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은 대학 구조조정 피바람의 전초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3일부터 대학구조평가가 시행되는 데다, 조건에 맞지 않는 대학을 퇴출시킬 수 있는 대학구조개혁법이 4월 국회에서 처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학구조조정은 박근혜 정부의 2015년 4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27일 국회에서는 ‘대학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대학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 주관으로 ‘대학구조조정 폐해 고발대회’가 열렸다. 흔히 대학구조조정의 피해자로 학생을 떠올리기 쉽지만, 대학 구조조정의 피해자는 학교 비정규직 주차‧청소‧경비노동자, 시간강사 등 매우 다양하다.

교육부는 27일 새누리당과 정부에 ‘대학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대학구조개혁법)을 4월 국회에서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8월 말 대학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2017년도부터 정원감축 등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 27일 오후 국회에서 ‘대학구조조정 폐해 고발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대학구조개혁법이 통과될 경우 대학평가위원회 및 대학구조개혁위원회의 평가에 따라 대학을 등급별로 나누고, 정부는 사립대의 정원감축, 국가장학금 등 정부 재정지원 제한은 물론 폐쇄 및 법인 해산 결정까지 할 수 있다.

정부의 대학구조조정에 발맞춰 각 대학들도 여러 개혁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한국외대는 지난해 12월 ‘모든 강의의 상대 평가로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외대 학생 박혜신씨는 이날 고발대회에서 “상대평가 전면화 배경에는 정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가 있다. 정부가 발표한 평가지표에 ‘학생 평가’ 부분의 핵심은 ‘성적 분포의 적절성’과 ‘엄정한 성적 부여’를 위한 제도 운영”이라며 “이 때문에 대학들이 지표를 끌어올리려고 상대평가를 강화하고 학생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즉 학점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해서 상대평가를 실시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가 D등급을 받아 국가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는 논리다. 국가장학금 받고 싶으면 상대평가 전면화를 받아들이라고 협박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그러나 이런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평가지표에는 학생 평가항목보다 교육 여건과 학생 지원 항목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외대는 이 항목에 해당하는 교육비 환원율, 장학금 지급율 모두 미달”이라고 지적했다. 학교가 재정적 지원을 통해 개선시켜야할 문제는 회피한 채 학생들에게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는 것.

중앙대는 올해 2월 학과제 폐지와 단고대별 광역화 모집을 골자로 한 ‘선진화계획안’을 발표했다. 중앙대는 이미 2010년부터 학과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2013년 폐지된 민속학과가 대표 사례다.

정세현 중앙대 인문대 학생회장(민속학과, 10학번)은 “학교 본부는 구조조정만 계획했지 폐과대상인 학과의 사후처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민속학과 학생들은 수강신청 때도 듣고 싶은 과목을 못 듣고 눈치를 보고, 군대를 다녀오면 수업조차 못 듣는 학생들도 있다”며 “입학 시 계획한 대학생활, 휴학은 꿈도 못 꾸고 학교를 다녀야한다. 학년 대표도 선출할 수 없어 불만을 대변해줄 사람도 없다. 학기 초 웅성대는 학과 학생회실과 복도 사이에 민속학과 학생회실은 불이 꺼져있고, 우리는 쓸쓸한 학기 초를 보낸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학과 구조조정의)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정부에서 계획하는 사업에 따라 학제를 개편해 취업에 유리한 학과 인원수를 늘리고 취업이 잘 안 되는 학과의 인원수는 줄여 정부의 지원금(1년에 200억-280억)을 받기 위해서”라며 “학교가 재정을 충당하기에 급급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학교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학생들이 피해를 받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건국대는 3월 19일 예술디자인대학의 영화과, 영상과, 텍스타일 디자인 학과, 공예과를 모두 통폐합하는 ‘학사구조개편안’을 발표했다. 이유는 ‘학과 경쟁력 높이기’ 즉 취업률이다. 영화과 학생 정다운씨는 “취업률을 기준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은 취업조건과 시장 상황이 다른 예술대학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며 언제든 예술대학을 쉽게 축소‧퇴출시킬 수 있는 수순에 들어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배우 김유정(왼쪽)과 샤이니 민호의 건국대 영화과 통폐합 반대 인증샷. 건국대 영화과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대학구조조정의 여파는 노동자들에게도 몰아친다. 한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서비스지부 조직국장은 “서울여대 26명, 건국대 37명, 경희의료원 20명, 외국어대 13명 등 서경지부가 파악한 9개 대학에서만 올해 초부터 109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짤려나갔다”며 “해고 이유는 얼핏 다양하지만, 이 모든 이유들은 결국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단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된다. 모든 학교들에게 이구동성으로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해 학교가 어렵다’는 똑같은 주장을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의 경우 미화업무에 근로 장학생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한혁 국장은 “학교는 근로 장학생에게 지급된 임금을 ‘장학금’으로 포장하여 평가지표의 하나인 ‘장학금 지원’ 항목에서 점수를 받는 효과를 얻는다”고 서명했다.

