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주한미국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 피의자인 김기종씨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떠들썩했던 범행 배후 세력과 관련해서는 단독 범행으로 결론을 내렸고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적용하지 못했다. 수사 초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배후 세력 엄벌 방침을 밝히고 종북 세력과 연관성을 제기했는데 실체가 없는 요란한 빈수레에 수사 당국이 놀아난 꼴이 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일 살인미수, 외교사절폭행,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김기종씨를 기소하기로 했다.

김씨가 리퍼트 대사의 얼굴 등을 향해 5차례 흉기를 휘둘러 신경이 끊어지는 깊은 상처를 입은 점 등 리퍼트 대사의 주치의 증언을 바탕으로 검찰은 김씨가 살인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고 살인 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가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을 내렸다. 언론에서 김씨와 인연을 맺었던 정치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후원금 내역과 김씨의 통화 내역 등을 대대적으로 수사했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결과다. 

앞서 경찰은 "간첩죄 처벌전력 김모씨, 이적단체인 연방통초 핵심 구성원 김모씨 등 국가보안법 전력 위반자와 후원금 계좌 입금자 및 단체부터 우선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고, 언론에 피의사실일 수 있는 통화 대상자까지 흘리면서 '김씨 배후 세력=종북세력'이라는 등식을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또한 국가보안법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단순 이적표현물 소지죄도 적용하지 못하면서 수사 당국이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결과 망신을 당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은 김씨의 자택을 수색해 24건의 표현물에 이적성이 있다고 판단해 수사를 해왔지만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보강 수사를 통해 밝힐 것'이라는 입장만 밝혔을 뿐 특별한 혐의점을 제시하지 못했다.

검찰 역시 이날 발표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추가로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지만 당장 보안법 혐의를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

경찰은 김씨가 진술 과정에서 '남한에 김일성만한 지도자는 없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정부 발표는 믿을 수 없다', '국가보안법은 악법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며 이 같은 진술이 리퍼트 대사의 피습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북한 동조 및 반미 성향이 이번 범행으로 이어졌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화협 초청 특별강연회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흉기로 습격한 우리마당 김기종 대표가 종로경찰서에서 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되며 "전쟁 훈련 반대"를 외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경찰은 김씨가 지난 2011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연관성을 주장했지만 이 같은 주장도 국가보안법 혐의 적용엔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김씨의 변호인은 당시 현장에 김씨가 있었을 뿐 분향소 설치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반발했다. 

검찰은 하지만 국가보안법 혐의는 보강 수사를 통해 밝혀지면 추가 기소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검찰은 김씨의 자택에서 압수한 서적 등의 이적성을 재검토하고 김씨의 주장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동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김씨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반대한 점,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 점, 한미동맹을 비판한 점 등을 따져 국가보안법 7조 1항에 규정된 이적단체 동조 행위로 판단하고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이 김씨에 대해 이같이 이적단체 동조 혐의를 적용시킬 경우 김씨와 비슷한 주장을 해왔던 시민사회단체와 인사 등도 혐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재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김씨의 이적단체 동조 혐의는 북한에서 쓰는 말이라고 해서 우리말 사전에 북한 용어를 다 배제시켜야 한다는 논리와 똑같다. 한마디로 코미디"라며 "이같이 무리하게 보안법을 적용하면 전체주의와 다를 바 없다. 역대 장관들 중에도 김씨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상당수 있는데 이런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로 말했다.

이 변호사는 "오늘 검찰 발표는 배후 세력의 실체도 없고 조직적으로 활동한 적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라며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한마디 한 것을 가지고 수사당국이 수사의 원칙도 지키지 않고 야단법석을 떤 게 적나하게 드러난 것이다. 정치권에 경찰과 검찰이 놀아난 것"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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