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소설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소설이 담긴 책은 방 한 귀퉁이에 한참을 놓여 있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5월은 다가오고 나는 이 소설을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 소설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이다. "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 광주학살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에는 항쟁의 열흘 동안 죽어 혼령이 된 소년들, 살아남았으나 죄책감과 고문 등으로 평생을 만신창이가 돼 산 사람들, 중학생 아들을 진압군에게 잃은 어머니가 등장하고 이들의 독백 혹은 고백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광주학살에 대해 적지 않은 정보, 학살의 잔혹함과 살육의 무차별성을 포함해, 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도 이 소설을 읽는 시간들은 무참했다. 국군이 자국민을 어떻게 죽이고, 고문하고, 취급했는지가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돼 있었기 때문이다. 곤봉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때려죽이는 진압군, 도청 앞 집단발포와 뒤이은 저격수의 저격으로 벌집이 된 시민들, 확인사살을 자행하는 진압군, 구더기에 점령된 시체들, 짐승의 시간이라 불러야 할 체포와 고문의 시간들, 방사능에 피폭된 것처럼 시름시름 앓다 죽어가는 체포 및 고문의 피해자들.

흡사 거대한 기계 같은 국가폭력은 피와 시신과 통곡의 바다를 낳았다. 잠깐의 해방구와 도청에서의 최후. 죽은 자들은 침묵하고 살아 남은 자들은 부끄러워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화목했고 안온했던 광주시민들의 삶은 산산조각났다. 조각난 거울을 원상대로 만들 수 없듯이 광주시민들의 삶도 그러하다.

그러나 광주가 패배의 도시로만 머물렀다면 6월 항쟁도, 87년 체제도, 그리하여 현재도 없었을 것이다. 광주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인간의 존엄이 무엇이며, 인간의 존엄이 죽음보다 강한 것이라는 걸 증명했다. 그리하여 광주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사회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예컨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아래의 진술은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나게 만든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광주는 압도적 무력 앞에 굴복했다. 하지만 최후를 알면서도 도청에 끝까지 남아 항거한 사람들의 숭고한 결단과 희생 덕분에 광주는 패배하지 않았다. 희생자의 자리를 스스로 택해 결국은 희생자가 되지 않았던, 악마 같은 가해자들을 오히려 패배자로 만든 시민군의 결단이 우리가 언제나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자리다. 작가는 도청에서의 최후를 이렇게 풀이한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나는 당신이 이 소설을 읽길 간절히 바란다. 단언컨대 이 소설은 당신의 가슴을 찢고 당신의 심장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길 것이다. 상처난 당신의 심장에서는 피가 흐를 것이다. 그 찢김과 상처와 피흘림 없이 우리는 한 치도 나아갈 수 없고, 나아질 수 없다. 그 찢김과 상처와 피흘림을 통해 우리는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힘으로 세월호가 제2의 광주가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해야 한다. 작가의 말처럼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의 다른 이름이 광주"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