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세월호 참사 직후 기자를 부르는 다른 말은 ‘기레기’였다. 쓰레기와 기자의 합성어다. 현장 중계식 기사 혹은 무비판적 받아쓰기식 기사가 언론의 신뢰도를 추락시켰다는 비판이 깔려 있다. 언론계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언론에 대한 신뢰 회복 차원에서 전문성 강화를 위한 언론인 재교육 필요성을 강조했다. 

언론인 스스로도 재교육에 대한 욕구는 높게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3년 펴낸 언론인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1527명 중 96.1%가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2003년(응답자 713명) 97.9%, 2005년(1032명) 97.4%, 2007년(967명) 97.0%, 2009년(1040명) 98.1%보다 준 수치지만 여전히 응답자 10명 중 9명 이상은 연수 및 재교육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언론인 재교육은 다양하게 진행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을 비롯해 삼성언론재단·LG상남언론재단 등공익재단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언론인 재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규모가 큰 언론사의 경우 나름의 재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기자에 따라서는 저널리즘 대학원이나 일반 대학원 등을 선택해 전문성을 강화하기도 한다. 

   
'기자는 현장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전문성 강화 재교육에 대한 언론의 요구가 높다. 사진은 지난 3월 27일 서울 서초구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집 앞에서 취재진이 대기하는 모습. @연합뉴스 
 

 

잘 차려진 듯 보이지만 기자들이 보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문화일보 출신인 홍성철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는 “언론사의 경우 언론인을 재교육 시킬 여력이 없거나 충분하지 않고 특정 기업이 후원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당초 취지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평가했다. 

한국언론정보학회가 지난해 세월호 참사 후 주최한 언론인 재교육 관련 세미나에서는 언론재단 재교육 프로그램의 단기성과 전문성 심화 프로그램 부족, 대학원의 이론 중심적 교육 등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한 언론사의 A전문기자는 “기자의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늘 강조되지만 제도는 못 따라가는 것 같다”며 “1994~95년 중앙일보에서 전문기자 제도를 도입하면서 ‘전문성 강화’ 분위기가 유행처럼 번졌지만 한 풀 꺾이고 나니 재교육이나 전문기자 제도 등도 시들해 진 것 같다”고 말했다. 

재교육의 역설… 현장 기자에겐 필요 없거나 못 하거나 
재교육 기회는 열려있지만 기자들이 재교육이라는 밥상에 숟가락을 얹기에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6년 차인 B 기자는 “하루 종일 출입처를 취재하고 다른 언론사 기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하다”며 “종종 저녁까지 일이 늘어지면 공부는커녕 사생활을 챙길 시간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순환보직 시스템도 기자의 전문성 강화에 걸림돌로 지적된다. 홍성철 교수는 “예를 들어 중동 이슈로 재교육을 받은 기자가 해당 지식이 필요할 때엔 정작 정치부로 인사이동해 가 있는게 현실”이라며 “재교육이나 전문성 심화 등은 회사가 인력배치 차원에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이 인터넷과 모바일로 옮겨가면서 심도 깊은 기사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는 분위기도 재교육 필요성을 약화시킨다. 규모가 큰 언론사에서는 소위 ‘온라인 뉴스팀’ 등으로 어뷰징 기사를 써내지만 중소 규모 언론사에서는 기자들에게 하루 몇 꼭지 이상의 ‘어뷰징성’ 기사를 할당하기도 한다. 

한 종합일간지 C 기자는 “모 언론은 전반적으로 심도 있는 기사를 쓰는데 사실 재미가 없고 일반 독자들이 수용하지 못할 전문성을 담다보니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A 기자는 “이미 심도 깊은 기사를 쓴다고 해서 신문사 부수가 많이 팔리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높아지는 시대가 아니다”며 “전문성 있는 기사에 대한 요구가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포털 등에선 반대의 기사만 넘치는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문분야를 한정적으로 인정하는 언론사의 관행도 전문성을 높이기 어려운 구조로 꼽힌다. 전문 분야가 넓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과학·의학·북한 등 소수 분야다. 전문기자 제도 도입 당시 경제 전문기자가 전체 20% 이상을 차지하며 다수를 점하고 있었으나 10여 년 만에 경제 전문기자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 2010년 미디어오늘 전수조사에 따르면 전문기자들의 분야는 과학·의학·환경 등 분야로 줄었다. 

   
▲ 기자들이 전문성을 전문성을 키우기 쉽지 않은 이유로 언론사 내 몇몇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인식도 문제로 꼽힌다. 한 전직 언론인은 "정치부의 전문성이라고 하면 여론조사 기법 정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CC0 Public Domain
 

 

한 종합일간지 D 기자는 “기자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분야는 상대적으로 언론사의 ‘비인기 분야’”라고 말했다. “순환보직 때 기자들이 기피하는 분야를 전담해주는 게 전문기자”라는 것이다. 

몇몇 분야를 제외하고는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도 있다. 종합일간지 출신 전직 언론인 E씨는 “정치부나 사회부 같은 곳에 전문성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며 “정치부의 전문성이라고 하면 여론조사 기법 정도 될까”라고 말했다. 

지역의 기자 재교육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박종인 부산일보 기자는 동아대에서 행정학 석·박사를 마치고 회사에 전출 신청을 하면서 서울 한 대학의 언론대학원에 지원해 합격했다. 하지만 전출이 무산됐고 3년 간 서울-부산을 오가며 수학했지만 출석일수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그는 자퇴하고 2012년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에 입학해 졸업했다. 

