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세상이 변한다고 하는데 단지 그냥 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변화를 만들어낸다. 방송매체에서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MBC ‘무한도전’을 꼽을 수 있다. 정치적 보복도 당하면서 방송콘텐츠 자체에 대한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낳기도 했고, 사회 나아가 기업에게도 주는 함의가 있어왔다. 하지만 그 10년의 무게는 앞으로 미래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한도전’이 지난 10년 동안 몇 가지 함의를 지녀왔던 점은 분명하다.

우선 ‘무한도전’은 융합의 도가니였다. 무정형의 정형성이 있었고, 무고정의 고정성이 있었다. 정형화된 포맷이나 고정적인 소재만 다뤄 내던 방송형식과 달리 어떤 것도 자기의 신체 일부로 만들어 버리는 생명체 같았다. 그것이 텔레비전에서 가능하려면 방송에서 계층과 지역, 직업과 성별이나 학력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세대간 문화적 이격이 높은 한국에서 어떤 소재, 장르, 세대 간의 넘어서는 공감의 코드를 만들어 내었다.

‘무한도전’은 새로운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내는 테마파크 같았다. 새로운 것은 물론 낡은 것 지나간 것도 새롭게 의미부여했다. 옛것은 더이상 낡은 것이 아니었고 새로운 것은 단지 새로운 것만이 아니었다. 특히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한국적 예능 감각을 듬뿍 담아내는 성찬이었다. 키덜트 코드의 전형적인 사례가 된 이유였다.

‘무한도전’은 롱테일 전략의 표본이었다. 많은 방송 프로그램은 하나의 대박 콘텐츠를 만드려고 노력을 했다.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대세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대세 트렌드를 쫓았다. 때문에 당장에 시청율이 나오는 포맷이 있으면 따라하기 열풍이 불어 댄 이유였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행태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당장에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곧 수그러들고 곧 다른 소재나 아이템을 찾아 이동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시청자들에게 다양하게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으니까 보는 방송 프로그램을 양산했고, 시청자들이 다른 멀티미디어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시청자를 하나의 범주로 보지 않고 다양한 기호를 가진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보았다. 시청자들의 취향과 기호를 다양하게 반영하려면 특정하여 접근하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때문에 시청률이 초기에 저조했지만 다양한 실험을 통해 점차 무한도전의 팬들을 넓혀갔기 때문에 긴꼬리 전략 즉 롱테일 전략이었다.

   
▲ 무한도전. ⓒ MBC
 

여기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무한도전’의 절대시간이다. 무한도전과 같은 프로그램도 초기에는 많인 시행착오를 거쳤다. 말 그대로 무한한 좌충우돌처럼 보였고 수시로 프로그램 이름까지도 바뀌었다. 평가도 극단적이었다. 그럴수록 멤버들은 필사적이었다. 다행히 그들에는 생존을 위한 자율의지가 주어졌다. 그만큼 낯설고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는 에펠탑 효과처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데는 반복되는 노출로 인한 각인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방송환경 속에서는 더욱 무한도전과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기 힘들어졌다. 일단 파일럿 프로그램 단계에서 걸려지고 파일럿 단계를 벗어났어도 몇달안에 곧 폐지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매체는 과거보다 더 많아졌고, 서로 경쟁을 넘어서 쫓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거꾸로 ‘무한도전’ 10년의 존재감은 방송환경의 열악함을 거꾸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절대 시간을 통해서 확보하려한 것은 많은 사람들(높은 시청률)이라기보다는 핵심 팬들이었다. 많은 것을 손에 쥐려고 하다가 하나도 못쥐는 원숭이 역설의 반대로 향한 선택이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잡는 것이 오히려 많은 것을 잡을 수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이는 마니아 마케팅 효과라고 볼 수 있었다. 충성도가 높은 핵심층을 강력하게 구축하고, 조금씩 외연을 확장시킨 것은 페이스북이나 애플사의 전략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시장을 구축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나중에는 전영역을 포괄하는 형태로 진화해갔고 이는 아마존이나 이베이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무한도전’은 콘텐츠의 수원지로 존재했다. 많은 영역에 물줄기가 되었다. 그러나 수원지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등장하지는 않았다. 썩은 물을 비집고 들어서야 했기 때문이다. 토크쇼 일색의 예능 프로에서 그것은 실험이자, 충격이었다. 무한도전은 리얼버라이티를 본격적으로 자리잡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1박 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그리고 ‘남자의 자격’이 탄생할 수 있었다. 한국식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대한 확증을 무한도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후 관찰예능이라는 방식도 리얼버라이어티에서 가지치기를 할 수 있었다.

