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고고도미사일(사드) 배치와 중국이 주도하는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을 둘러싸고 한국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비판에 대한 외교부 장관의 대답도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 장관은 30일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재외공관장회의 개회사에서 “아시아와 아태 지역은 부상하는 중국과 부활하는 미국을 모두 수용할 만큼 넓다”며 현재 한국이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통해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다.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윤 장관은 또한 “국익의 관점에서 우리가 옳다고 최종 판단되면, 분명히 중심을 잡고 균형감각을 가지고, 휘둘리지 말고 밀고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외교정책을 둘러싼 비판을 작심한 듯 반박했다. 그는 “국내 일각에서 19세기적 또는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마치 우리나라가 여전히 고래 싸움의 새우 또는 샌드위치 신세같이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패배주의적, 자기 비하적, 심지어 사대주의적 시각에서 우리 역량과 잠재력을 외면하는 데 대해선 의연하고 당당하게 설명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 윤병세 외교부 장관. 사진=CBS 노컷뉴스
 

그러나 윤 장관의 주장은 아전인수식 해석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영국 등 다른 미국 동맹국들이 연달아 AIIB에 가입했는데도 한국은 ‘각국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미국의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가입했기 때문이다. 윤 장관은 이를 “최적의 절묘한 시점에 가입 결정을 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현재 한국 정부는 러시아 전승절 참석 요청을 두고도 미국의 눈치를 보며 참여를 미루고 있다. 

미국 정부가 요청한 적이 없다는 사드 배치의 경우 한국에서 그 필요성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미국이 요청한 적도 없다는데 오히려 한국에서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다닌다. 러브콜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보내고 있다”며 “AIIB 가입은 경제적 실익이 있다면서 미국 눈치를 보느라 뒤늦게 합류했다. 주변 국가들이 보기엔 기회주의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책목표로는 윤 장관 말이 맞다. 당위론적인 이야기”라며 “하지만 지금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 현실이 그런 상황인지에 대한 판단은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윤 장관의 발언이 자화자찬에 그치지 않는, 외교정책 방향에 대한 함의가 담긴 말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국 정부가 AIIB 가입을 결정하자 일각에서는 AIIB도 가입했으니 사드도 배치해야한다는 식의 주장이 제기됐다. 

윤 장관은 “아시아와 아태 지역은 부상하는 중국과 부활하는 미국을 모두 수용할 만큼 넓다”고 말했고, “(사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면 중국·러시아 등 오해가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될 것”이라며 사드 배치를 시사하는 발언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두 사안을 연결시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욱식 대표는 “윤 장관이 'AIIB 가입했으니 사드도 배치하자‘는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부에) 그런 기류도 일부 있는 것으로 안다”며 “AIIB는 도움이 되기에 가입하려다 미국 눈치를 보느라 미룬 것이고, 사드는 불이익이 있음에도 미국을 고려해서 배치하려는 것으로 두 가지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또한 “미국은 AIIB 가입을 수용했으나 중국이 사드를 과연 수용할 수 있을까”라고 덧붙였다. 김근식 교수 역시 “두 사안은 동급이 아니다. 고민의 정도도 달라야한다”며 “AIIB 가입은 미국 입장에서 불편해하긴 하겠지만 크게 민감하게 느낄 사안은 아니지만 중국 입장에서 사드는 매우 전략적인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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