화법이 유행이다. 27일 아침 신문을 보면 이를 돕는데 언론도 한몫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일보 <기침·고열·복통…박대통령 ‘링거 투혼’ 순방>
동아일보 <‘링거 순방’…무거운 귀국 발걸음>
중앙일보 <고열·복통 시달린 박 대통령…‘이완구 사표’만 먼저 처리>

   
▲ 27일자 국민일보 5면
 

보도는 상세했다. 박 대통령이 편도선이 붓고 복통에 열까지 났는데 이는 ‘고산병을 느끼지 않는 대신 목으로 온 것 같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까지 상세히 전달했다.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은 16일 출국 전날에도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출국일이 세월호 참사 1주년인 날이어서 세월호 일정을 어떻게 소화할지 막판까지 고심했다. 여기에 ‘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된 이완구 국무총리의 퇴진 요구까지 빗발치자 출국 직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독대하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6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떠난 빈 팽목항 등대 앞에서 참모들과 세월호 행사를 마친 뒤 김 대표와 독대에서도 별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고 떠나 보여주기 식의 일정이라며 비판을 받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여전히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보도라고 볼 수 있다.  

아픈데도 할 일 다 한 박 대통령?

서울신문은 <남미 4개국과 6억4600만 달러·72건 계약 성사>에서 청와대가 밝힌 이번 순방의 성과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이번 순방을 계기로 우리 중소·중견 기업은 콜롬비아·페루 등 현지에서 745건의 일대일 상담회를 가졌으며…(후략)”라며 각종 양해각서(MOU)체결과 동포와 오찬, K팝 공연 등을 알렸다.  

   
▲ 27일 서울신문 4면.
 

박 대통령의 건강상태와 일정만을 세세하게 나열하는 것을 외교성과라고 볼 수 있을까? 청와대가 밝힌 성과 중에는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의료민영화와 관련이 있는 ‘원격 의료시장 본격 진출’ 등의 내용도 있다. 하지만 순방결과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 것인지 분석하거나 예상한 기사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몸이 아프지만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열심히 일한 박 대통령을 기다리는 것이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표나 어지러운 국내정치 상황이라고 강조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한 호텔에서 열린 K팝과 함께하는 한·브라질 패션쇼를 지켜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문화행사 참석을 끝으로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무리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연합뉴스
 

‘박근혜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돌아와서 28일 있을 국무회의 전까지 해야할 일은 이완구 총리 사표 수리다. 김무성 대표의 말을 참고하면 박 대통령은 4·29 재보선이 있기 전에 성완종 전 회장이 밝힌 메모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사과해 여권의 부담을 줄여줄 것이다. 새누리당 전 의원이기도 했고, 자금이 이완구 총리 뿐 아니라 청와대 인사와 친박계 의원 즉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이 피해자로 변질돼 가는 형국이다. 

검찰 수사도 경남기업 관계자들만을 향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커녕 성 전 회장이 메모를 통해 밝힌 8명에 대한 소환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은 성 전 회장이 선진통일당 의원이던 시절 2년간 의정활동 회의록을 분석했다. 

   
▲ 27일자 서울신문 1면
 

<성완종 금배지 시절 ‘민원 대부’로 통했다>
<금융업계 슈퍼갑 정무위원 成 ‘셀프배정’ 후 각종 특혜 챙겨>
<정무위 활동 시기 금융 지원 쏟아져, 경남기업 위기 때마다 특혜 의혹>
<충청도·건설업·해외투자…편향됐던 성 의원의 ‘3대 키워드’>

   
▲ 27일자 조선일보 1면
 

서울신문의 보도는 당사자가 없는 상황에서 성 전 회장의 자취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잇지만 성 전 회장이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경남기업을 키워온 기업가형 부패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며 결국 칼날을 경남기업 내부로만 겨누게 한다는 우려도 낳는다. 이미 검찰의 칼날이 청와대를 향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도 <금배지 달았더니…3년새 회사순익 15배로>를 통해 비슷한 보도를 내놨다. 

홍문종의 수상한 재산 증가 

경향신문은 사설 <‘성완종 리스트’ 수사팀, 2주 동안 뭘 했나>에서 “8인 리스트가 적힌 메모가 실재하는데도, 구속·체포는커녕 소환된 사람 한 명 없다”며 “타깃은 이미 사망해 ‘공소원 없음’ 대상이 된 성 전회장이 아니라, 리스트에 오른 정권 실세들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27일자 경향신문 사설
 

한국일보가 이 중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에 대해 보도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홍 의원은 당시 100억원에 다하는 빚더미 속에서도 예금만으로 8억여원을 불렸다. 대선 당시 조직을 관리했던 홍 의원은 대선 이후에도 당내 자금과 조직을 움직이는 사무총장이었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홍 의원에게 2억 원을 현금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 27일자 한국일보 5면.
 

한국일보는 2억원 뿐 아니라 홍 의원의 부동산 거래 내역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예금이나 빚을 갚는 데 썼다는 매도금 중 13억원이 재산신고 목록에서 누락된 점, 워크아웃 중이던 신도건설이 20억원에 매입한 부동산을 홍 의원이 한 달 뒤 70억원에 매입한 점, 홍 의원 개인 부동산을 자신의 부친이 설립한 경민대에 돈을 받고 빌려주거나 해당 부동산을 한 회사에 매각했지만 보증금을 학교에 반환하지 않은 점 등을 밝혔다. 명단이 공개된 8인 중 한명인만큼 검찰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네팔, 사람·자연·문화유산 모두 무너져 

지진이 발생한 카트만두 일대에는 250만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네팔이 최빈국(1인당 GDP 2400달러)이어서 내진설계 등 안전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고 폭격을 맞은 듯이 망가진 도시에는 전기와 물이 끊겨 피해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총 4곳 붕괴)에 등재된 카트만두의 빔센 타워도 무너졌다. 이곳은 전망대가 있어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어 인명피해도 컸다. 인근 히말라야 산맥은 산사태로 인해 에베레스트를 오르던 등산객 18명이 숨지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한국정부는 26일 네팔 정부에 100만 달러 규모의 긴급 인도 지원을 제공했고, 대한적십자사 등 민간단체들도 피해 지원에 나섰다. 국경을 함께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가장 먼저 구조인력을 파견했고, 국경없는의사회 등 구호단체도 나서기로 했다. 일주일 전 지질학자 50여명이 카트만두에 모여 주거환경이 열악한데 인구가 밀집된 이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피해를 줄일지 논의하는 모임을 가졌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점에서 아픔은 커졌다. 네팔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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