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언론연감에 따르면 기자직 종사자는 2만7398명으로 전년대비 7.2% 증가했다. 이렇게 기자가 많았던 시절은 없다. 그럼에도 뉴스의 질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쓸모없는 뉴스가 넘쳐난다. 기사작성 메커니즘이 광고·트래픽 논리로 획일화된 결과다. 정보를 수집하는 수단은 그 어느 때보다 최적화됐지만 기자들은 분초를 다투며 기사를 복제하기 바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4년 8월 시민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91.9%가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들이 “서로 비슷하다”고 답했다. 정보에 민감한 전문직 종사자를 제외한 대다수 시민은 포털 뉴스가 하루에 접하는 뉴스의 전부다. 최수진 국민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어뷰징을 자주 경험할수록 포털과 언론사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설문 응답자의 88.8%는 “어뷰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어뷰징은 1~2분 동안 실시간검색어 이슈와 관련된 기사가 많게는 200건 넘게 쏟아지는 양상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사를 통해 한국 언론의 수준을 가늠한다. 똑같은 뉴스가 쏟아지지만 문제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언론사 입장에선 낙종만 피하면 된다. 한 방송사 기자는 “당직 때마다 연합뉴스를 뒤져 우라까이(기사 베껴 쓰기) 하기 바쁘다”고 자조 섞인 말을 전하기도 했다. 뉴스의 다양성은 보도자료를 받아쓰느냐, 취재를 하느냐의 선택에서 갈린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보도자료 오기만을 기다린다. 언론의 나태함은 직무유기로 이어지고, 피해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진다. 

그러나 뉴스다양성 부재를 기자 개인의 나태함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경제지표 중 ROI(Return on Investment)가 있다. 투자대비 이익률을 계량화한 것이다. 기사를 ROI 지표로 계량화하면 어떨까. 언론노동자가 투입한 총 노동시간과 취재비용이 투자고, 광고수익과 구독자 증가율이 이익에 해당한다. 광고주와 연계된 기사는 건당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의 수익이 장부에 잡힌다. 어뷰징도 트래픽에 따른 온라인 광고수익 증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연합뉴스나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기사도 투입 노동시간을 최소화하는 점에서 이익률을 높인다.  

예상했겠지만 고발기사나 탐색기사 등 탐사보도는 투자대비 이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 수 개월간 노동력을 투입했지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수 있다. 언론사의 명성을 높이는 무형의 이익이 있으나 유형의 이익으로 오기까지는 많은 변수가 있다. 탐사보도를 통해 기업으로부터 광고를 뜯어낼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엔 언론이길 포기해야 한다. 결국 현재와 같은 기사 복제, 보도자료 중심의 생산방식이야말로 투자대비 이익이 확실히 보장되는 방법인 셈이다. 이를 두고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생산비용이 획일화되며 뉴스 주제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2004년만 해도 탐사보도 바람이 불며 신문사들이 탐사보도팀을 경쟁적으로 신설했다. 세계일보는 2005년 1월 ‘탐사보도의 세계’라는 전문 사이트를 열었고 KBS에선 2005년 4월 탐사보도팀이 신설돼 굵직한 특종을 내놨다. 같은 해 국민일보·동아일보·서울신문·경향신문 등도 탐사보도팀을 만들었다. 하지만 언론사가 경영난을 겪으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점차 축소되었다. 경영진이 탐사보도팀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갖지 못한 탓이었다. 

2005년 중앙일보 탐사기획팀장을 맡았던 이규연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과거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편집인이나 국장이 바뀔 때마다 (탐사보도팀이) 춤을 췄다. 편집국 인원이 적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일단 탐사보도팀에서 인력을 뺀다는 문제도 있었다”고 밝혔다. 물론 탐사보도팀 존재여부보다 중요한 건 ‘탐사보도 정신’이다. 하지만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자본의 논리가 빚어낸 재앙은 탐사보도 정신마저 잊게 만들었다.  

