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던 때가, 기자생활 10년이 코앞이던 즈음이었다. 그 시간 동안 이렇게 저렇게 주워들은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다. 세상의 어떤 문제도 들은풍월로 한마디 말은 얹을 수 있다 자신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 알게 해준 것은 갓 태어난 아이였다.
버스 소음이 잠든 아이를 깨울 만큼 큰 줄 처음 알았다. 굉음을 내며 인도를 활보하는 오토바이는 왜 그렇게 많을까. 우리가 늘 걷는 길은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에 어찌나 턱이 많은지, 통계로는 와 닿지 않았던 '전업맘'은 또 얼마나 많은지도 처음 실감했다. 내가 전혀 몰랐던 세상을 아이가 가르쳐줬다.
어린이집이라는 보육의 세계도 아이가 내게 보여줬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이라는 책의 서평을 부탁 받았다. 어린이집 학부모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앞 몇 장을 읽고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무… 끔찍했다. 썩은 달걀과 곰팡이가 핀 송편이 아이들 간식으로 나오고, 허위교사와 허위아동을 등록해 보조금을 빼돌리고, 원장은 매일매일 뒷돈을 모아 또 큰 어린이집을 짓고. 이 책의 저자는 거의 모든 어린이집이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어쨌거나 당장 나는 출근을 해야 하고, 그러니 내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데?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기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진실이 꼭 당사자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지난 1월 벌어진 인천 연수구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CCTV 화면. 당시 SBS 뉴스 갈무리 | ||
인천의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터진 것이 그즈음이었다. 역시 같은 인천에서 낮잠을 자지 않는다고 교사가 아이를 7차례 바닥으로 내던진 사실이 알려진지 오래되지 않은 때였다. 김치를 안 먹는 아이를 교사가 폭행했다. 여론이 들끓었다. 이례적으로 그 어린이집은 즉각 폐원했다. 교사는 구속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사건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였다. 내가 그동안 깊은 관심을 같지 않았을 뿐. 같은 인천에서만 두 달 사이, 세 번째이나 발생했다. 아니, 정확히는 알려진 학대사고만 그렇다. 그런데 왜 언론도, 정부도, 정치권도 마치 처음 보는 일인 듯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나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 기획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였다. 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직업을 선택한 이들이 왜 아이들을 폭행할까. 대체 우리 사회 어린이집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진실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 진실을 교사에게 묻고 싶었다. 혹시 그곳에 범죄자가 있다면, 첫 번째 목격자는 아이들과 동료 교사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사들을 만났고, 그 교사들은 내가 미처 몰랐던 세계를 보여줬다. ‘인간적인 보육 환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교사가 아이 몇을 돌보느냐다. 그런데, 우리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게다가 이 비율? 안 지키면 그만이다. 돌봐야 할 아이 수도 많지만, 노동조건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점심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틈조차 없는데, 엄청난 서류에 짓눌린 일상적 야근으로 퇴근 후에도 업무에 시달리는데, 천사가 내려온들 한없이 자애로울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되물을 수밖에. 누가 이들을 괴물로 만들고 있는 것인가?
더 큰 문제는 시스템이다. 막대한 보육료를 쏟아 부으며 ‘무상 보육’을 자랑하지만, 우리 보육은 완전히 민간의 ‘장사꾼’에게 맡겨져 있다. 원장은 자격조건이 있지만, 설립자는 아무나 가능하다. 한 대표자가 36개의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 장사’가 잘 되면 치킨집처럼 권리금을 얹어 팔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것? 모두 정부다.
보육을 장사의 수단으로 맡겨놓으니, 못 된 원장은 아이들 간식으로도 장난을 치고, 인건비를 적게 쓰려고 용을 쓴다. 그래야 가져가는 돈이 많으니까. 이 사태를 알고도 내버려두고 있는 이? 역시 정부였다. 그나마 환경이 나은 국공립을 늘리지 않는 것도 정부고, 비리를 알려줘도 단속조차 하지 않는 것도 정부다.
그 진짜 ‘범죄자’는 문제가 생기면, 교사만 탓한다. 그 현실을 짚어가니, 엉뚱한 사람들이 반발을 했다. 정부가 방치한 시스템 속에 보육을 장사로 생각하는 일부 원장을 말했더니, 많은 원장들이 댓글로 메일로 전화로 항의를 해 왔다. ‘우리가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든데’가 그 많은 항의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미래 세대를 키우는 일이 누군가가 이윤을 남기는 수단이 되어도 되는 것일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것이었다.
▲ 여정민 프레시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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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의 기간, 10명 남짓한 교사들을 만나가는 동안 나는 서서히 늪에 빠져갔다. 처음 만난 선생님이 “기자님, 보육은 늪이에요” 하던 말을 뒤늦게야 이해했다. 12편의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담지 못한 이야기가 여전히 한 보따리다. 이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두 달 내내 품고 살았던 의문, 왜 20년 동안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 답에 해법이 있다는 사실. ‘내 아이만 다치지 않으면 돼’라는 무관심이 우리 아이들을 학대를 부르는 살인적인 환경에 버려둬 왔다는 진실. 당장 아프더라도, 진실을 인정해야 달라질 수 있다는 뒤늦은 후회가, 변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