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봄바람에 휘날리는 벚꽃처럼 어지럽게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리스트 당사자들은 ‘정치생명을 걸겠다’ ‘한 푼도 받지않았다’ 등 펄쩍 뛰고 있다. 심지어 이완구 국무총리는 공개석상에서 ‘목숨까지 걸겠다’고 했다.

목숨건 국무총리의 비장함과는 대조적으로 네티즌들은 그와 현금전달에 이용된 것으로 보도된 ‘비타500’과 조합하며 패러디물로 조롱하고 있다. 별 친분관계도 없다던 이 총리의 해명이 언론의 보도로 하나씩 거짓말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직위가 위태롭다.

는 성 회장의 다이어리를 입수해 리스트 속 정치인들이 최근 20개월 동안 성 전 회장과 자주 만나왔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다이어리는 2013년 8월부터 2015년 3월까지 20개월 동안의 성 회장의 일정을 기록한 것으로, A4용지 1000여 장에 이르는 꼼꼼한 자료라고 한다.

   
지난달 28일 이완구 총리후보자가 일간지기자들과 점심을 먹으며 했다는 말 중 한 문구를 적은 피켓을 들고 있는 언론노조 조합원이 9일 오후 열린 언론노조 기자회견에 참석중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다이어리에서 성 회장이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은 이완구 국무총리로 이 기간 동안 23차례 만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총리는 그동안 성 전 회장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고 말해왔다. 이쯤되면 총리직의 품격과 신망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 총리는 "만약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제 목숨을 내놓겠다"면서 "저는 한 나라의 국무총리다. 어떤 증거라도 좋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사상초유의 현직 총리를 수사해야 하는 기막한 현실에 직면했다.

앞으로 이 문제는 어떻게 전개될까? 성 회장은 리스트를 남기고 왜 경향신문과 ‘전화유언’을 남긴 것일까?

먼저 이 총리는 향후 검찰수사와 무관하게 총리직 유지가 힘들어졌다. 수사없이 그의 결백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사결과 검찰에서 ‘결백하다’고 주장하게되면, 검찰도 총리도 신뢰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이 총리는 이제 시간과의 싸움, 여론과의 대치상황에 들어갔다.

그는 총리가 되는과정에도 너무 많은 흠결이 드러나 부적절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한 채 다시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 정당한 권위를 발휘하기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성 회장의 기록과 사진, 증언이 유령처럼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곧 이 총리는 총리직에서 물러난다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총리직 사퇴가 종착역이 아니고 불법선거자금 수사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여론과 언론이라는 두 개 의 변수가 있다.

언론은 대부분 이총리의 발언의 모순과 문제점을 지적하며 부정적으로 돌아섰다. 이와함께 여론도 이 총리가 목숨까지 걸었지만 믿으려고 하지않는 것 같다. 한때 기자들을 겁박했던 그가 이제 기자들에게 역공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성회장의 경향신문과의 전화유언은 이례적이다. 또한 ‘꼭 보도해달라’는 당부까지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극적이고 놀랍다. 어느 정치인, 기업인이 마지막 가는 길에 특정 언론사 기자와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하며 ‘보도’를 신신당부하였던가.

고인의 해명을 들을 수 없으니 드러난 정황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경향신문을 택한 것은 신뢰관계를 구축한 기자와의 평소 친분관계때문으로 보인다. 유언장을 남기는 것 외에 언론사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은밀하고도 불법적인 돈거래 내역을 밝히고 이를 보도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이유를 세 가지 정도로 유추해볼 수 있다.

우선, 배신감때문이었다. 한때 그렇게 가까운 사이로 정치자금까지 건네가며 선거를 도왔건만 자신이 정치적 위기에 처해 손을 내밀었을 때 소위 정치실세들은 하나같이 외면했다는 현실. 이런 인간적 배신감은 그를 절망에 빠트렸고 그를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두 번째는 억울함이다. 그가 돈을 건네며 도왔다는 정치인들은 박대통령의 비서실장들, 최측근들이다. 현정권 탄생에 일등공신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그가 현정권으로부터 비리수사대상1호가 됐다는 현실은 그를 분통터지게 만들었다. 배신감과 억울함에 기자회견도 열어보고 백방으로 구명을 호소했지만 결과는 신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끊는 마당에 더 이상 이들의 이중성까지 보호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이를 밝혀 정치현실을 고발하겠다는 의식이 강했던 것 같다. 오죽하며 야당 국회의원까지 만나 억울함과 답답함을 호소했겠는가.

마지막으로 표리부동함 때문이다. 성회장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기업인이다. 뒤늦게 정치판에 뛰어들었지만 자수성가한 인물로 장학사업 등 자신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곳에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들을 만나며 핵심실세들의 돈요구 등에 응하면서 그들의 민낯을 봤다. 그는 ‘이총리를 사정대상 1호’로 꼽을만큼 그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꼭 보도해달라’는 그의 유언은 족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자격없는 자들이 자신을 비리사범으로 몰고있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경향신문사와의 마지막 인터뷰는 그의 예상대로 한국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당장 이 총리는 좌불안석이 됐다. 박대통령도‘ 성역없는 수사’를 언급했지만 그 대상들이 모두 자신의 비서실장들을 비롯한 최측근들이다. 벚꽃처럼 한순간에 권력실세란 사람들도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흥분하겠지만 국민은 변하지않는 검은돈의 한국정치판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그것은 현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벚꽃과 함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판이 좀 더 정화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늘 기대난망이다. 목숨을 건 총리를 보는 한국의 정치판이 살벌하다. 신문의 존재감을 부각시킨 경향신문의 특종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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