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원자력협정이 41년 만에 개정된다. 언론은 1974년 국내 원전 산업 초창기 때 발효된 원자력협정에 현재 수준을 반영해 개정했다는 데 의미를 뒀다. 하지만 협정 만료 시한을 2년이나 연장했음에도 그 시간만큼 진전된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한미원자력협정 체결 시점이 정국 물타기용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노벽 외교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전담 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는 22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원자력협정에 가서명했다. 새 협정은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원전 수출 경쟁력 강화 등과 원자력 연구·개발 분야에서의 자율성 확대 등이 담겼다. 협정 유효기간은 20년이다. 

언론은 23일 지면에서 각각 이 문제를 다뤘다.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23일 한미원자력협정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대부분 원전용 연료 생산을 위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1단계 연구·개발이 허용됐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췄다. 

   
▲ 동아일보 3면.
 

 

언론은 이번 한미원자력 협정을 미국과 주권을 건 싸움인 듯 다루고 있다.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을 제외한 데 따른 분석이다. 미국은 타국과의 원자력 협정에 ‘농축·재처리 포기’를 명시하도록 하는 골드 스탠더드를 관철시켜 왔다. 핵연료주기를 미국의 통제하에서 결정하느냐 아니면 각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느냐 여부를 두고 ‘핵주권론’이 불거지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23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이번 협정에는 핵심 쟁점이던 핵연료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해 주권 침해 논란이 됐던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를 통해 한국이 핵 연료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첫발을 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사설에서는 일본 수준의 ‘농축·재처리’ 시설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이번 협상팀을 질타했다. 

동아일보는 “불평등 협정이라고 지적받던 한미원자력협정”이라고 표현하며 이번 재협정 협상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일본은 (우라늄을) 20% 이상을 농축할 수 있다. 한국이 세계 5위 원전 강국이자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해 왔음에도 일본만큼 신뢰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지적했다. 

원자력협정 문제를 두고 미국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특히 국민적 감정이 민감한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일본은 했는데 한국은 못했다’는 식으로 단편적으로 비교했다. 동아일보 이런 사설은 자사 기사와도 배치된다. 

   
▲ 조선일보 1면.
 

 

동아일보는 앞선 기사에서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전폭적인 농축 및 재처리 권리를 인정받은 것은 냉전 시대 상황과 기술 선진국이라는 일본의 특성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며 “다만 지금처럼 ‘핵무기 없는 세상’을 표방하는 미행정부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단편적인 비교가 한미원자력협정의 중요 쟁점에 대한 본말을 전도시킨다는 데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사실상 미국의 원전 기술을 이용할 경우 미국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다. 언론은 40여년 만에 협상이 재개정되면서 한국의 발전된 원전 산업 기술을 반영했다고 치켜세우면서 미국이 협상에 임한 이유에 대해서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번 협정에서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또 사용 후 핵연료 기술 재처리 기술 ‘파이로 프로세싱’을 연구할 수 있는 물꼬를 텃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라늄 농축은 때때로 양국이 합의하도록 했다.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은 연구 실패 확률도 큰데다 비용도 많이 들어 사실상 ‘현실가능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녹색연합은 지난 22일 논평을 통해 “파이로 프로세싱은 고속증식로를 전제로 하는데 사실상 천문학적 비용과 소듐(나트륨)의 폭발성이 갖는 위험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일본에서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는 시설”이라고 지적했다. 

   
▲ 경향신문 6면.
 

이 때문에 한미행정협정이 원자력 학계의 ‘미래 먹거리’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단적으로 파이로 프로세싱 도입 문제를 보면 1단계 수준 연구를 허락한 것으로 기존 진행하던 듀픽 모델보다 못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며 “막대한 자금을 들여 새로운 연구 과제를 원자력 학계에 주고 그들을 먹여살리겠다는 의도 밖에 안된다”고 비판했다. 

2년 질질 끈 합의 왜 지금? 
당초 한미원자력협정은 2013년 4월이 만료였다. 하지만 양국은 협정 만료 시점을 2년 연장했다. 하지만 2년 전 내용과 지금 내용에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23일자 신문에서 “이번 합의 결과가 종전 협정의 만료 시한을 2년 이나 연장해 가면서 협상을 끌 만큼 소득이 있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며 “특히 지난해 말 사실상의 합의가 다 끝났다면서도 4개월이 넘도록 ‘막판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양새를 보이기 위해 발표 시점을 조절한 게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협정 만료 시점 즈음 농축·재처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이 한국 핵주권을 제약하고 있다’는 이른바 핵주권론이 퍼지면서 재협정이 난항을 겪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은 “협상팀은 2013년 현행 협정을 2년 연장하는 ‘시간연장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일각에서는 2년이나 미뤄진 시점에서 4월 말 협정을 체결한 타이밍에 대한 의문도 품고 있다. 

양이원영 처장은 “이번 협정 내용은 2년 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시절 인수위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일부는 오히려 당시보다 후퇴한 안도 있다”며 “이걸 두고 대단한 협정이라도 이뤄낸 것 마냥 호들갑을 떠는 정부나 언론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처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인데 반해 국내는 여전히 ‘성완종 리스트’로 시끄럽고 4·29 재보선도 남아있다”며 “비우호적인 국내 정치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기획된 아이템이라는 의혹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