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회적 효용 가치를 인정 받는 학문 분야 중 하나가 심리학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울이니 자살이니 하는 문제들은 비교적 고전적 문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분노 조절 장애를 비롯해 묻지마 범죄 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우리들 중에 괴물이 섞여 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괴물은 우리의 정신을 좀먹으며 몸집을 키우고 있는 우리 자신일 수도 있다.

JTBC 예능국의 센스는 바로 이 대목에서 발휘되는 것 같다. (비록 시청률은 떨어지더라도) 화제를 모으는 대다수 프로그램들은 현대의 최전선에 서 있는 고학력 청년층들의 사회문화적 감각과 공명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4월부터 정규 편성되는 <김제동의 톡투유: 걱정 말아요 그대>나 지난 일요일로 폐지가 확정된 <속사정 쌀롱> 등은 오늘날의 이상스럽고 잡스러운 징후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시대적 정언명령을 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심리학 또는 심리치료적 접근들은 우리 시대의 해설자 또는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시대에 문제라고 여겨지는 사안들을 설명해내고 또 해소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때마침 듣게 된 <속사정 쌀롱>의 폐지라는 사건은 기묘한 감정을 들게 한다. 진중권과 허지웅이라는 두 문화 좌파가 고정적으로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심리학은 물론 각종 비판이론을 아우르는 토크쇼를 어디서 접할 수 있을까. <속사정 쌀롱>의 폐지가 안타까운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MC 이현이가 자평했던 것처럼 ‘재밌고 유익한 한 학기 분량의 교양과목’을 더 이상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속사정 쌀롱. ⓒ jtbc 홈페이지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바로 그 미덕 때문에 종영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본격 심리 분석 토크쇼를 표방했지만, 세상의 이치는 심리학적 기법만으로는 재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개인 심리나 정신 세계 차원으로 축소될 것 같을 때, 두 명의 평론가가 논점을 정치적 차원으로 바꾸곤 했던 것도 바로 그런 곤란 때문이었을 것이다(예컨대 관음증은 변태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는 것). 실제로 올 초였던가, 소재 고갈 때문이었는지 이야깃거리가 시사 문제 일반으로 확장되면서 <속사정 쌀롱>은 더 이상 순수한 심리토크쇼가 아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 정체성이 모호해진 건 불가피했다. 어느 순간에는 신변잡기 토크쇼와 다를 게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때조차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대중문화판에선 개인 심리에 정치경제적 진실이 스며들어가 있다는 식의 복잡한 논리는 쉽게 유통되긴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판적 이론 따위는 귀찮거나 혐오스러운 것 정도로 치부하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속사정 쌀롱>은 애초부터 실패할 운명이었다.

요컨대 <속사정 쌀롱>의 폐지는 우리 시대의 괴물을 다스리는 데 있어 심리학이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아가 심리학의 말랑거림에 비판이론의 뾰족함을 뒤섞는 게 제법 불편한 시도라는 사실을 알려준 사건인 셈이다. 물론 여전히 TV 브라운관에서는 수많은 고민상담 프로그램과 ‘힐링’거리는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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