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녹음파일 보도를 둘러싼 경향신문과 jtbc의 대립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신뢰받는 방송, jtbc와 신뢰받는 신문, 경향의 대립은 양측 모두 일정부분 당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매체만 보는 사람들은 한쪽편의 주장에 경도되기 쉽다.

성완종 녹음파일 보도내용이 국정마비를 불러올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정치계를 흔들고 있기 때문에 어느 언론에서 어떻게 보도하든 그것은 별 대중적 주목을 받지못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계 내부에서는 언론윤리준수 여부, 동업자간 상도의 차원에서 분명히 따지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복잡한 내용을 좀 단순화 하자면, 종합편성채널 jtbc가 경향신문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인터뷰 녹음파일을 무단으로 방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향신문은 jtbc가 언론윤리를 위반했다며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중요한 과정은 이렇다. 경향신문은 유족 동의를 받고 성완종 인터뷰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했다. 고인의 육성 녹음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유족 의사에 따라 16일자 신문에 녹취록만 게재하기로 했다. 그런데 녹음파일 제출 과정에 동석했던 디지털포렌식(증거 추출) 전문가 김인성씨가 몰래 파일을 확보해 jtbc 기자에게 넘겨줬다고 한다. 경향신문 편집국장과 성 전 회장의 장남은 jtbc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방영 중단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jtbc는 이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이다.

이에 대해 jtbc 보도부문 사장이기도 한 손석희 <뉴스룸> 앵커는 “경향신문과는 상관없이 다른 곳에서 입수했다”며 “전량을 전해드려 실체에 접근해보려 한다. 시민의 알 권리와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기까지가 녹음파일을 단독 취재,보도한 경향신문과 이 파일을 입수한 jtbc의 대략적인 갈등과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jtbc는 세가지 관점에서 스스로 논란을 만들었다. 법적 다툼의 소지는 따로 논의하더라도 적어도 언론윤리 차원에서 jtbc는 경향신문에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녹음파일을 보도하면서 크레딧을 명시하지않았다는 점이다.

언론사간에 녹음이나 사진, 동영상 등 자료를 이용하면서 마치 자사 제작물로 둔갑시켜 보도하는 행태는 언론윤리 위반이다. jtbc의 녹음파일 입수가 비록 김인성씨의 선의에 따라 이뤄졌다하더라도 이는 엄연히 경향신문 취재물이다. 마치 학자가 논문을 작성하면서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않고서 자신의 연구물인 것처럼 내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jtbc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음성으로 들려주고자 했다는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크레딧을 밝히는 것은 별개의 윤리문제다. 경향신문의 특종을 음성의 형태로 방영한다고 해서 jtbc의 창작물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방송시작과 끝날 때까지 명시적으로 경향신문 녹음파일임을 jtbc 방송중에 자막으로 표시하는 것이 언론윤리강령 준수이자 동업자의 상도의에 맞다고 본다.

영국 BBC TV 제작 가이드 라인을 참고하여 만든 KBS 방송강령 제39항을 보면, “다른 매체의 자료와 영상을 표절하지 않으며, 다른 매체나 타인의 자료와 영상을 활용할 때는 그 출처를 명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출처를 밝히는 크레딧 명시는 언론사가 지켜야 할 필수사항이다.

   
손석희 JTBC뉴스룸 앵커(왼쪽)과 박래용 경향신문 편집국장.
 

두 번째, 경향신문에 사전 동의를 구하지않았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은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한 것이지 외부에 유출한 것이 아니다. 김씨가 중간에서 사실상 몰래 빼돌려 jtbc에 건넨 것이다. 구입경위도 논란거리지만 일단 녹음파일을 입수한 뒤 jtbc가 방송하기로 결정을 내렸다면 이 과정에서 경향신문에 동의를 구하거나 최소한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이것은 경향신문의 제작물로 경향신문 소유이기 때문이다. 김씨 손을 거쳐 jtbc에 왔다고 해서 갑자기 jtbc 제작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녹음형태로 유가족의 뜻에 반해서까지 보도하고자 했다면, 매체의 특성 차원에서도 경향신문에 사전동의는 필요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4월 16일 손석희 앵커가 뉴스를 내보낸 후 jtbc의 입장을 정리하여 클로징 멘트를 하는 순간까지도 경향신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었다.

‘공익적 판단, 알권리’ 등 jtbc의 녹음 파일 보도의 당위성을 정리하는 멘트를 내보는 가운데 경향신문에 대한 사과나 해명 등의 기회가 있었으나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였다. ‘경향신문과 상관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싶었기때문이겠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어떨까.

jtbc의 특종 녹취영상물을 경향신문이 입수하여 방송직전에 출처도 양해도 없이 보도했다면, 이는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일까. 언론자유를 존중하는 언론사 입장에서 법적 다툼으로 가는 것은 최악이다. 따라서 언론윤리 문제는 윤리로 풀어내야 한다.

경향신문의 값진 특종을 동업자가 스스로 존중하고 언론윤리를 지키는 것은 언론자유를 신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공영방송의 위상이 몰락한 현실에서 jtbc의 앵커, 손석희는 신뢰의 아이콘이 되고 있다. 열악한 취재환경에서도 꿋꿋이 특종을 만들고 정치계를 정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경향의 노력을 동업자 정신에서 멋지게 존중해줄 수는 없을까. 언론윤리가 법보다 우선한다는 점을 현실에서 목격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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