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전자 투쟁은 정말이지 오래되었다. 오죽하면 군대 가기 전에 집회에 참석했던 대학생이 제대하고 나서도 여전히 싸우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조합원들도 자결 말고는 다 해봤다, 라고 털어놓았다. 지난 2008년 김소연, 유흥희 조합원이 94일간의 단식을 하며 무심하게 뜨거운 햇볕 아래 살아 있는 미이라처럼 말라 가는 모습을 보며 참담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소선 어머니가 편찮으신 몸을 이끌고 찾아와 극구 만류했지만 두 사람은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를 때가지 단식을 풀지 않았다. 2010년 말 드디어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뛸 듯이 반가웠다. 수차례의 교섭 결렬, 55일간의 점거파업과 구속, 다섯 번의 고공농성, 세 차례의 단식, 포클레인 농성, 농성장을 엉망으로 헤집어 놓던 경찰의 침탈, 국회의원 중재와 결렬, 잠정합의 파기 등 온갖 일을 다 겪은 다음 이루어진 합의였다. 그해 10월 31일 마침내 잠정합의안이 만들어졌고, 11월 1일 국회에서 정규직화 합의서에 서명할 수 있었다. 다음날 기륭전자 노사합의 소식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엄청나게 반가웠다. 드디어 뭐가 되는가 싶었다. 기륭전자 주식은 매일 상한가를 기록했고, 일주일 만에 두 배 이상 올랐다. 당시 배임 혐의로 형사고발이 되어 있던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은 노사 간 합의로 감옥살이를 면했다.

   
 
 

6년을 싸워 겨우 이겼다 싶었더니 아니었다. 2013년 12월 30일, 조합원들을 속이고 말 그대로 ‘날랐다’. 조합원들은 2년 6개월간 정규직 복직 약속을 믿고 기다렸지만 최동열 회장은 합의는 개나 주라는 식으로, 말 그대로 튀었다. 그토록 긴 싸움에서 이겼건만 돌아갈 직장이 사라졌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하지만 기륭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2005년 7월 5일 노동조합이 생겨났으니 10년째 싸움이다. 작년 12월에도 영하 10도의 날씨에 4일간 열 명의 조합원들이 오체투지를 감행했다. 이겼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현실, 수많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이 고공에 올라가야 하는 현실 앞에서 기륭 조합원들은 이제 기륭 투쟁을 법적 투쟁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고 한다. 싸움을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제도와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이다. ‘좋은 노예제도가 없듯이 좋은 비정규직 제도도 없다’라는 기륭 조합원들의 말은 가슴을 울린다. 비정규직, 정리해고 제도가 폐기되지 않고서는 국민은 행복하게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그들은, 단순한 복직 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 전체의 싸움을 떠맡은 셈이다.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빚진 기분이었다. 우리 모두가 싸워야 할 싸움을 그들의 가냘픈 어깨에 떠맡긴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느낌이 아니라 아마 사실일 것이다. 

   

▲ 김현진 에세이스트

 

 

아주 단순한 방법, 술을 마시기만 하면 되는 방법으로 그 부채를 조금이나마 갚을 방법이 생겼다. 광화문 세월호 집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유흥희 분회장과 마주쳤다. 4월 17일 금요일 후원주점이 열리니 꼭 오라는 당부를 받았다. 요즘 술 사먹을 돈이 없으니 몸으로 때워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럼 와서 서빙을 하라고 해서 그러마고 했다. 불타는 금요일, 어차피 마실 술이라면 이곳에 와서 마시는 게 어떨까. 원래 기륭전자 후원주점은 안주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즐겁게 술 마시면서 우리를 대신해 싸워준 그들을 응원할 수 있다면 쉽고 맛있고 신나는 방법이 아닐까. 17일 4시부터 11시까지 열리는 후원주점에서 이들의 10년간의 싸움을 응원해 주면 참 좋겠다. 회장은 야반도주했지만 우리는 그들의 편이라는 것을 술 마시는 것으로 알려 줄 수 있다면 참 간단하니 그럴 마음 있는 당신, 부디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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