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을 다루는 과정에서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렸던 KBS 특집 다큐멘터리 ‘뿌리깊은 미래’가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1일 오후 열린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김성묵 위원장)에서는 지난 2월 7일 방송된 KBS <광복70주년 특집 ‘뿌리깊은 미래’> 2부작 중 1부 내용에 대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 1항과 제14조(객관성)를 위반했다는 다수 ‘경고’ 의견으로 전체회의에 회부했다.

해당 방송은 KBS가 광복 70주년 기획으로 제작한 2편의 다큐멘터리로 6·25 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 사실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와 미군정에 대한 부정적 묘사, 공산군 피해 누락 등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며 방통심의위에 민원이 제기된 안건이다. 

   
▲ KBS 광복70주년 특집 ‘뿌리깊은 미래’ 1부 <生의 자화상>
 

특히 이날 회의에서 여권 추천의 함귀용 심의위원은 ‘뿌리깊은 미래’ 1부 방송 내레이션 중 국군의 서울 수복 후 “정확한 죄명도 모른 채 사형당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달한 부분과 흥남 철수 작전 과정에서 “유엔군이 기름과 탄약 포탄을 폭파해 살고 싶으면 미군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나야 했다”고 한 부분을 강하게 문제 삼으며 “내가 이 프로그램을 두 번 보면서 느낀 감정은 80년대 사관에 천착한 게 아닌지 우려가 들었고, 내 기준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법정제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함 위원은 “전쟁 당시 수없이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하고 납북되는 등 인간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사실을 생략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죄명도 모르고 사형 당했다고 단정한 것은 결단코 허위사실”이라며 “흥남에 남겨지면 공산당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싣고 온 흥남철수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멘트를 한 것은 참전용사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날 의견진술을 위해 나온 김형석 KBS 기획제작국 팀장은 “원래 이 다큐의 처음 기획 의도는 대한민국의 초상이라는 콘셉트로 일반인이 광복 이후 폐허에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것이어서 국내 정치 상황은 많이 생략했다”며 “정보 불균형이 발생해 오해를 산 것 같다. 하지만 제작 의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김 팀장은 인민군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과 관련해 논란이 된 서술에 대해선 “서울 수복 이후 전세가 바뀌고 나서 전반적인 상황을 표현하려고 했지 서울시민만 부역자로 처벌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며 “남북에 살고 있는 정치세력과 일반인을 전체적·객관적으로 다뤘던 지난 2010년 한국전쟁 10부작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 프로그램은 대한민국 일반인을 범주로 해 북한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빠지게 됐고 그 지점에서 문제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 위원이 지적한 인민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흥남철수 작전 서술과 관련해서 김 팀장은 “흥남철수 전후 맥락을 보면 흥남에 남은 민간인들이 얼마나 극단적인 상황을 겪었는지 보여주고 싶었고 군사작전 등을 다 넣으면 프로그램을 몇 부로 만들어도 모자란다”며 “군사작전 등 정치적 측면과 정치가 등 유명인이 아닌 일반 개인이 겪은 전체적인 힘든 상황이 나오고, 2편에선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KBS 광복70주년 특집 ‘뿌리깊은 미래’ 1부 <生의 자화상>
 

함 위원의 지적과 달리 야당 추천의 장낙인 위원은 “제작진의 의견진술 내용을 보면 즉결처분 금지령을 내렸다는 자료도 있고, 재판기록엔 남아있지 않지만 처단을 당했다는 증언도 있어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면서 “과거 친일 행적의 백선엽 장군을 전쟁 영웅으로 부각한 다큐멘터리 ‘전쟁과 군인’에 대해선 ‘문제없음’에 그친 사례도 있었고, 일부 소년병 숫자나 인민군 부역자 문제 등 정확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부분을 주의하라는 의미에서 ‘의견제시’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에 또 다른 야당 추천의 박신서 위원도 “사실관계 오류와 해석의 다툼 부분이 있지만 우리나라 민초들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잘살게 됐다는 얘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던 과정에서 간혹 놓치거나 오해살 수 있는 부분 있을 수 있다 본다”며 “전체적인 기획 의도나 하고자 하는 표현이 오히려 갈등을 봉합하고 화합과 단합으로 나아가자는 취지여서 전체 흐름으로 볼 때 문제없다고 본다”고 역시 행정지도인 ‘의견제시’ 의견을 냈다.

하지만 여권 추천의 김성묵 위원장과 고대석·함귀용 위원은 내레이션 부분에서 시청자들과 역사적 자료로서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서술이 있다며 법정제재인 ‘경고’ 의견에 합의함으로써 심의위의 여야 6대 3 구성상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은 커졌다. 

한편 이날 한국PD연합회(박건식 회장)는 심의위의 이번 ‘뿌리깊은 미래’ 심의와 관련해 성명을 내고 “‘뿌리깊은 미래’는 이 땅의 민초들이 해방 후 전쟁과 혼란 속에서 어떻게 삶을 이어왔고, 그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 다큐멘터리지 정치적 역학관계나 국제관계에 매여 있지 않다”며 “하지만 이 다큐를 두고 수구·보수 세력들은 좌파적 시각을 운운하면서 광분하고 있고, 심의위의 정부·여당 측 인사들은 또 징계의 칼날을 들이댈 태세”라고 비판했다.

PD연합회는 이어 “심지어 공영방송의 제작 자율성을 수호해야 할 이인호 KBS 이사장은 레드콤플렉스의 색안경으로 프로그램을 재단하고, 왜곡된 인식으로 이사회에서 프로그램을 논의하려고 했다”며 “이처럼 제작 자율성이 무너지고, 언론자유가 무참히 짓밟힌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처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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