‘무한도전’은 스필오버 효과를 통해 부가콘텐츠 경제를 만들어냈다. 다른 방송 프로그램들이 대체적으로 높은 시청율을 통해 광고판매 단가를 높이는 역할에만 그쳤거나, 해당 콘텐츠의 수출을 낳았다면, ‘무한도전’은 다른 파생 콘텐츠를 낳았다. ‘무한도전’ 캐릭터 콘텐츠의 경제적 이익을 크개 낳았다. 또한 그 돈으로 사회기부나 사회적 캠페인, 인식 제고를 하는 등 보이지 않는 경제적 효과에 이바지 하기도 했다. 다른 방송 포맷을 만들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음반산업계와 충돌이 있기는 했지만, 무도 가요제를 음원 시장에도 독자적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토토가를 통해 이미 활동이 소강상태에 있는 가수들의 활발한 활동을 불러 일으켰다. 90년대 노래와 가수에 대한 주목을 낳았고 경제적 파생효과 까지 낳았다. ‘무한도전’은 그동안 수많은 소재와 아이템 설정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의 파생 혹은 인큐베이팅 혹은 플랫폼 역할을 했다.

   
▲ 무한도전. ⓒ MBC
 

우리 사회에 도전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했다. 도전이 갈수록 제한되는 사회적 구조 경제적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사람들의 욕구는 도전에 더 능동적이다. ‘무한도전’에서 평균 이하의 나이 많은 멤버들은 끊임없이 그리고 평소에 하고 싶은 것에 도전했다. 생각은 했지만 하지 못했던 것, 기회가 없던 것은 물론 자신이 꺼리는 것도 ‘무한도전’이라는 공동체 때문에 도전하면서 생각지 못하게 의외의 수확과 만족감을 주기도 했다. 자기 실현 욕구가 강한 시청자들에게 이런 도전의 감정이입의 요소가 충분하도록 했다. 특히, 다른 삶을 살고 싶은 강한 욕구가 강할수록 이러한 도전의 포맷은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이미 도전과는 관계없는 이들에게도 도전의 동기부여를 낳게 했다. 앞으로 새로운 분야나 공간은 얼마든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무한도전’은 주목을 여전히 낳을 수밖에 없었다.   

‘무한도전’은 기업이나 교육면에서도 창조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대개 방송제작은 기획에 사람에 맞춘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사람에게 기획을 맞춘다. 캐릭터 멤버들이 능히 잘 할수 있는 소재나 아이템, 설정을 적용하는 것이다. 제작자들은 항상 좋은 기획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획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최고의 예능 자원은 아니지만 ‘무한도전’의 틀 안에서 그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나 받을 수없기에 식스맨 같은 방식으로 호흡이 잘 맞을 만한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무도가 기획이나 포맷이 우선이 아닌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은 기업이나 교육에서도 생각해야할 점이다. 구성원들이 잘할 수 있는 것, 그들이 협력을 통해 좀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 이미 있는 틀에 구성원을 끼워맞추는 방식은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일선 조직에서는 뛰어난 사람들만 구성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물만 나오지 않는다. 분야의 스타들만 모아놓은 드림팀은 그렇지 않은 결과를 낳고 경상비나 인력비만 많이 치를 수있다.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이제 스스로 자신들의 생명력을 갖고 스스로 동력을 갖고 움직인다. 수평적이고 참여지향적인 콜라보레이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무한도전’의 10년이 또다른 10년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가 없다. 10년의 무게는 그렇게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의 성과가 이어지려면, ‘무한도전’에 대한 시선은 가벼워져야 한다.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구설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심의통제도 여전할 것이다. 지난 10년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듯이 말이다. 그것을 잘 돌파한 것 그이상의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업적의 무게가 눈덩이처럼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무한도전에게만 가혹한 잣대가 적용되기도 한다. 애써 무한도전의 정신을 말한다면, 주목받지 않는 것을 주목받게 하는 것이며 평균이하를 평균이상으로 만드는 것이었고,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대상을 가치있게 만들어주었다. 지금이야 병맛을 B급 코드라고 하지만 ‘무한도전’의 초창기에는 B급 코드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한도전’을 그러한 평가범주에서 접근하지 않는다. 이는 ‘무한도전’에 대한 부감감이 매우 크다는 것도 거꾸로 말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평균 이하의 비주류 정신을 계속 유지할 때, 무한정신을 계속 방송 나아가 사회의 중심에 있게 할 무도정신이다. 유재석의 말대로 언제든지 내려갈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내려가려해도 오히려 내려갈 수가 없겠다. 이제 새로운 멤버 광희가 충원되어 유지되어야 할 일이겠지만,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무도 구성원의 전체 미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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