   

▲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

 

 

디스패치와 뉴스타파의 공통점

디스패치는 수지·이민호 열애를 취재하기 위해 다섯 명의 기자가 영국으로 건너가 수천 만 원의 취재비용을 썼다. 임근호 디스패치 취재팀장은 이민호·수지 열애기사를 두고 “트래픽이 나와 봤자 취재비용도 건지기 어렵고 서버비용만 더 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왜 ‘돈 안 되는 장사’를 할까. 그는 “우리가 확인하지 않으면 수지·이민호를 한국에서 못 잡을 거라 생각했다”며 “당장 수익은 안 되지만 디스패치라는 브랜드와 진정성을 올리는 작업”이라고 자평했다. 

파파라치라는 비판을 받는 디스패치는 15명 내외 취재인력으로 어떻게 연예매체 중 가장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갖게 됐을까. 수개월 간의 잠복 취재로 사진이란 팩트를 보도하는 디스패치의 기사작성방식은 실시간검색어·제작발표회·예능 드라마 요약 중심의 연예뉴스 기사작성 방식과 다르다. 그 결과 디스패치 콘텐츠는 기존 연예뉴스와 차별화됐다. 동의하기 어려울 사람도 있겠으나 디스패치는 연예콘텐츠의 ‘다양성’에 집중하며 블루오션을 찾은 셈이다. 

디스패치와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언론계에서 주목받는 매체가 또 있다. 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다. 뉴스타파는 2013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국제공조를 통해 250만개 파일에 담긴 170개국 13만 명 가운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운 사실을 밝혀냈다. 뉴스타파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트위터 계정을 추적, 658개의 계정이 10개의 그룹으로 활동하며 3744건의 글이 해당 그룹 안에서 5만 5639번 리트윗 된 사실도 단독 보도했다. CAR도 쓸 줄 모르고 출입처까지 있는 기자들로선 절대 할 수 없는 전문 작업이다. 

뉴스타파는 매년 고위공직자 재산파일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자료가 탐사보도의 바탕이 된다. 취재의 확장이다. 출입처와 보도자료를 벗어나지 못하는 언론환경에서 데이터저널리즘이란 블루오션을 찾은 셈이다. 뉴스타파의 성공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국제탐사저널리즘네트워크(IIJN)에 따르면 2013년 현재 47개 국가에서 106곳의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매체가 운영되고 있다. 2008년만 해도 탐사보도매체는 30여개에 불과했다. 디지털 혁명 이후 ‘생산성’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뉴스가 대량생산되자 탐사보도매체가 국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탐사보도야말로 투자대비 이익률이 높다

프랑스의 <메디아파르>는 탐사보도야말로 투자대비 이익률이 높다는 명제를 입증한 언론사다. 메디아파르는 탐사기사와 분석기사를 보도하는 온라인매체로, 1년에 90유로의 구독료를 내는 유료회원만 2014년 현재 9만 명을 넘겼다. 메디아파르 편집국장 에드위 플레넬은 “인터넷시대에 사람들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한 “저널리즘은 자본이 아닌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50여명의 소규모 언론사인 메디아파르는 자신들만의 뉴스를 생산하며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로 성장했다. 플레넬은 “좋은 정보는 공짜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메디아파르 모델은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2013년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탐사보도매체 <드 코레스판던트>의 경우 1년만에  4만 여명의 유료회원을 보유하며 급격히 성장했다. 뉴스타파 또한 현재 3만 5천여 명의 후원회원을 확보, 재정적으로도 안정됐다. 

이제 언론사가 살아남으려면 타사가 보도할 수 없는 뉴스를 보도해야 한다. 이 같은 뉴스의 다양성 확보는 광고와 조회 수 압박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싱겁지만 정직한 전제다. 출입처를 넘어서고, 보도자료 의존도는 줄이고, 연합뉴스를 베끼는 관행은 줄여야 한다. 어뷰징은 △트래픽 기반의 인터넷 광고요금 책정방식 변화 △포털의 어뷰징 규제 강화 △어뷰징 방지 위한 기술 개발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 데스크는 호흡이 긴 기사를 지원해야 한다. 당장의 적자를 감수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 

김성해 교수는 “비즈니스모델이 다양하면 콘텐츠가 다양해질 수 있다”며 미국 탐사보도매체 프로퍼블리카를 예로 들었다. 프로퍼블리카는 자체 콘텐츠를 다른 언론사에 판다. 예컨대 카트리나 사태 당시 병원에서 환자를 강제로 안락사시켰다는 특종보도의 경우 뉴욕타임스가 재정지원을 한 뒤 콘텐츠를 공유했다. 탐사보도팀을 내부에서 운영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탐사보도 매체에 일종의 아웃소싱을 준 사례다. 이밖에도 프로퍼블리카는 공익재단을 통해 기금을 만들거나 뉴스펀딩 형태로 취재비용을 충당하기도 한다. 탐사보도를 통해 프로퍼블리카의 브랜드를 높인 결과 이 같은 수익모델이 가능해졌다.

