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A의 입장.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돈을 융통하고 움직일 수 있는 핀테크 사업을 기획해 왔는데 온갖 규제 때문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하다못해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라도 없어질 것이라 좋아했는데, 이제 아예 설치파일을 깔라고 한다. 규제가 조금씩 해소되어도, 환경은 좀처럼 변할 줄 모른다.”

B의 입장. “불법 사금융 및 대부업이 서민 일상에 끼치는 영향을 국민들은 잘 모른다. 세상에는 합리적인 경제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정글이 되어 버리는 곳이 사회다. 핀테크도 이 시각에서 봐야 한다. 금융이 갖게 된 ‘신용창조’라는 특권, 정부가 양보한 것이다. 이를 국민들은 쉽게 잊는다. IT면 다라 생각하는가?”

사례2.

A의 입장. “글로벌 택시앱이 국내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더욱 친절한 배송 서비스를 위해 물류 프로세스를 개선했더니 국토부에서 호출이 들어 왔다. 일부 불법이라는 유권해석이다. 이래서야 O2O라는 새로운 조류가 어디 성립이라도 하겠는가?”

B의 시각. “우리 아버지가 개인택시면허를 따던 날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여전히 고생스럽지만 이제 생활의 안정을 찾나 싶었다. IT를 빙자한 불법 콜택시는 용납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가용 화물차로 배송을 하려는 온라인 기업도 사회의 기강과 안전을 훼손한다 생각한다. ‘나라시’와 ‘콜뛰기’는 안 되는데 앱으로 하면 왜 된다 주장하는가? IT면 다인가?”

   
 
 

평온한 일상에 교란이 시작되고 있다. 종래의 인터넷에는 접속이라는 행위적 구분이 있기에, 분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라는 요물이 등장한 후, 현실은 인터넷과 뒤엉켜버렸다.

여러분은 A인가? B인가? 당사자로서의 사정은 늘 타협을 힘들게 한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 갈등의 교착상태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

교란에 의해 1000만명이 득을 보고 그 이익을 환산하면 1조원이 된다고 하자, 한편 이 교란에 의한 손실을 입는 이가 1만명이 있고, 그 손실액이 1천억원이라고 하자. 이 경우 9천억원의 사회적 순익이 생기므로 이 변화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이 정도로 명백한 차이가 발생해도 변혁은 쉽게 성취되지 않는다.

교란 덕에 1조원의 이익이 발생해 1000만명이 골고루 혜택을 보더라도 10만원 어치의 혜택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살아왔다. 반면 교란에 의한 손실은 소수에게 집중하여 돌아가므로 1인당 천만원의 손해를 끼친다. 인간 본연의 손실회피 성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느낄 억울함은 절대액수만으로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소수에게 집중된 억울함은 이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하게 할 인센티브를 준다. 정치권에 로비를 하거나 정부에 소원하는 등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왜냐하면 기존 질서의 유지가 바로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결속된 ‘정의’는 정치권에게는 지지기반이 되고, 정부에게는 자기 부서의 존재의미가 된다.

반면 IT는 코드의 힘에 의해 사회적 의사결정을 조종한다. 어어, 하는 사이에 소비자와 사용자를 등에 업고 현존 질서를 유린해 버리는 것이다. 사회적 과제란 소비자의 갈증과 가려움으로 나타난다고 굳게 믿는다. 그 니즈를 해소하여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것, 이것이 그들의 ‘정의’인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의 생활과 직장마다 교란은 시작될 것이다. 이 때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지 시험받게 될 것이다. 각각의 상황마다 우리는 A가 되기도 B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줏대없음에 아마도 놀라고 말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일상 속에서 말이다.

사례3.

A의 입장. “그룹채팅으로 학부모 모임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일단 그룹으로 모아만 두면 전달 내용을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누가 안 읽었는지도 금방 확인할 수 있고, 다른 의견도 쉽게 취합할 수 있을 것 같다.”

   

▲ 김국현 IT 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B의 입장. “친구들이 만들어 놓은 속칭 ‘단톡방’. 스트레스다. 빠져 나가면 왕따가 될 것이 뻔하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람, 배터리는 줄어간다. 지워버릴까 고민해 보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 굴레는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살 것 같다. 새 폰이 가지고 싶다.”

미래는 좋은 곳일까? 아니면 현재야말로 지켜내야 하는 곳일까? 그리고 그 결정을 시장이나 정부에 맡겨도 좋은가? 나의 정의란 강요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문제가 되면 보수적이 된다. 이를 인정할 용기와 지혜가 있을까? 우리가 변화 앞에서 방황하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이 중 어떤 질문에도 확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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