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9 재보궐선거 서울 관악을 지역 선거가 양강 구도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이 정권 심판 프레임을 끌어올리면서 야권 지지층이 결집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관악을 지역은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출마하면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사이에 균열을 내는데 그치지 않고 당선 유력 주자로 떠오를지 관심을 모았다.

정동영 후보는 대권후보 전력이라는 인지도가 다른 후보를 압도하고 시민사회 진영에서 꾸준한 활동하면서 야권개편의 진정성을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괴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출마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입장을 번복하면서까지 출마를 강행한 것도 야권 지지층의 표가 자신으로 몰리고 부동층의 표까지 흡수하면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를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후보 측 예상과 달리 여론조사 결과는 야권층의 지지가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몰리는 모습이다. 정태호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3위로 떨어뜨리고 선거 막판 오신환 후보까지 뛰어넘는 그림은 정동영 후보 측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다. 

지난 17일~18일 CBS 노컷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오신환 후보는 36.6%를 기록했고 뒤를 이어 정태호 후보가 33.1%를 기록했다. 정동영 후보는 20.1%에 그쳤다.

문제는 2주 전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결과와 비교해 오신환 후보의 지지율은 7.1%포인트 줄고 정태호 후보는 8.2%포인트 상승한 반면 정동영 후보의 상승폭은 0.2%포인트에 그쳤다는 점이다. 

   

▲ 4·29 재보궐선거 서울 관악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오신환(왼쪽부터)·새정치민주연합 정태호·국민모임 정동영 후보가 21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현대HCN 서초방송에서 열린 서울시 선관위 주최 TV토론회에서 손을 잡고 있다. ⓒ 연합뉴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에 표가 몰리는 양상이 나타나는 것을 감안하면 야권 지지층 관악을 주민의 선택이 정동영 후보가 아닌 정태호 후보 쪽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성완종 리스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야권의 정권 심판론 목소리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대로 정동영 후보가 들고나온 야권 개편론은 각을 세우지 못하고 칼날이 무뎌진 모습이다.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는 지역 일꾼론을 내세우며 유권자의 틈새를 공략했지만 중앙 정치에서 성완종 리스트 의혹 공방을 주고 받으면서 공중전 폭탄을 맞은 셈이 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관악을 선거구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43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양강 구도의 경향이 나타났고 정태호 후보가 오신환 후보를 꺾는 결과까지 나왔다. 오차범위이긴 하지만 정태호 후보는 36.7%, 오신환 후보는 36.5%를 기록했고 정동영 후보는 15.8%에 그쳤다. 투표의향층에서는 오신환 후보가 37.7%, 정태호 후보가 35.7%로 나와 초접전을 나타냈다.

정동영 후보 측은 젊은 층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역시 빗나갔다. 연령대별 지지율로 보면 19~29세에서 정태호 후보가 36.4%로 1위를 차지했고 뒤이어 오신환 후보가 15.9%, 정동영 후보는 11.4%로 나왔다. 특히 30대에서는 정태호 후보가 무려 61.9%, 오신환 후보가 29.1%, 정동영 후보는 0.9%로 나왔다. 40대에서도 정태호-오신환-정동영 순으로 지지율이 나왔다. 정동영 후보의 기호가 8번이어서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에서 가장 늦게 호명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젊은층에서 정 후보의 지지도는 예상 밖으로 낮은 수준이다. 

   
▲ 리서치뷰 여론조사 결과
 

후보를 사퇴했던 이상규 무소속 후보의 표가 어디로 흡수될지도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신환 후보와 초접전 대결을 벌이는 정태호 후보에게 표가 몰릴지 아니면 정동영 후보로 갈지는 미지수다. 다만, 정태호, 정동영 후보 측 모두 통합진보당 의원이었던 이상규 후보와 연대를 거부하는 등 부담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변수로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5% 이상 나온 이 후보의 지지율이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당황한 모습이다. 정동영 후보 측은 정의당과 노동당과 단일화 국면에서 "이상규 후보와의 단일화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며 경계의 뜻을 나타낸 바 있다. 정태호, 정동영 후보 측은 모두 한표라도 아쉬운 가운데 이상규 후보 지지층의 표의 향배에 따라서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의 신빙성을 제기하며 막판까지 가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 후보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작' 때문에 좀 힘들다"며 "예를 들면 여기 2,30대 인구가 40%인데, 간혹 여론조사 이렇게 보면 15%도 안 되는 표본을, 또 60대 이상 인구가 20%인데 사십 몇 퍼센트를 잡아놓거나, 요즘 유선전화 갖고 있는, 집에 전화 갖고 있는 20~30대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유선과 무선이 확연히 다르다. 저는 압승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론조사 기관 측은 “과거 ARS 방식의 조사에서 연령을 속이는 왜곡 현상이 나타나 전수조사를 통해 바로잡은 경험을 바탕으로 18대 대선 득표율과 18대 총선 투표율 가중치를 반복비례 적용하고 전화면접을 병행한 것”이라면서 “워낙 젊은 유권자의 표본수가 적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가중치를 반영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역 주민을 얘기를 들어봐도 정동영 후보의 파괴력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관악구 서원동에 거주하는 윤병호(40)씨는 "지역 주민 입장에선 정동영 후보가 여기 와서 야권을 재편하겠다는 것은 오버하는 것 같다"며 "그 정도 인물이라며 더 큰 곳으로 가서 붙어야지 이곳이 쉽다고 보고 승산이 보이니까 왔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인지도는 높지만 젊은 층에게 신선하다는 느낌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20년 이상 관악구 대학동에 거주한 박형주(42)씨는 정동영 후보에 대해 더욱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박씨는 "야권 지지층에서 정태호 후보로 많이 돌아섰다. 정동영 후보가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역적 근거부터 없는 것 아니냐"며 "토박이들이 많은 동네이고 군소정당 후보들이 기초의원으로 당선될 만큼 정치적 의식도 깨어있는 편인데 동작을 등 여러 곳에서 참패한 사람이 관악으로 온 것에 모욕적이라는 느낌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오신환 후보 측은 턱밑까지 추격해 들어온 정태호 후보에 대해 애써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오 후보 측 공보팀 관계자는 "실질적인 현장 분위기는 성완종 파문이 영향을 미치지 않고 지역일꾼론이 전체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라며 "야권 표쏠림이나 단일화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해오던 대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메시지를 유권자에게 일관되게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지역에서 특별한 경쟁력을 가진 무소속 후보가 3자 구도를 형성한 일은 종종 있지만 수도권에서 삼각 구도로 선거를 치룬 일은 전례가 없다"며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소극 지지층은 후보를 정하게 되고 부동층도 결단을 내리는 시점이 임박하면서 양강 구도의 법칙이 이번 선거에서도 관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20-30대 지지층은 광우병 파동 이후 일관되게 정부 비판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 세대들이 성완종 파문 속에 야권 개편 혹은 야당 심판 쪽이냐 아니면 정권 심판 쪽이냐를 놓고 고심을 할 건데 현재 무게중심은 정권 비판 쪽으로 가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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