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신’ 래리 킹이 청중을 휘어잡는 방법
‘대화의 신’ 래리 킹이 청중을 휘어잡는 방법
[서평] 잘 아는 걸 말하라, 단순하고 쉬운 질문으로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켜라

누군가가 래리 킹에게 물었다.

“방송국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당신 팔을 붙잡아 스튜디오에 앉히고 서류 몇 장을 준 다음 ‘지금 앵커가 아파서 당신이 대신 방송을 해줘야겠어’라며 방송 시작을 알리는 불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래리 킹은 이렇게 말할 거라고 대답했다.

“제가 여기 방송국을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제 팔을 붙잡아 스튜디오에 앉히고 서류 몇 장을 준 다음 ‘지금 앵커가 아파서 당신이 대신 방송을 해줘야겠어’라고 말하더군요.”

‘진실된 태도로 상대방의 마음을 열라’는 것이 래리 킹이 말하는 대화의 기본이다. 잘난 척할 필요 없이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고 공감을 구하라는 이야기다.

CNN ‘래리 킹 라이브’의 진행자, 토크쇼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래리 킹의 본명은 로렌스 하베이 자이거다. 1957년부터 라디오 디스크자키를 시작해서 2010년까지 방송 경력만 53년이 넘는다. 2013년부터 다시 방송을 하고 있다. 올해 여든두 살. 커다란 뿔테 안경에 멜빵, 팔꿈치를 괴고 카메라를 넘겨 보면서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래리 킹의 토크쇼는 CNN 메인 뉴스보다 시청률이 더 높았다.

그런 전설의 래리 킹도 첫 방송 때는 실제로 저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는 사실 오늘이 첫 방송입니다. 방금 전까지 혀가 굳어서 입도 못 떼고 있었는데 밖에서 총국장이 문을 뻥 차는군요.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래리 킹이 뽑은 최악의 실수는 “Best in Bread(최고의 빵집)”이라는 생방송 광고를 “Brest in Bed(침대에서의 젖가슴)”이라고 말한 것이다. 방송 초짜 시절 여러 방송사를 돌면서 방송을 했는데 두 번째 방송국에 가서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 세 번째 방송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 실수를 하고 난 다음 또 같은 실수를 할까봐 걱정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래리 킹은 “실수를 했을 때 실수를 빨리 떨쳐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실수를 돌이켜 생각하지 말고 그 말이 다시 튀어나올까 걱정하지 말고 실수가 없었던 듯 계속 나가라는 이야기다.

래리 킹이 말하는 대화의 기술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잘 아는 걸 말하라는 것이다. 광범위한 주제라면 개인적인 경험담부터 풀어놓는 게 좋다. 말 주변이 없어도 된다. 메모지에서 눈을 떼고 청중을 바라보고 똑바로 서거나 앉아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된다.

우스개 소리로 시작하는 것도 좋다. “뉴욕시의 교통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모든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꿔서 북쪽으로만 갈 수 있게 하는 거죠. 그럼 뉴욕 북쪽에 있는 올바니는 골치가 아프겠지만 그거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해결할 문제고요.”

썰렁한 농담이지만 문제 해결이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주제를 꺼내기에는 적절한 화두가 된다. 식상한 유행어를 피하되, 평이한 단어로 이야기를 툭 꺼내놓는 것, 이것이 기술이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는 이런 말로 시작한다.

“우리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미국은 기회의 나라고 모든 길이 황금으로 포장됐다는 말을 듣고 이 나라로 이민을 결심했죠. 그런데 미국에 도착하자 마자 3가지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 세 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미국의 길은 황금으로 포장돼 있지 않다.
2. 길은 아예 포장조차 돼 있지 않다.
3. 길을 포장하는 일이 바로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이었다.

청중은 이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고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곧 강연자와 자신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말 잘하는 사람의 특징을 래리 킹은 KISS로 요약한다. Keep It Simple, Stupid. 단순하게 그리고 머리 나쁜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하라는 말이다. 진부한 표현과 과장된 문장, 전문 용어, 유행어를 빼고, 평이하고 단순한 표현을 쓰라는 조언이다. 처칠이나 케네디처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논지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범죄율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두 명의 발표가 있는데 래리 킹이 두 번째 발표였다. 앞선 발표자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로 청중의 절반을 졸게 만들었다. 래리 킹은 연단에 올라서자 이렇게 말했다.

"앞엣 분이 범죄가 얼마나 나쁜가를 말했으니 저는 범죄가 왜 좋은가를 말하겠습니다."

졸고 있던 사람들이 깨기 시작했다.

"미국의 5대 관광도시는 뉴욕과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은 곳도 뉴욕과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입니다. 범죄가 관광객들을 부르는 것이죠."

임기응변으로 꺼낸 말이지만 이쯤되면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제 수습을 해야 할 차례다.

"범죄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돈이 모입니다. 만약 우리가 범죄를 말끔히 쓸어낼 수 있다면 우리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죠."

이야기가 안드로메다로 가려는 순간, 경찰서장이 웃으며 일어나 묻는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뭡니까."

래리 킹의 대화의 기술은 역시 대담에서 빛을 발한다. 래리 킹이 언제나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건 아니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개인적인 차원으로 유도하는 게 래리 킹의 전략이다. “아버지를 사랑했느냐”는 질문을 던지려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게 놔둬야 한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사랑했느냐”고 물으면 “물론이죠”라고 단답형 답변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게 “워터 게이트 사건 때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때로는 멍청하고 단순한 질문, 다른 기자들이 쉽게 꺼내지 않을 질문이 핵심을 찌른다. 다만 그런 질문을 던지려면 충분히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킬 필요가 있다.

래리 킹이 말하는 말 잘하는 사람의 8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익숙한 주제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라. 색다른 관점과 통찰력을 드러내라.
2. 당신만의 경험을 꺼내는 것으로 시작하라.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다.
3. 당신이 좋아하는 소재를 꺼내라. 당신의 열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상대방을 몰입하게 할 수 있다.
4. “당신은?”이라고 물어라. 상대방을 끌어들여라.
5. “아, 그래요?” 보다는 “와, 정말 잘 됐네요”라고 말하라. 공감을 전달하면 마음을 열 수 있다.
6. 억지로 유머코드를 쓰지 마라.
7.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라. 논리적인 말하기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진정성과 감정에 호소하거나 소곤거리듯 말하면서 주의를 끌어당기는 스타일이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
8. 상투적인 표현을 뺄수록 신선한 대화가 된다. 군더더기 없는 말도 과감하게 덜어내야 한다.

언뜻 다시 읽어보면 말 잘하는 방법과 글 잘쓰는 방법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래리 킹은 왜 노력하지 않느냐는 질문과 함께 다음의 두 가지 조언을 남긴다.

1. 스스로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해도 당신은 잘할 수 있다.
2. 스스로 말을 잘한다고 생각해도 지금보다 말을 더 잘할 수 있다.

대화의 신 / 래리 킹 지음 / 강서일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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