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에 중남미 해외 순방 일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혀 비판을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낮 12시경 진도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정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과 늑장 인양 검토에 항의하는 뜻에서 철수해 사실상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이날 팽목항 방문 일정도 청와대가 비밀 작전을 펼치듯 알리지 않으면서 오히려 반감만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초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행사 참여 일정은 언론 보도 시점까지 알리지 않는 ‘엠바고’ 형태의 정보로 전날 SNS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해외 순방 일정을 공지하면서 "이번 순방 출국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와 겹쳐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1주기 행사와 관련된 일정을 고려하고 있다”며 “일정은 확정되는 대로 알려드리겠다"(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며 일정을 확정짓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일각에서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을 깜짝 방문하는 모습을 보이고 전향적인 세월호 인양 입장을 발표해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팽목항을 방문해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또한 "얼마 전 세월호 선체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발표가 있었다"며 "저는 이제 선체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숱한 인양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정부였지만 세월호 인양 기술검토 TF의 중간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인양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뒤 박근혜 대통령이 인양 검토 발언에서 한발 더 나아가 팽목항 현장에서 적극 인양 준비 입장을 밝힌 것이다.

박 대통령은 배보상 문제와 관련해서도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피해 배보상도 제때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전격적인 팽목항 방문과 대국민 담화문 발표에도 여론은 싸늘하다. 

박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을 예상한 세월호 유족은 진정성 없는 배경 그림 만들기에 불과하다며 팽목항에서 철수한 전해졌다.

앞서 이완구 국무총리도 안산 분향소를 전격 방문했지만 세월호 유족은 조문을 가로 막으면서 정부에 항의의 뜻을 전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정부에서 이미 기술적으로 인양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는데 인양 시기를 늦췄고 사실상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반발해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행사의 파국을 예고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팽목항을 방문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마음을 돌려세우기는 이미 늦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날 대국민 담화문에서 박 대통령이 "정부는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자 유족들은 지난 1년 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되묻는 등 반발의 목소리를 키웠다. 

   
▲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유기준 해수부 장관과 이야기 하고 있다. 박 대통령 이날 "빠른 시일내 선체인양 나설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특히 "이제는 가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이 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고통에서 벗어나셔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두고 진상 규명 의지를 꺾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진상 규명과 관련해 가족들은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주장하고 있는데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진상 규명과 관련해서는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민관 합동 진상 규명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여 곧 추가적인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을 뿐 수정 보완이나 폐기에 대한 뜻은 밝히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안전 국가 건설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할 수가 없다.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이 치유되어야 하고, 국민 모두가 함께 해야만 안전 문제가 획기적으로 달라질 수가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도 안전 의식이 체화되고 안전 문화가 생활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노력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한 것도 공허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안전 불감증이나 안전 문화 얘기가 얼마나 크게 와 닿을지 의문이다. 

야권에서도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에 싸늘한 반응을 내놨다.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수석대변인은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인양 문제는 당연한 것이고 시행령까지도 진상조사위원회 유족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며 "세월호 희생자 분들이 계시니 유족들과 국민들의 뜻을 모을 수 있는 추모의 날이 되어야하는데, 당연히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추모 행사가 됐어야 한다고 보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종민 정의당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유가족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국민들이 요구한 시행령 폐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인양에 나서야한다는 정도로 언급한 것은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월호 1주기를 맞는 담화로는 적절치 않았고, 매우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안산 분향소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사그러뜨리지 못했다. 

이날 오전 이완구 국무총리가 조문을 하지 못하고 쫓겨 나간데 이어 오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10여명이 분향소를 방문했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강하게 항의하면서 이들 역시 조문을 하지 못했다. 

항의하는 과정에서 희생자 가족들은 취재를 원하지 않는다며 기자수첩을 뺏는 등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 안 아무개씨는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문에 대해 "다 쓸데없는 이야기다. 시행령과 인양 관련해서는 '조속히' 단어가 들어간 게 끝이다. 시행령도 폐기까지는 말 못했는데 전면 수정이라고 말했어야했다"며 "인양한다고? 좋다. 그런데 언제 인양할거냐고. 특위 끝나고? 진상조사위 끝나고 인양되면 어떻게 할거냐. 조사기간이 18개월인데. 올 가을에 세월호 인양시작하면 특위 끝나고 인양되는 것"이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또다른 세월호 희생자 가족 김 아무개씨는 "배보상도 정해진 기한 내라고 말했다. 이게 6개월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게 뭐겠나. 자기들이 시키는대로 토달지 말고 (진상규명 없이)받아가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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