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 고위관계자들이 글로벌 경제위기가 사실상 시작된 2008년 이후 스톡옵션을 통해 수백억대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밝혀졌다. 미디어오늘이 CBSi-더스쿠프와 공동 취재해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된 ‘포스코 임원보수내역’을 분석한 결과, 권오준 회장과 정준양 전 회장, 이구택 전 회장은 물론 김진일·이동희·최종태를 비롯한 전현직 대표이사 사장 등 포스코 고위관계자 33명은 2008년 이후 스톡옵션을 행사해 829억원에 달하는 보너스를 챙겼다.

이들 33명이 스톡옵션 차익금을 실현한 2008~2012년은 영업이익률이 17.1%에서 5.7%로 크게 떨어지는 등 ‘포스코의 암흑기’로 불리는 기간이다. 정준양 전 회장이 취임한 2009년 2월 본격화한 M&A 전략이 사실상 실패해 국제신용등급이 휘청인 것도 이 무렵이다. 포스코가 사상 최악의 위기에 몰리고 있을 때, 회사 고위층은 ‘스톡옵션 잔치’를 벌렸다는 것이다. 정준양 전 회장은 2004년 7월 23일 부여받은 스톡옵션 4900주를 2009년말에 행사해 22억8400만여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2008년 이전에 행사한 스톡옵션을 포함하면 정 전 회장은 총 50억여원의 차익을 챙겼다.

   
포스코 전현직 임원들 스톡옵션 행사 리스트.
 

‘정준양호 1기’에서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던 이동희 전 대우인터내셔널 부회장, 최종태 전 포스코 부회장은 각각 18억7700만여원, 9억8300만여원의 스톡옵션 보너스를 챙겼다. 2009년 등기임원 허남석 전 부사장과 정길수 전 부사장은 각각 6억6600만여원, 34억6700만여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2012년 등기임원 조뇌화 전 부사장도 16억8600여만원의 보너스를 스톡옵션을 통해 챙겼다.

정 전 회장 직전 포스코 수장이었던 이구택 전 회장은 2008년 이후 186억여원의 스톡옵션 차익을 실현했는데, 자신의 스톡옵션(279억여원) 중 67%를 2008년 이후 실현했다. 윤석만 전 포스코 사장(2009년 상근 상임이사)도 2008년 이후 52억4700만여원에 이르는 차익을 챙겼다. 2014년 3월 포스코의 새로운 수장에 오른 권오준 회장도 2003년 4월 26일 부여받은 스톡옵션 중 3000주와 1000주를 2008년 3월말, 2009년 6월말 행사해 14억3900만여원의 보너스를 챙겼다. 그전에 받은 스톡옵션을 모두 합치면 30억원이 훌쩍 넘는 차익을 실현했다. ‘권오준 체제’의 핵심인 김진일 대표이사 사장도 총 13억원의 스톡옵션 차익금 중 7500만여원을 2008년 이후 챙겼다.

   
포스코 실적 추이.
 

등기임원만이 아니다. 황태현 포스코건설 사장(6억6900만여원), 김상영 전 포스코 홍보실장(30억3200만여원), 김동진 전 포스코 베이징법인 사장(36억1700만여원) 등 수많은 포스코 전현직 고위층이 수억~수십억원대 차익을 실현했다. 검찰이 수사 중인 ‘포스코건설 베트남 비자금’의 종착역으로 지목된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도 2008년 이후 스톡옵션을 통해 18억7700만여원를 챙겼다.

   
포스코 계열사 수 추이.
 

스톡옵션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주식매수선택권’이다. 실적을 낼수록 이익이 커지기 때문에 스톡옵션을 받은 임직원 대부분은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회사 실적이 나쁠 때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특정 임직원을 향한 정서적 반감이 생길 수 있다. 포스코 고위층이 2008년 이후 행사한 스톡옵션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구나 포스코의 스톡옵션은 2001년 도입 이후 크고 작은 논란에 시달렸다. 포스코 주가를 끌어올린 주역 가운데 ‘포항지역 시민’이 있어, 더욱 그랬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2008년 매일신문과의 특별인터뷰에서 “포스코 40년 역사에서 ‘국민기업 포스코’의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사건은 스톡옵션 도입”이라며 “포스코에 아직도 스톡옵션 도입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임원이 있다면 당장 자기 발로 사라져야 한다”고 포스코의 스톡옵션 제도를 비판한 적 있다.

