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인이 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직전 경향신문 인터뷰와 소지했던 메모지 기재 내용에서 나온 ‘성완종 리스트’로 촉발된 정국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국민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방송 뉴스와 신문 정치·사회면의 대부분은 ‘성완종 리스트’ 관련 내용입니다. 그 관련 내용에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성완종 전 회장이 밝힌 ‘의리’와 관련한 것입니다. 자신이 받고 있는 수사와 관련하여 한 도움(?) 요청과 관련하여 ‘의리’있는 사람과 ‘의리’없는 사람을 구분하면서 의리없다고 본 유력 정치인들을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그 ‘의리’는 성완종 전 회장과 유력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매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서는 ‘의리’를 저버리면 상대방에 대한 ‘배신’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리’가 우리 사회에는 어떤 의미일까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돈과 권력에 기대어 사회의 도덕과 법을 무시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것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그들만의 ‘의리’가 아니겠습니까. ‘의리’의 정도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부에서 성완종 전 회장이 의리있다고 한 정치인들을 마냥 두둔하거나 좋게 평가하는 것을 국민이 불편해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국내 프로야구 KBO리그 ‘한화 대 롯데’ 경기에서 발생한 빈볼 사건과 관련하여 이른바 ‘불문율’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지난 12일 경기에서 한화 투수 이동걸이 5회말 롯데 타자 황재균 선수에게 고의성의 빈볼을 던져 KBO로부터 제재를 받았습니다. 이번 논란은 빈볼의 원인으로 알려진 황재균 선수가 전 게임에서 롯데가 8-2로 앞선 6회말 2루타를 친 뒤 3루 도루를 하고 12일 경기에서도 롯데가 1회말 7-0을 앞선 상황에서 또다시 도루를 한 행위가 야구에서의 ‘큰 점수로 앞선 상황에선 도루 금지’라는 ‘불문율’을 어긴 것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동걸 선수에 대해선 빈볼 책임을 면제할 순 없지만 이와 별개로 황재균 선수가 불문율을 어긴 것이라면 황재균 선수에게도 불문율 위반의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스포츠가 본질적으로 ‘룰’에 의해서 진행되는 게임이지만 국가·사회의 법이 모든 사안을 담을 수 없듯이 스포츠 ‘룰’도 경기에서의 모든 사안을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성문법 국가도 성문법 이외에 판례와 정의관념에 기초한 법원칙들인 불문법이 법적 판단의 기준이 되듯이 스포츠에서도 ‘룰’에 규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불문율’이라는 이름의 원칙이 선수 등 경기에 참가하는 모두에게 그 준수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불문율을 지키지 않은 선수는 관중과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하고 불문율을 어기면서 얻은 승리 내지 결과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 지난 12일 한화-롯데전 벤치 클리어링 장면. ⓒ노컷뉴스
 

여기서 불문율이 모두에게 강제할 수 있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문법의 성립 요건 중의 하나가 상당기간 관행이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기준이마련되어야 하고 이를 준수하기로 하는 구성원의 합의가 있다고 인정될 정도에 이르러야 되는 것입니다. 스포츠에서의 ‘불문율’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스포츠 불문율이 하나의 ‘룰’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에 대해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나 지도자, 심판들 사이에 적어도 묵시적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선수에 따라, 심판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진다면 단지 다른 행위를 하였다고 비난받는 ‘룰’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롯데 황재균 선수 도루와 같이 자신의 팀이 점수를 리드한 상황에서 도루를 금지하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하려면 최소한 점수차에 관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이에 관한 선수, 지도자 사이에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스포츠에서의 ‘불문율’을 이야기 할 때 관중, 시청자 또는 팬들의 입장과 생각을 도외시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팬들이 공감하지 못하거나 객관적으로 팬들이 스포츠를 바라보는 가치를 훼손한다면 이를 거론하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스포츠는 본질이 경쟁입니다. 승부의 우연성, 불예측성이 스포츠의 매력입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스포츠입니다. 선수와 지도자는 마지막까지 승리를 위해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야구도 ‘9회말 2사’ 후입니다. ‘큰’이라는 기준이 모호한 점수차이에선 도루를 하지 말아야 하고, 도루가 비난 받는 것이라면 공격하는 팀이나 수비하는 팀은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말과 같고 대충 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축구에선 상대방 선수일지라도 부상 등으로 쓰러지면 공을 아웃시킨다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이는 선수 뿐 아니라 관중, 팬들도 모두 공감하고 합의한 ‘룰’입니다. 1회에서 ‘좀’ 점수차가 났다고 도루하는 것에 대해 옳다 그르다 하면서 ‘불문율’을 거론하는 것은 프로야구 팬의 입장에선 불편합니다. 그럴바엔 차라리 콜드게임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필/자/소/개>
필자는 운동선수 출신의 변호사이다. 개인적‧직업적으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우리 스포츠‧엔터테인먼트‧문화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제도적 발전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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