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국정원이 세월호로 어두운 무언가를 했다가 아니라 국정원이 관리를 했는데도 왜 이모양이지? 를 생각해봐야 한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엄청난 악의 세력이 있어서 그 놈을 찾으면 되는 게 아니라 합법적이고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우리를 저 바다에 처넣을 수 있다는 것, 그게 더 무서운 진실이라고 느꼈다.”

지난 해 6월 10일 첫 공판 준비 기일을 시작으로 5개월간 세월호 참사 재판을 방청하고 기록해 온 오준호 작가의 말이다. 그는 선원 재판은 33번 중 31번을 방청했고 청해진 재판과 해경 재판까지 합치면 40회 이상 방청했다. 기자가 아닌 탓에 노트북이 허용되지 않아 수첩에 재판 과정을 기록했다. 그렇게 사용한 수첩이 30개 분량이다. 이를 모아 <세월호를 기록하다>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형사 사건이기 때문에 검찰이 중요 자료를 거머쥐고 있었고 증거나 증언도 법정으로 집중됐다. 참사 이후 많은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일방적이었다.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공유됐다. 이런 의혹을 가지고 싸우는 공간이 법정이다. 양쪽의 공방 속에서 진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재판 중심으로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하게 됐다.”

처음에 그는 “명쾌한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특정한 악의 세력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는 것이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단 하나의 악당이 아니라 매우 구조적이고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 때문에 당혹감도 느꼈다. 갈수록 더 혼란스러워졌고 오히려 처음이 더 깔끔했다.”

   
▲ <세월호를 기록하다> 저자 오준호 작가. 사진=이하늬 기자
 

3등 항해사와 관련된 재판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구형을 하는 날이었다. 그날 검찰은 프레젠테이션 파일에 죄를 나열하고 빨간 글씨로 ‘30년 구형’이라고 썼다. 3등 항해사가 26살 여성인데 얼굴이 사색이 돼서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너가 잘못했잖아’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저 항해사보다 더 많은 이득을 누린 사람들은?’ 이라는 물음이 생기는 거다.”

‘더 많은 이득을 누린 사람’들은 누굴까. 세월호는 241회 왕복 운항하는 동안 139회나 과적운행을 했다. 청해진해운과 선원들에게 안전규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준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 과정에서 이득이든 권력이든 얻은 사람은 누구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오 작가는 “그 사람들은 법정에 불려오지 않았다”며 “정말 우리는 정의로운 재판을 본 것일까?”라고 되물었다.

이를 해경에 대입해도 똑같다. 여론의 비난은 첫 구조 작업을 잘못한 해경 개개인을 향했다. 오 작가는 “감사원 감사결과에 따르면 해경은 요구되는 구조 훈련의 57%밖에 수행하지 않았다”며 “이는 구조 업무가 언딘같은 업체들에 위탁되면서 그렇게 된 흐름도 있다. 이 위탁 관계에서 부패는 없었는지 이익을 누린 사람은 없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생각하는 무서운 진실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형사적으로는 무죄인 사람들과 시스템이 이런 참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세월호를 국정원이 관리했다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한 나라 최고 정보기관이 관리한 배도 이 모양이라는 것, 그게 더 무서운 진실이라고 느꼈다.” 

   
▲ 오준호 작가의 수첩. 사진=오준호 제공
 

여기서 재판의 한계가 드러난다. 재판에서는 이런 것들이 다뤄지지 않는다. 오 작가는 “누군가는 이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 역시 이를 담당하는 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도 언론이 쏟아내는 기사는 한결 같다.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보도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런 보도들이 ‘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팩트가 조금씩 망가지고 재구성되기 시작할 것이다. 가령 5.18이 슬픈 역사라는 건 알지만 그게 북한에서 주도했다고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하니 믿는 사람들이 생긴다. 세월호도 그런 과정을 밟게 될지 모른다. 지금 시점에 언론들이 사실관계를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재판이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 많은 증거와 증언이 나왔고 세월호와 관련된 여러 ‘설’들이 어느 정도 검증됐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가족들의 공이 컸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다루지 않으려 했던 것까지 가족들이 끈질기게 물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해도 결론으로 가는 과정에서 알지 못했던 단편적인 진실들이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역할은 ‘디딤돌’에 그친다고 평가했다. 이 기록들을 통해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이를 디딤돌로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유가족들은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전히 집요하게 물음표를 던진다. 이 절망의 도가니 속에서도 자식을 잃고도 끊임없이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게 우리한테 희망을 주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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