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유족과 실종자가족의 통곡 소리가 온 나라에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 박근혜와 정부가 어떻게 했기에 그들의 아픔이 아물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을까? 그가 이끄는 정부는 그동안 무능과 무책임, 도덕적 불감증으로 일관하면서 자녀와 형제를 잃은 유족과 실종자 가족의 피맺힌 호소를 외면했다.

지난 4월 2일 유족을 비롯한 52명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삭발을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거나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을 격분시킨 것은 바로 전날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사고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절차, 배상금 규모와 산정기준’이었다. 얼핏 보면 그것은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에 거액의 ‘돈벼락’을 안기는 특혜처럼 보였지만, 상당한 액수를 국민성금으로 채우겠다는 염치없는 대책이었다. 삭발을 하던 사람들 가운데서 특히 단원고 2학년 6반 ‘호성이 엄마’의 절규는 박근혜 정부를 향해 던지는 비수 같았다. “진실을 밝혀달라는데 그 돈 한 푼 주면서 옜다 먹어라라고 하는가. 니나 처먹어라. 나는 내 새끼 어떻게 갔는지 똑바로 알고 죽어야겠다.”

 

   
세월호 피해가족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과 진도 팽목항에서 단체 삭발을 했다. 사진=이하늬 기자
 


특히 유족들이 분노한 것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별조사위)’가 지난 2월 17일 보낸 시행령안(대통령령)을 정부가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바꿔서 발표한 일이었다. 참사에 책임을 져야할 해양수산부 관리들에게 조사를 맡기는가 하면 특별조사위 인원을 극도로 축소한 정부의 시행령안은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는커녕 당일 ‘의문의 행방불명 7시간’이라는 의혹에 휩싸였던 박근혜에 대한 조사조차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회를 통과한 시행령을 무력화하는 위헌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유족들은 참사 이후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이 배 유리창으로 보이는데도 왜 해경이 못 본척했는지, 선원들만 허겁지겁 탈출한 까닭은 무엇인지를 밝혀달라고 정부에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복잡한 원인이 결부된 ‘간접적 살인행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유족들에 대해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했고, 보수언론과 극우단체들은 그들이 “혈육의 죽음을 미끼로 거액의 돈을 받아내려고 날뛴다”는 투로 매도하기를 일삼았다.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직후 생중계되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뒤 그가 농성과 단식을 하는 세월호 유족들을 외면하면서 면담 요구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악어의 눈물’이었음을 입증했다. 적어도 세월호 참사에 관한 한 한국에는 ‘책임지는 정부’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최근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로 무정부 상태는 그 실체를 더욱 확연히 드러내게 되었다. 죽음의 길로 가기 직전 성완종이 경향신문 기자와 나눈 대화에서 총리 이완구에게 3천만원을 준 적이 있다고 증언한 것이 뜨거운 정치적 쟁점이 된 이래 무정부 상태는 극으로 치달았다. 대통령 박근혜는 ‘부정과 비리의 백화점’이라고 비난받던 그를 총리에 임명한 당사자인데도 그 엄청난 추문에 대해 단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다가 남미 순방을 떠나기 전날, 곧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바로 그날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를 했다.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의 ‘단호한 언명’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현직 총리 이완구를 포함해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김기춘과 허태열, 현직 비서실장인 이병기까지 의혹이 진실로 확인되면 모두 처벌하겠다는 뜻인가?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그들을 요직에 앉힌 자신은 국민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더욱 분개시킨 것은 박근혜가 16일 오전에 추모행사에 참여하고 바로 남미 4개국을 향해 무려 9박12일의 순방을 떠난다는 사실이었다.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은 애초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가 비판이 거세게 일자 허겁지겁 그 결정을 뒤엎었다. 그야말로 누가 이끌어가는 정부인지 알 수 없다.

박근혜가 남미 방문외교를 강행하는 것이 확실해지자 현 정권에 지극히 우호적인 중앙일보 4월 14일자에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칼럼이 실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9월 22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존에프케네디 공항에 도착,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정상외교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외국에 자주 나가는 것은 박수칠 일이지 시비 걸 일이 아니다. 문제는 명분이고 실적이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부은 곗돈 찾아먹듯이 악착같이 나가는 느낌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숫자놀음으로 성과를 과대포장해서도 안된다. (···)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이 이번에 만나게 되는 남미 4개국 정상 모두 국내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에서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오만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에서 산토스 대통령까지 한결같이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지지율이 추락 중이다. 한국도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는 날, 콜롬비아로 떠나는 박 대통령의 발걸음이 무거울 것 같다. 9박12일은 긴 시간이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자마자 당정청 협의를 거부했다. 4·29 재보선 참패를 부를 수도 있는 악재에서 벗어나자는 의도로 보인다. 총리 이완구는 국회에 불려가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온갖 변명을 했는데 대부분이 거짓으로 밝혀졌다. 명백한 ‘식물총리’가 된 그가 대통령의 방문외교 기간에 실질적으로 ‘직무대행’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그가 검찰에 소환되기라도 하면 박근혜 자신이 머나먼 나라에서 ‘국사’에 대해 일일이 방침과 지시를 내려야 할까? 제일야당 대표의 주장대로 ‘성완종 리스트’에 들어 있는 의혹의 당사자들이 직무에서 손을 뗀다면 박근혜 정부는 ‘뇌사 상태’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박근혜는 4월 16일 오전 참사 현장인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한 뒤 오후에 남미행 비행기에 올랐다. 차라리 그의 가슴에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라도 달려 있다면 국민들이 그의 외유를 ‘궁지에서 탈출하려는 행동’이라고 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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