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황 신임 연합뉴스 사장이 ‘트러블 메이커’를 자처하고 있다. ‘현충원 참배’, ‘국기게양식 개최’ 등 박근혜 정부의 애국 코드와 맞닿은 행보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사측 관계자들도 돌발 행동을 예측하지 못해 난감해한다. 내부에선 편집권 보장제도인 편집총국장제를 무력화해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치권을 향한 오버 액션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당초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지부장 오정훈, 연합뉴스지부)는 박노황 사장 후보자를 ‘2012년 파업 유발자’로 꼽았다. 그가 불공정 보도 논란의 책임자였다는 뜻이다. 연합뉴스지부가 지난달 5일 낸 특보를 보면, 박 사장이 2009년 편집국장 시절 보도 축소를 유도해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일 273건이었던 기사 수를 영결식 날 106건으로 3분의1 토막 냈다고 써 있다. 연합뉴스지부는 이에 대해 “경영진의 지시와 기사개입을 여과 없이 편집국에 전달해, 기자들이 공유하는 편집권의 수호자 노릇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지부는 또 그가 과거 1989년 편집권 독립을 위해 연합통신의 파업 전면에 섰다는 점, 90년대 중반 제작국장 직선제 등 편집국 독립을 위한 활동에 힘을 보탰다는 점을 이율배반적이라고 비판했다. 

   
▲ 박노황 연합뉴스·연합뉴스TV 사장(맨 오른쪽)이 지난달 30일 연합뉴스 3사 보직부장 80여 명을 불러 모아 국기게양식을 열었다. 그는 “오늘 게양된 국기는 마치 연합뉴스가 24시간 365일 불철주야 기사를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연합뉴스 사옥 앞에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하지만 대표직에 오르자 박 사장은 “회사의 경영권과 인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편집총국장제와 같은 불합리한 요소들은 과감히 개선할 것”(3월25일 취임사)이라며 편집총국장제 무력화를 시사했다. 박 사장은 이틀 만에 임면동의 투표 없이 이창섭 논설위원을 편집국장 직무대행에 앉혔다. 편집총국장을 공석으로 둬 제 기능을 무력화하는,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은 것이다. 

편집총국장제도는 연합뉴스지부가 지난 2012년 103일 파업을 통해 얻어낸 성과다. 편집총국장 내정자는 기자직 사원 3분의2 이상이 참여하고 이 가운데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임명되는데 이 제도는 단체협약으로 규정돼 있다. 

박 사장은 또 편집총국장 산하였던 편집국을 콘텐츠융합 담당 상무이사 산하로 이관했고, 지방국·국제국 산하부서를 편집국으로 옮기면서 국장 직제를 없애고 제작국장 임면동의투표를 파기했다. 특히 콘텐츠융합 담당 상무에 조복래 전 연합뉴스TV 보도국장을 임명했는데, 그는 지난해 편집총국장에 내정됐지만 임면동의투표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연합뉴스지부가 지난달 26일 총국장제 사수를 위해 사장실 복도에서 첫 출근길 피케팅 시위를 했을 때도 박 사장은 다분히 위압적이었다. 오정훈 연합뉴스지부장과 대화 후 사장실로 들어가던 그가 느닷없이 조합 집행부를 향해 “근무시간엔 일을 해야지 뭐하고 있느냐”며 고성을 높인 것. 돌발 행동에 노조 집행부는 물론 사측 관계자들까지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곁에 있던 취재 기자를 의식해서 의도적으로 윽박지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분분했다. 

   
▲ 박노황 연합뉴스·연합뉴스TV 사장은 지난달 28일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으로 취임 후 첫 대외 일정을 시작해 논란을 일으켰다. 방명록에는 “신속정확하고 불편부당한 뉴스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의 책무를 다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사진=연합뉴스TV 화면)
 

언론사 사장이 첫 대외 일정으로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것이나 보직부장 80여 명을 모아 국기게양식을 개최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다. 한겨레는 31일 사설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입에 올리는 ‘나라사랑론’에 코드를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의  한 기자도 “사장의 행보가 지나치게 튀는 것 같다”며 “한마디로 오버 액션인데 내부 구성원들은 대부분 황당하다는 반응”이라고 밝혔다. 

김재철 전 사장이 MBC에 재직하던 시기 노조 탄압을 지적하는 비판 기사를 통해 정권에 ‘시그널’을 보낸다는 입말은 언론계에서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기사를 통해 비춰진 위악적인 이미지가 자신의 임기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실제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김 사장에 대해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인 뒤 좌파 척결에 나섰다”고 말해 정황을 구체화했다. 4월 연합뉴스가 정부와 구독료 협상에 들어간다는 점도 그의 행보가 마냥 돌발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해석에 힘을 더한다. 

   
▲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조합원들이 2012년 3월 주주총회를 마치고 나오는 박정찬 사장을 향해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그러나 내부에서 저항의 움직임을 만들어내야 하는 연합뉴스지부의 동력이 떨어져있다. MBC, YTN, 연합뉴스 등 언론사들은 지난 2012년 파업에 돌입했으나 실질적으로 정권은 교체되지 않았다. 연합뉴스의 경우 파업을 통해 편집총국장제를 확보했으나 ‘파업 유발자’라고 꼽히는 인물이 사장으로 컴백하는 악재를 맞이한 상황이다.

연합뉴스지부 조합원인 한 기자는 “2012년처럼 저항의 동력이 커지기엔 어려운 측면이 많다”며 “또 박 사장의 임기는 박근혜 정부 임기와 같다는 점도 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권 교체 여부가 사장 임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향후에도 거칠 것이 없을 거라는 전망이다.

한편, 연합뉴스지부는 편집총국장제도와 관련해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7일 성명을 통해 “사측의 단체협약 위반에 대한 법적 조치에 돌입하는 것은 물론 편집권독립 사수를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며 강고한 대오를 유지하며 힘을 모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트러블 메이커의 행보는 어디까지일까. 연합뉴스를 둘러싼 논란을 불식시키는 일은 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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