숱한 논란에 포스코는 2006년 2월 스톡옵션 제도를 공식 폐지했다. 하지만 말이 폐지이지, 포스코 고위층은 ‘스톡옵션 파티’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들이 받은 스톡옵션을 제도 폐지 후에도 끝까지 행사한 거다. 포스코 고위층이 챙긴 스톡옵션 차익금 1689억여원 중 2006년 이후 행사된 금액은 1592억여원으로, 전체의 94%에 달한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연합 경제정택팀장은 “포스코는 2007~2011년 무분별한 사업다각화와 M&A로 재무구조와 사업성이 크게 악화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회사 고위층이 제 주머니 챙기기에 급급했다는 건 경영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포스코의 돈잔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포스코는 스톡옵션을 폐지한지 딱 1년 만인 2007년 1월 또 다른 인센티브 제도를 만들었다. 기본연봉의 300% 한도 내에서 지급하는 ‘장기인센티브’ 제도였다. 경영실적에 따라 연 2회 지급하는 성과연봉, 대내외 활동을 위해 역할별로 차등지급하는 활동수당과는 다른 인센티브 제도였다.

   
포스코 스톡옵션 행사 추이.
 

이 제도에 따라 정준양 전 회장은 2010~2012년 발생한 인센티브 5억6800만원을 2014년에 받았다. 올해와 내년엔 각각 4억5500만원, 1억1200만원이 더 지급된다. 박기홍 전 사장, 김준식 전 사장도 지난해 각각 2억9400만원(인센티브 발생시기 2012~2013년), 2억8800만원(2012~2013년 발생)을 수령했다. 두 사람은 내년까지 각각 2억9400만원, 2억8800만원을 더 받는다. 김응규 전 부사장은 지난해 1억7600만원(2010~2012년 발생)의 인센티브를 받았고, 올해와 내년에 각각 6800만원씩을 더 수령한다. 포스코 측은 “주가변동률·투자자본순이익률(ROI)·자기자본이익률(ROE)로 구성된 정량평가와 정성평가결과를 종합해 인센티브 금액을 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센티브가 발생한 2010~2013년은 앞서 언급했듯 포스코의 실적이 가장 신통치 않았던 시기다. 영업이익이 2010년 5조7383억원에서 2013년 2조9961억원으로 추락했을 정도다. 그룹 실적이 바닥으로 추락했음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장기인센티브가 지급됐다는 얘기다. 다음 수혜자는 권오준 회장을 비롯한 김진일 사장, 장인환 부사장, 윤동준 부사장, 이영훈 부사장 등 등기임원이 될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기업이 어려울 때 스톡옵션과 장기인센티브 제도로 배를 불린 경영진보다 이런 보상이 가능하게 만든 보수체계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정환 기자
CBSi더스쿠프 이윤찬·강서구 기자

더스쿠프 기사 원문. http://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777

 

포스코 인수합병 비리, 언론은 이미 2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구조적인 비리,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기사들… 기업 감시 보도의 한계

지난 2013년 12월, 포스코가 매일경제에 실린 포스코 기사가 사라진 적 있었다. 온라인에 실린 기사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건 일상적이지만 이 기사는 간단한 기사가 아니었다. 12월3일, 매일경제가 보도한 “포스코ICT, 삼창기업 특혜인수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가판에는 실렸다가 다음날 아침 배달판에서는 빠졌다. 포스코의 자회사 포스코ICT가 삼창기업의 기업가치를 세 배 가까이 부풀려 비싸게 사들였다는 내용이었다.

미디어오늘이 제보를 받고 확인한 결과 기사를 쓴 기자는 “일부 팩트가 잘못된 부분이 있어 기사가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팩트가 어떻게 잘못 됐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삼창기업 관련 의혹은 이미 기자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였는데 포스코는 유독 이 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취재 결과 다른 한 일간지의 기자는 포스코 관계자가 “기사는 양껏 쓰시되 모회사 이름은 빼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이 삼창기업이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자원외교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이 포스코의 인수합병 의혹으로 수사방향을 틀면서 삼창기업과 성진지오텍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삼창기업 이두철 회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고가 매입 의혹이 있는 또 다른 기업 성진지오텍의 전정도 회장은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박 전 차관이 정준양 전 회장이 포스코 회장이 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고 이 때문에 전 회장의 지분을 턱없이 비싸게 인수한 것 아니냐는 게 검찰이 파헤치고 있는 의혹이다. 만약 1년 반 전 매일경제 기자가 삼창기업 의혹을 좀 더 깊이 파고 들었다면 엄청난 특종을 했을지도 모른다. 매일경제 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과 방송도 마찬가지고 미디어오늘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자 입장에서도 포스코처럼 약점이 많은 기업이라도 거대 광고주를 건드리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 된다. 기업 내부 취재가 차단돼 있는 데다 실제로 검찰이 움직이지 않으면 기사를 쓴다고 해도 반향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드러난 포스코 인수합병 비리 의혹도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표적 수사 과정에서 튀어나온 성격이 짙다. 사건이 터지면 쓰지만 언론의 기업 감시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