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극우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 유저 활동을 한 수습기자 A씨를 임용했다. KBS 구성원들은 A씨에 대한 임용을 반대 의견을 수차례 밝힌 바 있어 해당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KBS는 올해 입사한 42기 수습사원 임용을 지난 31일 확정했다. 다만 A씨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일반직 4직급)으로 파견 발령이 났다. 취재·제작 업무가 없는 곳이다. 당장 기자로 투입하지 않았지만 기자직군에는 남게 됐다. 

A씨를 제외한 다른 신입기자들은 임용일인 4월 1일 보도본부 사회2부에서 수습 꼬리표를 떼고 정식 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KBS 구성원들은 지난 2월 13일 A씨의 일베 유저 경력이 알려진 이후 보도국 내 35기 이하 기자, 여기자회, 여성협회 등이 수습 교육 중단과 함께 사측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A기자 임용이 임박한 지난 30일 기자협회·PD협회·기술인협회 등 11개 협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일베 수습기자’의 정식 임용을 결단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입사해 지역 KBS에서 활동하고 있는 41기 기자 9명도 이날 상경, 기자회견에 참석해 “‘일간 베스트’ 이른바 ‘일베’ 유저를 후배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일베 기자 임용 절차를 즉각 중단하고 결단을 내리라. 일베냐, KBS냐 선택하라”며 조대현 사장에게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극단적인 여성혐오와 지역차별을 걸러내지 못한 KBS의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는 지적도 있다. KBS는 지난해 신입사원 채용 최종 면접에서 ‘사상검증’성 질문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비추어 KBS의 ‘일베’ 기자 채용을 막을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 KBS 기술인협회, 기자협회, PD협회 등 11개 협회가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 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철운기자
 

 

또 보수화된 내부 분위기가 ‘일베’ 기자를 적극적으로 구별해내지 못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채용 과정 자체에서 기자의 성향을 알기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보수화된 내부 분위기 속에서 정권 입맛에 맞는 채용방식을 암암리에 도입하려는 사장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일베’ 유저를 걸러내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김철민 KBS 기자협회장은 “형식적이고 관습적으로 채용과정을 진행하다보니까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며 “시대를 못 따라 갔다는 반성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입사원 채용 후 회사의 태도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30일 성명에서 대법원 판례와 채용공고, 인사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A기자의 정직원 임용을 취소할 근거가 충분했음에도 조대현 사장과 경영진이 수습 기간 3개월을 허송세월 하며 보내버린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KBS본부는 “채용 과정이 미비할 수 있고 그 과정을 보완하기 위해 수습과정을 두는데 그 기간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 조대현 사장과 경영진의 책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위 ‘일베’ 유저는 KBS 보도국 내 기자에 임용됐다. 그도 다른 신입기자들과 함께 보도 현장을 누비며 사회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게 될 것이다. ‘일베’ 기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미묘하다. ‘일베’ 경력이 언론인의 결격사유가 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해당 논란이 또 다른 사상검증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럽다는 분위기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KBS에 극단적으로 편향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을 들여놓는 건 부당하다”면서도 “반대로 좌파사상을 가진 극단적인 사람이 들어온다면 반대할 것이냐의 문제도 있어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혜선 사무총장은 “‘일베’를 사회악처럼 규정짓기는 하지만 반대로 심하게 정권 비판적인 인사나 급진적인 무정부주의자를 임용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는 논란도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좌파적인 기자·PD들이 공정보도나 뉴스 가치 판단 기준, 보도원칙을 공유하는 데 비해 ‘일베’ 유저는 가치 판단 기준이 상식과 뉴스 생산 원칙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이 문제”라며 “해당 인사를 기자로 발령 낸다는 것은 공영방송의 가치, 언론의 역할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베’ 기자라는 이슈를 조심스럽게 다뤄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베’ 문화가 일부 집단에서는 또래문화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일베’ 유저라고 해서 이들을 배격할 논리적 근거는 약하다는 것이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베’ 유저가 기자나 판사, 변호사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등장할 가능성은 열려있다”며 “단순히 ‘일베’ 유저가 어떤 직업군이 되면 안된다가 아니라 어떤 행위가 왜 문제가 되는지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특정 사이트에서 한 활동으로 ‘낙인’을 찍을 수는 없다”며 “기자협회나 선배들의 압력으로 ‘일베’ 활동이 ‘잘못됐다, 부끄럽다’고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부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이어 “A 기자에게 분명히 반성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그런 것 없이 ‘일베’ 기자를 임용하거나 퇴직시키는 데서 그치게 되면 ‘일베’ 사이트에 또 다른 훈장을 만들어주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S는 ‘일베’ 기자 임용에 대해 “내부 수습 평가 결과와 사규, 법률자문을 거쳐 이뤄진 것”이라며 “수습사원에 대한 평가 결과는 사규에서 정한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고 외부 자문결과에서도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와 임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KBS는 대신 차후 채용과 수습 제도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일베’기자 채용에 반대했던 직능 협회와 노조 등은 반발하고 있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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