독일의 슈피겔이나 미국 뉴욕타임스 독자는 뉴스가 아닌 매체의 브랜드를 소비한다. 브랜드를 소비하게 하려면 뉴스 콘텐츠 가격에 대한 파격적 접근이 필요하다. 뉴스 다양성의 확보는 결국 수익구조 다변화인데, 이를 위해선 역설적으로 뉴스의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김성해 교수는 “한국은 언론의 브랜드화를 할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하다. 소비자에 대한 상상력이다. 독자는 돈을 낼 준비가 되어있다. 로열티를 갖고 있는 일정 규모의 독자층 확보가 중요하다”며 “결국 중요한 건 우리 매체가 뭘 보여줄 수가 있느냐이다”라고 강조했다.

뭘 보여줘야 할까.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전 한겨레 탐사보도팀장)은 좋은 뉴스를 이렇게 설계한다. “고발기사는 데이터저널리즘을 통한 빅 데이터 활용을 통해 대상의 치부를 명백히 드러내야 한다. 데이터저널리즘의 최종 단계에선 독자가 한 눈에 문제를 직관할 수 있는 인포그래픽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탐색형 기사는 사안을 대표할 인물을 발굴해내 구조와 맥락을 드러내야 한다. 내러티브다.” 안수찬 편집장은 “기자 대부분은 출입처에서 형성한 인맥을 따라 아이템을 내거나 또는 신문을 보며 아이템을 내는데 이 경우는 기자의 시각을 파워엘리트에 갇히게 한다”며 “출입처가 아닌 일상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모든 기사는 누군가 썼던 것이다. 새로운 기사의 핵심은 기사의 주제가 아니라 기사의 포맷이다”라고 강조한다.

기자들이 ‘급한 뉴스’ 말고 ‘중요한 뉴스’에 눈을 돌릴 때, 뉴스는 다양해지고 사회는 쓸모없는 뉴스의 해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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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미래 (12)
그들에겐 뉴스가 곧 운동이다

 

<편집자주>

미디어오늘이 오는 5월 창간 20주년에 맞춰 저널리즘의 미래를 고민하는 20회 연속 기획 시리즈를 내보냅니다. 미디어 산업의 전통적인 수익 기반이 붕괴되고 콘텐츠 플랫폼이 다변화하면서 주류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이 약화되고 생존을 위한 경쟁에 매몰되면서 급기야 저널리즘의 근간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기획 시리즈는 한국 언론의 현실을 진단하고 퇴행적인 일련의 변화를 비판하고 혁신과 대안을 모색하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창간 20주년, 미디어오늘은 언론 보도의 이면과 팩트 너머의 진실을 파고드는 정직한 감시자, 언론의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연재 순서 > (아래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기사로 연결됩니다)

(01) 뉴스, 가격 없는 상품의 딜레마.
(02) 온라인 저널리즘이 불러온 재앙.
(03) 붕괴하는 광고 시장, 추락하는 저널리즘.
(04) 현장에 기자들이 없다.
(05) 퇴행적인 취재 시스템.
(06) 차별성 없는 콘텐츠.
(07) 신문시장의 구조적 위기.
(08) 방송의 통신 종속.
(09) 무늬만 뉴스 도매상, 연합뉴스.
(10) 뉴스 구독 행태의 변화.
(11) 콘텐츠 수익모델 다변화.
(12) 뉴스 다양성과 경쟁력 확보.
(13) 기자 재교육과 전문성 강화.
(14) 기자의 미래.
(15) 공영방송 제자리 찾기.
(16) 신문읽기 교육의 현재와 대안.
(17) 뉴스룸 쇄신, 조직의 동력을 바꿔라.
(18) 대안 언론의 등장과 주류 언론의 틈새 시장.
(19) 에버그린 콘텐츠를 찾아라.
(20) 저널리즘의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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