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세계일보의 청와대 ‘정윤회 문건’ 유출 보도 후 검찰이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검토한 것을 계기로 취재원 보호 입법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권력기관의 비리를 고발한 언론에 대한 수사기관의 무리한 ‘취재원’ 정보 요구는 곧 언론 자유의 핵심인 비판과 감시 기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대통령도 알아선 안 된다-‘취재원보호법’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취재원보호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사가 정부나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했을 경우, 내용의 진위나 명예훼손 여부와는 별도로 취재기자를 대상으로 취재원의 신원을 밝혀내기 위한 조사가 병행 실시돼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문제는 수사기관이 언론사의 취재원을 밝혀내기 위해 직접조사나 통화내역 조회와 같은 간접적인 압력을 가하게 되면, 취재원들이 기자들에게 권력기관의 비리나 사회문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돼 내부비리 고발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선 취재원 보호를 명문화 한 법적 규정이 없어 수사기관에 의한 언론사 압수수색이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지난 1989년 검찰은 서경원 전 평민당 의원 방북 사건과 관련해 수사관 800명을 동원해 이를 보도한 한겨레에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를 적용해 압수수색했고, 2003년엔 전 청와대 부속실장의 향응접대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도한 SBS에 압수수색을 시도하다 제지당했다. 또 2009년에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에 대한 압수수색을 강행했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대통령도 알아선 안 된다-‘취재원보호법’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강성원 기자
 

이날 토론회를 주최하고 지난달 국회에서 ‘취재원 보호법안’을 대표발의한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법 제정 이유에 대해 “지난해 세계일보가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보도하자 청와대가 검찰을 통해 언론사를 강제 압수수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배 의원은 “이는 언론의 직업윤리이자 언론 자유의 한 요소인 취재원 비밀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취재원 보호를 위해 언론인이 수사기관의 압수나 수색, 증언 등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고 설명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취재원 보호를 위한 법령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진봉 교수에 따르면 지난 1980년 제정된 언론기본법에는 “언론인은 공표 사항의 제보자 등의 신원이나 공표 내용의 기초가 된 사실에 관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라고 명시해 언론인의 진술거부권을 규정했다.

아울러 당시 법엔 “기사 내용에 기초가 된 사실을 확인 또는 수사할 목적으로 압수·수색할 수 없다”고 규정했지만 언론의 검열과 등록취소를 규정한 독소조항이 있다는 이유로 이 법은 결국 폐지됐다. 

허윤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도 이날 토론자로 나와 취재원 공개와 법적 책임 사이의 딜레마에 관해 “의혹 보도 또는 범죄 보도의 경우에는 취재원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이 경우 언론사가 보도 내용의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취재원을 공개하는 것”이라며 “만약 언론이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취재원 공개를 거부한다면 그 보도는 허위 보도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고 언론사 혹은 기자는 민사상 패소 또는 형사처벌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 변호사는 이어 “이 경우 언론은 취재원을 공개해 민·형사상 책임에서 벗어나느냐 아니면 취재원을 보호하고 법적 책임을 질 것인지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며 “취재원 보호가 문제되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서도 언론은 취재원을 보호할 것인지 공무집행방해의 죄책을 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미국에선 기자가 취재해서 보도한 내용이 명백한 거짓인 줄 알면서도 보도했다는 것을 고소인이 증명하지 않으면 명예훼손 소송에서 이길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며 “미국 검찰의 취재원 보호 관련 지침도 기자에게 제공받지 않고 다른 데서 구할 수 없는 경우만 예외적으로 자료 요청을 하도록 하는데 우리나라 법원의 태도는 그런 원칙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정부부처 대표로 나온 노점환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과장은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 측면에서 볼 때 취재원 보호가 필요하지만, 국가가 취재원 보호를 위해 법령으로 필요한 시책을 마련토록 강제하는 것은 과도한 책무”라며 “취재원 보호법의 제정은 우리나라 법규와 언론환경 및 법익형량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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