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4. 29 재보궐 선거 관악을에 출마하면서 선거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야권 개편 없이 정권교체 없다"는 국민모임의 기치 아래 정 전 장관은 여야를 묶어 양공 작전을 펼 것으로 보인다. 여권을 향해서는 정권 심판 구호를 들고, 야권에 대해서는 야권 재편의 기수로서 파열음을 내겠다는 전략이다. 

정 전 장관이 극복해야할 것은 자신의 입장 번복과 명분이다. 그는 국민모임 합류 당시 “밀알이 되겠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야권 분열 책임론도 선거 기간 내내 정 전 장관의 출마 명분을 깎아내리는 공세가 될 것이 자명하다. 

조직표+단일화=정동영 당선?

정 전 장관이 출마를 결심한 것은 선거에 승리하면 그동안 쌓인 '리스크'를 한꺼번에 상쇄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 따르면 정 전 장관이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것은 국민모임 지도부 뿐 아니라 국민모임 내 선거 승리를 예측한 특정 정치 세력의 강력한 권고가 배경에 있었다는 후문이 들린다. 

정 전 장관은 JTBC와 인터뷰에서 출마 마지막 결심은 선언 당일 새벽 4시에 했다고 털어놨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는 뜻이지만 불출마 입장을 줄곧 견지해온 정 전 장관이 결정적으로 출마 입장으로 선회한 것도 물밑 작업을 통한 결과 관악을에서 정 전 장관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반대로 정 전 장관이 낙선하면 야권 분열 책임론이 제기되는 것은 물론 국민모임의 존망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재보궐선거는 특성상 얼마나 조직표를 끌고 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전 장관의 출마 배경에도 야권의 조직표를 상당부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다.

지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관악구청장을 지내고 지난 18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지만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김희철 전 의원의 표심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전 의원은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정태호 후보에게 뒤져 떨어졌다. 하지만 경선 결과 총 득표율은 정태호 후보 50.3%, 김희철 전 의원 49.7%로 불과 1% 차이도 나지 않았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낙선되긴 했지만 야권연대 이상규 통합진보당 전 의원(38.2%)에 맞서 불과 10% 정도 뒤지는 득표율을 얻었다. 관악구청장 출신으로 18대 국회의원을 했던 김 전 의원의 조직표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이번 재보궐선거 당선 의원의 임기는 불과 1년이다. 김 전 의원은 1년 후 총선에서 재도전장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정태호 후보가 당선될 경우 김 전 의원의 관악을 프리미엄은 상당부분 잠식될 수 있다. 정태호 후보의 가능성을 확인한 새정치민주연합이 1년 후 총선에서도 정 후보를 강력히 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이 당선될 경우 국민모임의 대표주자 타이틀을 얻으면서 1년 후 총선 전략은 관악을에 머무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관악을을 국민모임의 교두보로 삼고 내년 총선에서는 양당에 균열을 내기 위한 또 다른 곳을 물색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전 의원 쪽에서 정태호 후보보다는 정 전 장관의 당선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물밑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 국민모임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노컷뉴스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제외하고 정 전 장관 쪽으로 단일화할 수 여지도 남아있다. 

관악을 야권 후보로는 이동영 정의당 후보와 나경채 노동당 후보, 이상규 무소속 후보가 있다. 이 가운데 정의당과 노동당은 국민모임과 연대 가능성이 있다. 국민모임 출범 이후 운영되고 있는 4자협의체(국민모임, 정의당,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4자 연석회의 정무협의회)의 테이블 위에 단일화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단일화 가능성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하면서도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정 전 장관은 4자 연대(협의체) 범위 내에 있는 후보이기 때문에 정의당과 노동당 후보 사이에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선거로 만들 수 있을지 심사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모임은 이상규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에도 잰걸음을 내디딜 것으로 보인다. 이상규 후보는 이번 선거가 부당한 통합진보당 해산, 그리고 의원직 상실로 인해 치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권 심판을 위해서라도 새정치연합은 물론 정 전 장관의 출마에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 후보는 정 전 장관 출마 소식을 접하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헌재의 부당한 판결에 많은 주민들은 이상규 재신임 의사를 밝히고 있다"면서 "법에도 없는 헌재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한 이상규의 출마와 당선이야말로 박근혜 정권 심판의 직격탄이다. 정동영 전 의원이 주창한 정권심판 무능야당 교체의 적임자는 바로 이상규"라고 밝혔다. 완주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정동영 전 장관이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해 줄기차게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정 전 장관으로 단일화 명분도 적지 않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태호에 지고 천정배 미끄러지고

국민모임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당선이다. 국민모임의 출범 첫번째 이유는 야권 재편이다. 정 전 장관 출마도 야권 개편이 이뤄져야 정권 교체와 정권 심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되면 국민모임 대 새정치민주연합의 책임론 싸움으로 번질 수 있지만 정태호 후보가 당선되면 국민모임 결성 취지 자체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심판하겠다고 나왔는데 진다면 야권 개편의 희망은 사라진다. 오히려 무능력하고 무기력하다는 비난이 국민모임의 꼬리표로 남을 수 있고 향후 국민모임의 존망까지 다툴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휴먼리서치가 오신환 후보, 정동영 전 장관, 정태호 후보 3자 대결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오 후보는 38.4%로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정 전 장관이 28.2%, 정태호 후보는 24.4%를 얻었다. 정 전 장관이 출마하기 전 조사이긴 히지만 정태호 후보의 지지율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정태호 후보는 젊은 이미지가 강점이다. 1963년생으로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과 정책조정비서관을 지냈다.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정 후보의 참신한 이미지와 경력이 부각되는 등 외연 확장 가능성이 높다.  

정 전 장관과 함께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광주 서구을에서 낙선할 경우도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다. 

국민모임은 천 전 장관이 호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아성에 균열을 내주길 내심 바라고 있다. 향후 국민모임에 합류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 천 전 장관이 광주 서구을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정 전 장관도 관악을에 안착한다면 호남과 수도권에서 국민모임의 쌍끌이 전략을 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광주타임즈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광주 서구을 후보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천 전 장관은 37.2%, 조영택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는 29.9% 지지율을 보여 7.3%포인트 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재보궐에서 조직 득표가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보통 선거의 여론조사보다 재보궐 선거 여론조사에서는 10% 이상 앞서야 ‘안정권’이라는 게 정설이다. 천 전 장관의 지지율이 높긴 하지만 선거가 시작되면 격차가 줄어들고 막판 조직표 동원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동영 전 장관이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에게 뒤져 낙선하고, 천 전 장관이 호남에서 바람만 일으키다 미끄러질 경우 국민모임은 완전 참패로 평가받을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국민모임 이름 넉자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 역시 4. 29 재보궐선거 최악의 시나리오에 기반하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정 전 장관의 출마는 워낙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앞날을 내다볼 수 없다"며 "비전 제시는 고사하고 국민모임의 참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국민모임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