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통과 이후 언론계 접대 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골프 기자들의 공짜 라운딩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디어오늘이 한국골프기자단에서 활동했던 한 기자에게 받은 지난해 골프 대회 관련 행사 내역을 보면 이 기자는 지난 해 1~7월까지 협회 대의원 총회와 선수권·골프 대회 등에서 회당 최소 40만원 대의 접대를 받았다고 31일 밝혔다.

A 기자는 기자단 라운드 25회, 호텔 기자간담회와 점심 식사 11회 등 골프 대회 관련 행사에 총 36회 참석했다. A기자가 미디어오늘에 제보한 목록을 보면 매 행사마다 골프 의류나 가방, 신발 등을 선물로 받았으며 가격대는 10만~50만원대까지 다양했다. 

   
▲ 한국골프기자단에 속해있던 한 기자가 밝힌 지난해 1월~7월 사이 골프 기자단 초청 라운드 및 기자 간담회 등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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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 라운드는 통상 대회 직전 경기가 펼쳐질 코스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A기자는 25회의 라운드에 참여하면서 그린피(주중 8만~16만원/ 주말 12만~20만원)와 캐디피, 카트비와 식음료비를 단 한번도 내지 않았다. 취재 목적이라는 이유다. 

라운드 중 한 두 번 마시게 되는 식음료비와 점심·저녁 만찬도 공짜였다. 함께 운동한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술을 한 잔 걸쳐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대리운전 비용도 공짜로 해결됐다. 

라운드에 참가한 기자들은 드라이버나 페어웨이우드 같은 골프채는 물론 골프화와 쌀, 와인 같은 현물 상품이나 상품권을 받았다. 게임의 재미를 돋우는 게임비 10만원 가량도 매번 업체에서 내줬고 골프 실력이 제대로 발휘된 날이면 한우 세트나 상품권 등을 추가로 받기도 했다. 한 업체가 상품으로 제공한 거리측정기는 시중에서 40만~50만원 선에서 판매되는 상품이다. 

비용은 모두 대회 주최 측이 부담했다. 보통 골프 대회 운영비는 총 상금의 1.5~2배 가량으로 책정되고 기자들 라운드 비용도 대회 운영비에 포함돼 있다. 

A기자는 “공짜 라운드 취재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참석하는 동안에도 기자단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관행이 바뀌지는 않았다. 결국 외부에 제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배경을 밝혔다. A기자는 또 “김영란법도 통과된 마당에 이런 관행은 없어지는 게 맞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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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부에서 골프 취재를 경험해 본 기자들도 같은 제보를 했다. 한 진보 매체에서 골프 취재를 했던 B기자는 “골프 기자단 라운드에 참석한 기자가 돈을 내는 일은 없다”며 “그린피, 캐디비 등 골프장 관련 비용은 물론 식사나 대리운전비까지 모두 주최 측에서 제공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최 측 관계자 1명에 기자 3명이 한 조로 골프를 치면 홀 당 이기는 두 사람이 1만원씩을 가져가게 하는데 이 게임비 역시 주최 측이 처음 카트에 꽂아 놓고 시작한다”며 “18홀 코스를 돈다고 하면 36만원이고 주최 측 관계자는 일부러라도 져주니까 3명이 나눠 먹는 꼴로 잘 치는 사람은 혼자 20만원을 쓸어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B 기자도는 “상품으로 스크린골프 상품권이나 백화점 상품권, 골프채, 골프 용품 등 다양한 품목이 제공됐다”며 “모두 게임비·상품 명목의 촌지”라고 말했다. 

1년에 3~4 차례 골프 대회를 대행하는 한 골프 대회 대행사 관계자 C씨는 “그린피, 캐디피, 카트비, 식사 등 주최 측에서 일괄적으로 제공한다”고 인정했다. 참가 기념품과 시상품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C씨는 “골프화와 시장바구니 같은 가방을 제공한 것은 맞다”면서도 “제공하는 상품은 행사 후원 업체의 물품이나 일반 참가자에게도 제공되는 물품이 제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상품권은 현금 성격이 짙어 증빙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행사에서 상품으로 제공하기는 어렵다”며 “제공이 됐다면 주취 측에서 주는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기자단 라운드가 골프 대회 취재의 일원이라고 하지만 취재원과 기자단의 친목 도모를 위해 치러지는 경우도 있다. 한 협회 관계자는 “대회마다 골프장이 다르고 코스가 달라 코스 점검 차원에서 하지만 우리는 1년에 한번 출입기자단과 라운드를 간다”며 “올 한해에도 잘 해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그린피, 캐디피 등 비용은 우리가 준비하고 골프장 쪽에서도 선물을 준비한다”며 “참가 기념품은 참가 기자에게 모두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국골프기자단 현직 간사는 “대회 전에 골프 코스를 둘러보기 위해 대회 주최 측에서 준비하는 것”이라며 “지난해 문제제기가 있었고 올해부터는 대회 주최 측 설명만 듣고 끝낸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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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단 간사 출신의 한 기자는 “대회 라운드의 경우 기자단에서 요청한 게 아니라 취재 편의와 대외 홍보를 위해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것”이라며 “기자단 라운드는 대가성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는 또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대회 경비에 라운드 비용이 애초에 포함된 것으로 우리가 매 대회마다 가서 경비에 편성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상품은 게임의 묘미를 위해 대회 후원사들의 소소한 몇 가지를 내주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목록에 대해 “받은 사람도 있고 안 받은 사람도 있는 데 그걸 가지고 전체 골프기자단이 받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한 대회에서 골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골프기자단의 현직 간사는 미디어오늘에 “골프기자로서 코스 이해할 수 있는 문화는 미국 일본 모두 있다”면서도 “내용적인 우려에 대해서는 취재 연장선에서 자정해 나가겠다”고 밝혀왔다.

골프기자단은 방송·종합일간지·경제지·스포츠지 25개사 가량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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