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러나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정치자금 전반’에 걸쳐 수사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등 수사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기관보고에 출석해 “정치권에서 오가는 불법정치자금 전반에 대해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에 대한 수사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는 서기호 정의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장관이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황 장관은 “8명에 대한 메모가 있기에 (이 메모가) 출발점이지만, 검찰이 특정인이 기재한 특정인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자금 전반에 대해 확보할 수 있는 자료를 토대로 여러 가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기호 의원은 “메모를 왜 만들었겠나. 8명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차원 아니겠나”라며 “그렇다면 정치자금 전반에 관해 수사를 확대할 것이 아니라 8명에 대한 수사를 최우선적으로 신속하게 하겠다고 말해야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황 장관은 “물론 1차적으로는 그렇다”면서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다고 하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수사 범위를 책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황 장관의 인식은 이완구 총리의 인식과도 궤를 같이 한다. 이완구 총리는 15일 대정부질의에서 “대단히 복잡하고 광범위한 수사가 될 것”이라며 “고인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연루된 8명을 중심으로 소환 조사하면 횡령·배임을 했는지 후원금을 누구에게 얼마를 줬는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앞서 14일 대정부질의에서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말했다. 검찰을 압박하는 수사 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현직 총리가 목숨을 건다며 (의혹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는데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 지난 16일 국회 본회의 교육·사회·문화에 관한 대정부질문에서 이완구 국무총리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질의와 답변 과정을 바라보며 물을 마시고 있다. ⓒ 노컷뉴스

 

 

광범위한 수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검찰이 아니라 언론에서 나왔다. 조선일보는 17일자 1면 기사에서 “성완종 리스트를 수사 중인 특별수사팀은 숨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여야 유력 정치인 14명에서 불법 자금을 제공한 내역을 담은 로비 장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야당 정치인 7~8명에게도 금품을 준 내역이 담겨있다며 새정치민주연합 중진인 ‘C' 의원과 ’K' 의원을 거론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보도에 나온 자료는 현재까지 수사팀이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물타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정우 새정치연합 부대변인은 18일 “갑자기 여야 똑같이 돈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검찰은 수사 중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한다”며 “검찰은 가이드라인에 신경쓰지 말고 철저한 수사로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역으로 야당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권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은 18일 “새정치민주연합은 리스트가 공개되자마자 성완종 사건을 ‘친박 게이트’로 지칭하기로 결정했다. 야당이 역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수사 대상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C'의원으로 지목된 추미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조선일보는 저나 의원실에 사전에 그 어떠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았다. 저는 성완종 전 회장과 어떠한 인연도 없다”며 조선일보를 고소했다. 

문제는 언론보도를 통해 불법 금품수수와 합법적인 후원금 등이 구별되지 않고 혼용된 채 여야 정치인들의 이름이 마구잡이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 전 회장과 연관성이 제기된 박수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충남 공주)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법적인 후원금과 그들의 돈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해명했다. 성 전 회장으로부터 후원자를 소개받아 이들이 각각 200만원, 300만원을 후원했고 영수증을 발급받아 선거관리위원회에 회계보고까지 마친 사안이라는 것.

박원순 서울시장의 이름도 등장했다. 박 시장이 성 전 회장의 자서전에 추천사를 썼다는 사실, 박 시장이 아름다운가게 상임이사를 맡고 있던 시절 아름다운가게가 성동구 용답되살림터를 리모델링했는데 이 때 경남기업이 2억 원을 지원했다는 사실 등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브리핑을 통해 “박 시장과 성 전 회장의 관계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불법 대선자금과 후원금, 지원금은 질적으로 다른 사안이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며 “전혀 상관없는 내용 가지고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물타기”라고 지적했다. 

야당 의원의 등장으로 수사 대상이 넓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이완구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드러난 정황이 가장 구체적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이 총리와 홍 지사에게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과 연관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총리의 사퇴가 자칫 ‘꼬리 자르기’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일 명단에 오른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1박 2일로 출국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검찰 수사가 허술하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은 리스트에 오르자 처음에는 “황당무계한 허위”라고 반박했으나 이후 재임 시절 성 전 회장과 만나고 지난해부터 40차례 통화한 사실이 알려졌다. 

박완주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 “메모에 이름이 오른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과 허태열,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박근혜정부의 권력 3인방’과 2012년 대선캠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홍문종 의원,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유정복 인천시장, 당 사무총장 겸 당무조정본부장으로 일했던 서병수 부산시장 등 ‘박근혜후보캠프 3인방’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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