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 법원이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가 세월호참사 당일 만났다는 소문은 허위”라고 결론 냈다.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사건을 심리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동근)는 30일 4차 공판에서 “정윤회씨의 휴대전화 발신지 추적기록, 청와대 경호실 출입 관련 공문, 정씨와 점심을 먹었다는 한학자 이모씨의 증언을 종합해볼 때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 게재한 소문의 내용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허위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쟁점의 진위 여부를 판결문이 아닌 판결 도중에 결정내린 것은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변호인 측이 요청한 청와대 경호기록 사실조회 신청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에 기초한 사실 조회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앞으로는 박 대통령에 대한 비방 목적이 있었는지와 관련한 변론에 집중해 달라”며 “박 대통령의 그날 모든 일정 자체를 밝히는 것이 이 재판의 쟁점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재판부 결정을 두고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고 명예훼손사건 본질에 관한 판단을 하겠다는 의지”라고 풀이했다.

   
▲ 지난 1월 19일 가토 다쓰야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윤회씨. ⓒ연합뉴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행적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서 재판부 결정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읽히기 충분하다. 당장 박 대통령 본인이 참사 당일 7시간의 행적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로 국민 앞에 설명한 적이 없다. 의문을 제기하지 말라는 주장의 논거는 가토 전 지국장을 고소한 박완석씨(자유수호청년단 대표)가 “대통령에게 남자가 있었다면 진작 언론에 보도되었을 것”이라고 말한 정도다. 

그러나 법원의 이번 결정에선 고심한 흔적도 비춰진다. 정윤회씨의 휴대전화 발신지 추적기록이나 청와대 경호실 출입 관련 공문, 정씨와 점심을 먹었다는 한학자 이모씨의 증언 등으로 박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동안의 알리바이가 입증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박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사실관계는 박근혜정부에서 객관적으로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적 쟁점인 행적에 대한 논란을 판사의 판단영역으로 정리하고, 비방이냐 공익보도냐의 문제로 전환하는 게 재판부 입장에서도 좋다. 

오랜 기간 법조를 담당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재판부가 사건의 본질에 해당하는 비방에 초점을 두고 위법성조각사유를 판단하려는 것 같다. 판사로선 대통령의 행적이 객관적으로 안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7시간을 둘러싼 공방보다는 사건의 본질인 언론 자유의 문제에 주력하려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가토 전 지국장이 사실이라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다면 허위사실이라 해도 위법성조각사유가 인정돼 무죄를 받을 수 있다. 

   
▲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연합뉴스
 

하지만 재판부의 결정이 피고인의 변론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언론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김준현 언론위원장(변호사)은 “재판부가 다툼의 여지가 있는 주요 쟁점에 대해 더 이상 다투지 말라고 서둘러 판단했다. 7시간 행적에 대해 산케이 보도의 허위사실을 단정하고 비방목적만 따지겠다는 것은 재판부가 유죄 심증을 굳힌 것”이라 지적했다. 김준현 언론위원장은 “변호인단으로선 공판이 끝날 때까지 7시간 행적에 의문을 제기할 기회가 사라졌다”며 “재판부 결정은 피고인의 방어권과 변론권을 제한하는 지위행사로 비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해 8월 3일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란 제목의 칼럼에서 최보식 조선일보 기자 칼럼을 인용해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와 관련한 풍문을 전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4월 20일 열리는 5차 공판에서 최보식 기자에 대한 증인 신청을 채택했다. 최 기자는 지난해 9월 17일 검찰의 산케이 보도 수사와 관련해 입장을 내고 “본인 칼럼은 대통령과 청와대의 국정 운영 방식에 관한 비판이었다”고 밝혔다. 

법원이 직접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가 세월호참사 당일 만났다는 소문은 허위”라고 결론 낸 점도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논란을 사법부에서 대신 처리해준 꼴이기 때문이다. 최보식 조선일보 기자는 “대통령 7시간에 대한 질문은 언론으로서 당연히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벤자민 이스마일 국경없는기자회 아시아-태평양 지국장은 “산케이신문은 한국 정부에 대해 소문으로 보이는 것들을 인용할 수 있다”며 기소 자체를 비판한 바 있다. 한편 가토 다쓰야 전 지국장은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들려줄 말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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