박종인 기자는 “지역에서는 언론재단 교육이나 지역 순회 강연이 고작이고 회사 자체교육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며 “서울에 비해 제약 요인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마저도 본인이 외면하거나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으면 사실상 재교육 기회는 제로”라고 말했다. 

경력이 쌓이면서 중견급 기자가 되면 교육을 받기 쉬울까. F 기자는 “업무에 치일 땐 공부를 하고 싶고 공부할 만큼 여유로워 질 때엔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쌓아서 전문기자로 굳어지면 편집국장·경영기획실 등 언론사 고위직으로 발돋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쉽지 않은 공부하는 기자의 길 
언론재단이 2013년 언론인을 설문한 결과 65.5%가 업무 전문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전문지나 전문 사이트 리뷰(51.9%)가 가장 많았고 관련 세미나나 연수(16.2%)하거나 전문가 포럼(10.2%)에 참여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한다. 

이중 대학원 진학은 업계 전문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저널리즘을 위한 전문지식 분야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저널리즘 대학원에 진학한 G 기자는 “대체적으로 만족했지만 기초과정이 없는 언론인들에게 전문가 30여명이 학계 전문지식을 강의하는 것을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 경제대학원에서 수학 중인 H 기자는 “아무래도 한국 교수들이 임용 후 연구가 부족하다 보니 교과서 중심으로 수업하기 일쑤”라며 “2015년 4월 현재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교수와 토론하면서 현 상황에 대한 대안을 내는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 대부분의 언론인 재교육 기관은 이론 중심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CC0 Public Domain
 

이는 저널리즘과 전문성을 결합한 대학원의 부족이라는 비판과도 맞물린다. 대학원을 거치지 않은 심재억 서울신문 의학전문기자는 “기자에게 의사만큼의 전문지식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보다 ‘무엇이 기사인지 아는 것’과 ‘가독성 높은 기사를 쓸 수 있는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기자 교육 기관으로 소수 교수와 교류를 강화하는 대학원보다는 공익재단에서 기자적 소양과 전문성을 동시에 쌓을 수 있는 커리큘럼을 확대해나가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고 했다. 

재교육을 받고 돌아온 기자들의 만족도는 어떨까. 박종인 기자는 “공부든 체험이든 힘들어서 그렇지 해놓고 보면 ‘종합비타민’ 같은 역할을 한다”며 “다양한 시각을 접하고 판단해야하는 기자에게는 더욱 필요하고 전문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점을 느낀다”고 말했다. 

H기자는 “공부를 한 기자와 안 한 기자는 확실히 다르다”며 “해당 분야를 보는 시각 자체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만족해 했다. 이 기자는 “공부한 후 신문을 보면 예전과 다른 점들이 많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온라인·모바일 등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데스크와 갈등도 극복해야할 과제다. 한 종합일간지 I기자는 “온라인 어뷰징용 기사를 쓰라는 데스크의 지시 때문에 지엽적인 내용을 쓰게 되면 그동안 열심히 공부한 것이 아깝고 힘이 빠지기도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대학원에서 겸임 강사로 활동하는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는 “기자는 결국 전문성을 토대로 기사를 써 내는 사람”이라며 “전문성을 토대로 독자의 요구와 데스크의 요구를 동시에 맞출 수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한식 서강대 경제대학원 원장은 “언론사 기자들이 경제 관련 기사를 쓸 때 자율적 판단보다는 부서나 회사 지시에 따라 논조를 잡는 것 같은 데 회사의 논조를 잡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학교에서는 기자의 판단 능력을 길러 각 사안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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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미래 (13)
기자들 재교육 기회 많아도 연차 낮으면 ‘그림의 떡’

 

 

<편집자주>

미디어오늘이 오는 5월 창간 20주년에 맞춰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하는 20회 연속 기획 시리즈를 내보냅니다. 미디어 산업의 전통적인 수익 기반이 붕괴되고 콘텐츠 플랫폼이 다변화하면서 주류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이 약화되고 생존을 위한 경쟁에 매몰되면서 급기야 저널리즘의 근간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획 시리즈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진단하고 퇴행적인 일련의 변화를 비판하고 혁신과 대안을 모색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창간 20주년, 미디어오늘은 언론 보도의 이면과 팩트 너머의 진실을 파고드는 정직한 감시자, 언론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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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뉴스, 가격 없는 상품의 딜레마.
(02) 온라인 저널리즘이 불러온 재앙.
(03) 붕괴하는 광고 시장, 추락하는 저널리즘.
(04) 현장에 기자들이 없다.
(05) 퇴행적인 취재 시스템.
(06) 차별성 없는 콘텐츠.
(07) 신문시장의 구조적 위기.
(08) 방송의 통신 종속.
(09) 무늬만 뉴스 도매상, 연합뉴스.
(10) 뉴스 구독 행태의 변화.
(11) 콘텐츠 수익모델 다변화.
(12) 뉴스 다양성과 경쟁력 확보.
(13) 기자 재교육과 전문성 강화.
(14) 기자의 미래.
(15)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
(16) 신문읽기 교육의 현재와 대안.
(17) 뉴스룸 쇄신, 조직의 동력을 바꿔라.
(18) 대안 언론의 등장과 주류 언론의 틈새 시장.
(19) 에버그린 콘텐츠를 찾아라.
(20) 저널리즘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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