한 국장은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떡 본 김에 제사 지내자’는 식으로 정리해고를 밀어붙였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대학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면 가장 먼저 손을 대야할 곳은 대학 재단”이라고 밝혔다.

시간강사들도 해고 대상이다. 대학평가지표 중에 전임교원 담담강의비율이 있어 대학이 전임교원인 교수의 강의 시수를 늘리고 시간강사들을 해고하기 때문이다. 권정택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대구대)은 “학교가 교양과목을 교양대학 중심으로 개편하면서 많은 시간강사들을 해고했다. 컴퓨터 관련 기본교양과목을 없애면서 관련 강사 20여명이 통보도 받지 못하고 해고됐다”며 “전공과목 강의를 하던 강사들도 전공과목 강의를 하지 못하게 되어 전공만 강의하던 시간강사들도 해고됐다”고 말했다.

강의시간도 줄었다. 권정택 부위원장에 따르면 대구대분회 조합원 중 2014년도에 강의시수가 5학점 이상인 조합원이 50%였는데 2015년에는 이 비율이 35%로 감소했다. 5학점 기준 대구대 시간강사의 한 달 임금은 전업 박사학위자 기준 148만원이다. 

김병국 대학노조 정책국장은 “정부의 특성화 사업 등 선별적 지원을 이끌어내고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 지표 목표를 달성해 불이익을 방지하려다 보니 대학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부작용이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서일대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지난해 4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사진=강성원 기자
 

지방의 전문대 A대의 경우 2014년 8월 학교가 최종 폐쇄되어 학생들은 인근의 대학으로 편입하게 됐고, 교수와 직원은 전원 해고됐다. 지방의 B대학은 2년 연속 교육부로부터 경영부실대학으로 선정되자 2013년 하반기 전직원에게 구조조정 실시를 통보했고 2014년 1월 직원 12명을 해고했다. 지방의 C대학은 2014년 2015년 신규채용 직원 전원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했고 남아있는 직원들에게도 명예퇴직을 종용하고 있다.

대학들이 지표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면서 벌어지는 부작용도 있다. 서울의 전문대 E대학은 교비환원율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기자재를 구입하고, 교수 개인이 산 것도 교비에 포함시킨다. 서울의 H대학은 회계연도 마감 시점에 재정투여를 집중해, 1-2월에 LED 설치, 보도블록 등 필요하지 않은 각종 공사를 진행한다. 

장학금 지급률을 높이기 위한 부작용도 있다. H대학은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리는 학생들을 장학생으로 선정하고, 서울의 전문대 K대는 학생들에게 휴지줍기나 청소를 시키고 봉사명목으로 장학금을 준다. 수도권의 j대학은 학생들 건강진단 실시로 인해 소요되는 비용을 ‘건강장학금’ 명목으로 지급한다.

홍성학 충북보건과학대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로 위기이자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등록금 수입이 줄어 대학이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볼 게 아니라 정부의 교육비 투자액을 늘려 등록금 위주의 대학경영에서 벗어나 대학의 공공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또한 “그러나 현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방식은 특성화와 대학 등급을 통한 구조조정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이러한 대학 수와 입학정원 감축 구조조정은 우리나라 대학을 바로 세우기는커녕 정부재정지원을 차등하면서 대학서열화를 더 부추기고,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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