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자금 제공 리스트 폭로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권에는 ‘판도라의 상자’나 다름없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박근혜 정부가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03년 안대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주도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차떼기’ 대선 자금 수사 때 못지않은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는 형국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제2의 차떼기’가 되는 것 아니냐”, “경제살리기는 끝이다”, “우리는 다 망했다. 식물정부가 될 판이다”는 등 한숨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번 파문과 별개로 박 대통령은 이미 ‘국정의 골든 타임’을 허송했을 뿐만 아니라 국정 운영의 기본과 철학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이른바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물 건너 간 지 오래다.

우리는 지난 3월 18일자 사설(제991호: 임계점 향해 돌진하는 박근혜 대통령)에서 “불법과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이지, 이른바 정국을 돌파할 카드로 악용하려는 것으로 드러나는 순간 부메랑이 되기 십상”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제 박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은커녕 ‘신변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빠질지 모른다. 이런 심각성을 깨달은 것인지, 박 대통령은 경향신문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단독인터뷰 내용을 처음 보도한 후 이틀만인 12일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비겁하다. ‘성역 없이 수사하라’가 아니라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말장난으로 들린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정치인 박근혜는 비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1주년이 되는 16일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도망’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박 대통령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검찰이 이번 사건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우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검찰 수사 결과에 온 국민의 촉각이 쏠려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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